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끝에 진실을 두는 사람들

가장 개인적인 저널리즘 (3) 씨네 - 탐사보도영화 <스포트라이트> 리뷰

by 제리

* 이번 코너는 탐사보도 저널리즘입니다. 다만, 여건상 직접 탐사보도가 어려워 탐사보도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리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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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보 |

제목 :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개봉 : 2015.02.24

장르 : 전기/드라마/사회고발

감독: 토마스 맥카

러닝타임 : 1298




비행기의 순항을 망치는 건 태풍이나 낙뢰가 아닌 치사율이 더 높은 안개다. 어중간한 진실은 더 큰 진실을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탐사보도 팀 ‘스포트라이트’는 성직자의 탈을 쓴 성추행범 87명을 찾아내고도 여전히 때를 기다렸다. 궁극적으로 신부 개개인의 성범죄보다 범죄를 방조하는 교회 시스템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섣불리 보도했다간 몇 년 전 포터 신부의 아동 성범죄를 보도한 후의 상황처럼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게 뻔했다. 중대한 문제가 보도됐을 때 사회의 주목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 이른바 ‘관심 기회비용’을 개인의 시비를 가리는 데에 사용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목적은 보도 자체가 아니라 변화였다. 사회에 뿌려질 보도는 흙과 먼지를 구별 못하게 만드는 안개가 아닌, 맑은 하늘을 통째로 뒤흔드는 낙뢰여야 했다.



신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심방을 하듯 탐사보도 기자는 진실을 캐내기 위해 어떤 문이든 두드린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가해자를 한 명 한 명 찾아가 사건의 내막을 물었다. 진실을 캐는 과정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척질지라도, 가까운 가족에게 큰 충격을 줄지라도 굴하지 않았다. 감정을 묻고 진실만 물어뜯어야 했다.


탐사보도 기자의 정체성은 사람의 일반적인 특징과 눈에 띄게 구별된다. 사람은 공감하고 공유하며 눈에 보이는대로 받아들인다. 탐사보도 기자는 철저하게 비판하고 보안을 지키며 이면을 밝힌다. 아무리 전문적인 기자라도 타고난 특성과 개인적인 주변 환경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다. 주어진 환경에 역행하면서도 끊임없이 진실을 좇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올까? ‘스포트라이트’ 팀은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투명하게 공감했고 그간 제보를 덮거나 기사 몇 줄로 일축했던 무관심을 반성했다. 취재하는 자신이 먼저, 가장 진실했기 때문에 탐사보도의 소명 앞에 끝까지 정직할 수 있었다.


탐사보도는 무엇과도 상생하지 않아서 누구나 하지 않는 말을 외칠 수 있다. 탐사보도는 모든 권력과의 관계가 진공 상태에 놓일 때 추진력을 얻는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 ‘로비’가 학교에도 신부의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고 있음을 고등학교 교장에게 알리자 가톨릭계 주요 인사들이 몰려온다. ‘로비’는 입단속 하는 그들에게 지역 사회 구성원이나 제자가 아닌 ‘기자’로서, 부당하게 고통받은 약자의 대변인으로서 대응한다. 탐사보도 기자가 앞서 말한 사람의 일반적인 정체성과 기자의 정체성을 구분해야 하는 순간이다. ‘로비’는 사건의 규모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이건 모두의 말을 무시해야겠어”라고 말한다. 이 태도로 크고 작은 압력에 일관해서 가톨릭 아동 성범죄 보도는 성공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설계된 무언가를 들추는 게 탐사보도의 사명이다. 탐사보도 기자의 제1 미덕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로비’는 야구장에서도, 와인바에서도, 가톨릭교회의 잔치에서도 야구나 와인이나 사교가 아닌 오직 사건의 내막을 알아내는 데에 집중했다. 기자가 은폐된 진실을 끊임없이 들춰낼 때 비로소 시선 끝에만 머물던 진실을 묵직하게 둘러업고 세상으로 걸어갈 수 있다.


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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