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시장, 호떡과 거리와 사람의 경계를 허물다

가장 개인적인 저널리즘 (2) 스케치

by 제리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다. 혼자 살고, 혼자 먹고, 혼자 보고, 혼자 떠난다. 같이 있어도 혼자가 되는 세상에서 혼자 있어도 ‘함께’가 되는 공간이 있다. 서울 한가운데 버젓이 앉아있는 남대문 시장. 그 길목에 있는 회현역은 이름부터 모일 회(會)자를 쓴다. 지하철이 막 토해낸 사람들과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뱀처럼 기다란 시장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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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상하게 잘려서 한 조각 2천 원에 팔리는 수박을 보니 벌써 여름이 왔다.

돈을 건네는 손님과 상인 사이로 수박이 놓여있다. 시식 아님 주의!


팔려고 내놓은 수박 옆에 앉아 우걱우걱 집어 먹는 사람을 보니 가게 주인이다. 먹다 말고 결제를 한다. 손님과 주인을 구별하기 힘들기는 옷 가게도 마찬가지다. 가게와 가게 사이는 물론, 손님이 지나다니는 통로까지 좁기는 예외 없다. 옷 가게 상인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니 침방울이 경쟁하듯 튄다. 두 평이 될까 말까 하는 약방에는 약이 달동네 주택처럼 거리를 좁히고 촘촘히 서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소인국에 단 하나 있는 시장마냥 경계 없이 빽빽하다.


스크린샷 2025-07-04 150120.png 호떡 명물 남대문 시장. 갖가지 호떡이 다 있다.

눈앞에 들이대듯 나타난 호떡집이 시장의 명물답게 범상치 않다. 기름 없는 버블호떡부터 야채호떡, 꿀 호떡, 팥 호떡, 불고기 호떡, 치즈 호떡까지, 호떡과 호빵의 구별이 모호하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지만 호떡 상인들은 ‘호떡 튜닝’ 작업에 끝을 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 옆에 도매가로 판다는 가방이 거북이처럼 등껍질을 내밀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많은 종류, 많은 양이 ‘이 바닥’ 규칙이라도 되는 듯하다. 길바닥에는 옷이 수북하고 그 밑에 연약한 종이상자 몇 장이 겨우 버티고 있다.


“들어오세요. 만 구천 원짜리 바람막이 오천 원에, 안쪽으로.”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말없이 카드만 주고받는 것에 비하면 외쳐대는 소리가 정겹다. 시장 한가운데에서 30년째 떡볶이와 전을 파는 윤외자(70) 씨는 지나가는 한 명 한 명 “어서오세요, 어서오세요” 하며 잡아 오느라 여념이 없다. “이 시간에는 원래 (음식 만드느라) 정신이 없어야 해. 그때는 발 디딜 틈이 없었어.” 2시만 되면 사람이 미어져 다니지를 못했다던 20년 전, 시장에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사람이 유독 많았다.


옷가게가 즐비한 실내 남대문 시장

푸른빛이 가득한 옷과 ‘우림양행’이라는 이질적인 간판이 보인다면 그곳도 유서 깊은 공간일 것이다. 20년 전 남대문 시장에 입점하며 작명소에서 이름을 받아왔다는 A(71) 씨는 줄곧 청바지, 청치마, 청재킷 같은 청색 옷만 팔았다. 한 평짜리 좁은 가게에 그조차도 넓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A 씨가 긴 청치마를 뒤적거리며 말한다. “여기는 엄마들 상대하기 때문에 미니는 안 팔아요.”


스크린샷 2025-07-04 150516.png 사진만으로 시끌거리는 남대문 시장 실내 상가

남대문 시장을 찾는 사람은 주로 중⸳노년층이거나 부모님과 함께 온 청년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이야기를 종이나 화면 속의 글이 아니라 말로 전한다. 회오리 감자 가게의 긴 줄 뒤쪽에서 머뭇거리며 돈통에 돈을 넣으면 되는지 고민하는 외국인에게 다른 손님이 “넣고 거스름돈 가져가면 돼요”라며 일러준다. 줄 선 손님이 “이분이 먼저 왔어요.”라며 다른 손님을 등 떠민다. 사람 사이 보이지 않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남대문 시장은 매일 좁디좁은 간격 속으로 사람들을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었다.


202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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