<프린세스 에메랄드 2 : 바다 요정을 만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4) [원제 : Emerald and The Sea Sprites (2023)]
[My Review MMCLXIV / 을파소 22번째 리뷰] 아무리 내가 실력 좋은 독서논술쌤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소녀 감성'이 물씬 나는 그런 어린이 동화책이다. 물론 나도 어릴 적에 '문학의 밤'에 흠뻑 취하기도 하고, '순정소설' 좀 섭렵하던 '문학소년'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는 남자다. 이런 나를 당혹스럽게 한 어린이책이 바로 <이사도라 문>이었다. 도무지 '갈등'이라고는 없고, 매번 사건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등장하긴 했지만, 어린 소녀가 겪는 갈등이라고는 친한 친구하고 '사소한 말다툼'을 한 것이 전부이고, 어린 소녀가 저지른 말썽이라고는 '예쁜 물건'을 다루다 실수로 망가뜨린 것이 고작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렇게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이 책에서 무슨 '주제'를 고를 수 있고, 무엇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또 한 권의 책'을 읽었구나 싶을 때, 이 책을 읽고 있는 어린 소녀 독자들의 표정을 보고서야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얼굴에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갈등도 없고, 사건사고도 없고, 그저 하염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간에 펼쳐지는 꽁냥꽁냥한 이야기가 소녀들의 감성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남자인 내 가슴에는 그런 '불꽃 감성'이 타오르지 않는다. 그저 밋밋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소녀 독자들에겐 '아름다운 감성' 한 스푼이 보충된 듯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재밌다고 재잘거린다. 그래서 문득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무슨 큰 영광을 누리겠다고 '보물찾기'하듯 주제를 찾아 눈을 부라릴 것이냔 말이다. 하릴없는 일이다.
이 책 <프린세스 에메랄드 2>에는 에메랄드와 델피나 공주가 '가리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호초 숲'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산호초에 '신비롭고 귀여운 바다 요정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책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명의 공주들은 '바다 요정'을 찾아 저멀리 모험을 결심한 것이다. 아빠와 엄마도 모르게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름답고 신비한 모험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지만, 사실 '두 페이지' 분량이 지나기도 전에 모험은 끝나고 '바다 요정'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험은 끝이 난다. 아까부터 밋밋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 모험을 떠나는 도중에 '깊은 바다'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서 늘 환한 '가리비 도시'와는 달리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바다를 지나야 한다는 이야기 한 줄로 모험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산호초 숲'에서 발견한 바다 요정과 만나서 재미나고 신 나게 놀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서둘러 귀가를 하려 한다. 이때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에메랄드와 델피나와 어울려 놀던 바다 요정 세 마리가 졸졸 뒤따라왔던 것이다. 깊은 바다를 지날 때에는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바다 요정이 쫄쫄쫄 따라오는 것도 몰랐다가 환한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소녀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동네 약수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만난 '야생 동물'이 너무 귀여워서 신 나게 놀다가 그 야생 동물이 소녀들을 쫄래쫄래 뒤따라 온 것을 상상하고 있었을 테다. 그런데 델피나는 '바다 요정'을 자신들의 왕국에 초대하자고 말한다. 얼마나 소녀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까? 귀여운 '야생 동물'을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신 났었는데, '바다 요정'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초대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맞게 에메랄드는 아주 커다랗고 아름다운 '인형의 집'을 갖고 있었다. 그곳을 '바다 요정'이 머물 곳으로 정하고, 두 공주님은 '바다 요정'을 정성껏 손님 대접을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소녀 독자들은 '길고양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꾸 뒤를 쫓아오길래 아예 지신의 방으로 초대를 해서 재밌고 낭만적으로 놀이를 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엔 에메랄드의 '인형의 집'에서 재미나고 신 나게 놀던 '바다 요정'이 점점 생기를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요정은 아주 작은 생물이기 때문에 짧은 모험이었는데도 아주 '긴 여정'이었고, 그 덕분에 바다 요정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그래서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거니 했지만, '바다 요정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하긴 '야생 동물'도 무리하게 집에서 길들이려 하다간 '소중한 생명' 하나를 무고하게 죽게 만드는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야생 동물'이 우연히 집으로 들어와서 함께 살아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곧바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만약 그 '야생 동물'이 알고 보니 '천연기념물'일 경우에는 고액의 벌금과 실형까지 살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야생 동물은 사람이 쉽게 길들일 수 없다. 그리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 접중'도 단기간에 여러 차례 맞춰야 하는데, 동물병원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들 수도 있다. 그러니 '길고양이'나 '야생 새' 등과 같은 동물이 살갑게 굴더라도 절대 집에서 기르겠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야생의 꽃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원래 있던 자리'에 살아 숨쉬며 향기를 뿜어내고 자태를 뽐낼 때 그렇다. 야생 동물도 그렇다. 암튼 생기를 잃어가는 '바다 요정'을 살리려면 서둘러서 바다 요정이 원래 살던 '산호초 숲'으로 되돌려 보내는 수밖에 없다. 에메랄드와 델피나 공주가 바다 요정을 살릴 수 있게 될까?
여기까지만 보면 '야생 동물'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책의 주제인 듯 싶다. 하지만 <이사도라 문>도 그렇고, <프린세스 에메랄드>에서도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엔딩'을 마무리하고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나조차 '감동스럽긴' 마찬가지다. 나 어릴 적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부부싸움'을 하셨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화목하고 다정하게' 저녁 식사를 해본 적이 없다. 살림이 넉넉치 못해서 '맞벌이'를 하셨는데,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다 같이 모인 식사시간에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래서 동화책 속에서나마 이런 '화목한 장면'이 연출되면 몹시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읽을 때는 나도 살짝 '감동'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문득 '재혼가정'도 이렇게 아름답고 화목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자 생각이 많아졌다. 기존의 '서양 동화책'에서는 재혼을 한 엄마 아빠 때문에 남겨진 자녀가 모진 고생을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 책은 완전 달라서 온통 '긍정적 이야기'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큰 차이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재혼가정'인데도 '긍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마냥 좋다고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또한 이 책을 흐믓하게 읽고 있는 소녀 독자들의 미소를 보면서 의심을 지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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