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비포장체험도로를 걷다 울퉁불퉁한 초심을 얻다

가장 개인적인 저널리즘 (7) 수습기자 체험기 - 경찰서 출입 기사

by 제리

아빠가 25년 차 베테랑 경찰이어도, 일일 수습기자로서 경찰서를 출입할 좋은 기회를 '아빠 찬스' 날림으로 해치워버릴 순 없다. 새로운 사람과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당혹감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강북경찰서 경무과에 전화를 걸었다. 작년에 인터뷰에 응해줬다던 ‘최일준 경사’를 지목해 약속을 잡았다. 주간 근무, 일요일이나 목요일. 일요일 저녁으로 마음속에 도장을 찍어뒀다. 그 사이 여기저기서 거절당한, 그래서 마땅히 경찰서를 찾지 못한 수습기자 세 명이 일행으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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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넷은 부탁하러 온 사람티를 팍팍 내며 과일 음료 상자와 빵 봉지를 들고 강북경찰서 민원실을 찾았다. 유명 배우의 출연을 따내고 투자사를 찾은 영화감독처럼 당당하게 우리를 소개했다. 민원실에 있던 손영일 경찰관은 전화 한 통에 우리의 기세를 쭉 빼놓았다. 최 경사가 ‘현장 출동’에 나가야 해서 지금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 경찰이란 본디 사무직이 아니라 현장직이지. ‘현장 출동’에 나가는 최일준 경사가 민원실에 들러 내일 다시 와 달라고 했다. 야간 근무, 월요일 저녁.

수습기자에게 주어지는 상황치고 너무 평탄하다 싶었다. 그동안 수습기자 선배들의 체험기를 읽으며 단단히 먹은 마음이 무색하리만치. 중력의 부름을 강하게 받는 이 과일 음료 상자가 처치 곤란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수습기자 체험기에서 배운 게 무엇인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걸 써먹을 때가 왔다. 우리의 기자정신에 빨간 버튼을 눌러대는 듯했다. 민원실 밖에서 수습기자들은 일련의 회의, 혹은 의기투합을 마치고 다시 민원실 문을 두드렸다. 우리를 응대해 준 손영일 경찰관에게 직접 인터뷰를 부탁했다. “제가 교대를 해야 해서... 아니면 아는 동료한테 한 번 물어볼게요.” 배우를 투자사가 섭외하는 격이 됐다. ‘아는 동료’에게 건다는 통화는 한결 부드럽고 장난스러워졌다.

“어, 뭐해? 여기 무슨 고려대 학생들 와서 인터뷰한다는데...”

통화하는 그의 마음은 꼭 이랬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생긴 공식적이지 않은 부탁 앞에, ‘인터뷰’는 낯간지러운 일 앞에 동료의 응답은 어떠할 것인가. 엿본 마음에 동화되어 작게 웃음이 나왔다. 기다림이 간절하지 못했던 업보일까.


“지금 좀 바쁘다고 하네요. 내일 오세요.”


그래, 경찰이란 본디 한갓진 여유와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지.


‘예약 찬스’를 소모한 이상, 이제 우리도 현장직이다. 가장 가까운 파출소로 향했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번동파출소 앞에 도착했다. 이게 웬걸, 베테랑처럼 보이는 경찰관이 "안에 예쁜 거 많아요"라고 하는 옷 가게 사장처럼 문을 지키고 밖에 서 있었다. 괜히 쭈뼛대면 초짜 티가 확 나겠다는 생각에 성큼성큼 걸어갔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인데요..." 가만히 듣던 그분은 "예예. 아, 일단 들어오세요."라며 유쾌한 끄덕임으로 선뜻 이방인, 아니 수습기자를 불러들였다. 경감님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오는 젊은이 네 명에게 열 개 남짓의 눈동자가 한꺼번에 쏠렸다. 상황을 설명하자 인터뷰의 주인공은 ‘미디어 전문’이라는 김기태(32) 경장에게 돌아갔다. 얼굴이 앳되어 보였다. 말 잘하는 막내급 팀원이겠거니 싶었다.

올해로 5년 차에 접어드는 김기태 경장은 동작경찰서 사당지구대와 기동대를 거쳐 강북경찰서 소속 번동파출소로 왔다. 그의 기억 속엔 1년 차 때 마주한 첫 변사 사건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엄청 더운 날이어서 굉장히 부패했던 변사자를 봤던 게 기억에 크게 남았거든요.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보니까 이 사람이 그 집 앞 편의점에서 술 사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던 것밖에 모른다, 그러더라고요.”


변사 사건은 명절에 특히 많이 들어온다. 집에 방치되다 오랜만에 방문하거나 연락한 친척들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살면서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을 하루에 열 몇 번씩 겪는’ 경찰 업무를 하다보면 별별 일을 다 경험한다. 번동파출소의 부팀장인 정동영(57) 경감은 올해로 30년 차에 접어들었다.



“순경 2년 차쯤 됐을 때, 점심 먹다 신고가 떨어진 거예요. 다른 순경하고 둘이 대수롭지 않게 지하 빌라에 들어갔는데 순간 피 냄새가 나더라고요. 선혈이 벽에 낭자하고...”


‘사회 초년생’에 해당하는 시기에 ‘죽음’이 일상처럼 몰려든다. “섬찟한 걸로 기억에 남는 거는... 수유5동 위쪽으로 가면 북한산 쪽에 조병옥 박사 동상이 있어요. 근데... 아, 좀 좋은 얘기가 없을까 (웃음)” 막 달려가던 입의 질주를 멈칫멈칫 막는 부팀장의 모습에 파출소 내에서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30년 차 경찰관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것’이란 어떤 것일지 알기에, 그렇지만 들음이 생명인 기자이기에 웃음엔 양가적 감정이 섞였다. “새벽에 저기(으스스) 할 때 나무에서 뭐가 이렇게 흔들려요, 대롱대롱...” 막연했던 상상보다 더 기이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대화는 다급히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인터뷰하는 내내 파출소 내 스피커에서 무전이 흘러나왔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질문과 답변을 반복하기보다는 울퉁불퉁한 대화를 하고 싶었던 기자, 상황에 충실하기로 한다. "지금처럼 방송이 나오는 건 어떤 상황인 거예요?” ‘방송’이라는 용어가 경찰서에서 통용되는 표현과는 괴리가 컸던 탓인지, 묻는 바를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한 끝에 김기태 경장과 소통이 이뤄졌다. “지령 말씀하시는 거구나. 112 신고를 하면 서울청 지령실에서 받고 각 경찰서로 나눠줘요. 그럼 강북경찰서 지령실에서 각 지구대, 파출소로 또 재지령을 해줘요.” 경찰서에서 오는 재지령이 끊임없이 스피커를 탔던 것이다. 이렇게 들어오는 사건에는 사안의 긴급성에 따라 번호를 부여한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코드 제로’는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는 신고다. 코드1, 코드2까지도 긴급 신고에 해당하는 출동 신고이며 코드3은 상담으로 가능한 신고다. 하루에 코드 제로 신고는 5건 안쪽으로 들어온다. 식사하다가도 출동해야 하다 보니, 경찰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이 교대로 밥을 먹는다.


인터뷰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기자와의 관계는 어떨까. ‘공생’을 이야기한 김기태 경장과 달리 정동영 경감의 답변에는 오랜 시간 깊게 팬 골이 드러났다.


“솔직히 나는 경찰에 와서 30년 하면서 기자들을 참 많이 원망했어. 우리 조직이 국민과의 등 돌리게 된, (국민과의 관계가) 지금처럼(이라도) 만들어진 게 굉장히 늦어진 주된 이유를 기자가 상당 부분 담당했거든.”


이어지는 말에는 ‘수습기자’ 딱지를 달고 기자 집단을 대표해 이곳에 온 내게 모종의 부끄러움을 안겨줬다. “(경찰과 국민이) 친해질 만하면 묵었던 거 탁탁 (기사) 내가지고 어느 조직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대서특필하는 거야. 모든 경찰관이 그런 사람인 것처럼.” 정 경감은 기자가 경찰의 암면을 부각하는 점도 지적했다. 기사에 사건의 모든 면이 낱낱이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한쪽의 잘못을 지적하는 비판적 기사에서 그러한 우를 범하기 쉽다. “그걸 (다룰 때) 본인의 양심, 의지를 끝까지 (가져)가면 사회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기자 분들이 되는 거고.” 그는 눈앞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는 기자 지망생에게 당부를 전하며 이야기를 맺었다.


수습기자 체험기는 나를 위해 준비된 듯했다. 딱 ‘준비된 열정을 발산하고 풍성한 만족감을 가져갈 정도’의 돌발 상황이 나타났다. 웬만하면 경찰서를 가려 했으나 도리어 파출소에서 말을 잘하는, 또 경력이 많은 경찰관을 만났다. 순조로운 상황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린 건 나였다. 어떻게든 인터뷰를 ‘대화’로 이끌어보겠다고 다짐한 포부가 무색할 만큼 이야기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되었다.


“면접 보는 거 아니에요?”

뼈 있는 농담이 묵직하게 들어왔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사람이 되리라. 의지를 튼튼하게 다지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그 의지를 이어가는 것. 30년차 정동영 경감은 경찰 시스템에서 개혁이 필요한 부분을 말할 때, 기자와의 관계를 말할 때 모두 경찰 수뇌부와 기자의 ‘초심’을 이야기했다. 대학생 때, 사회 초년생 때 가졌던 초심을 얼마나 끌고 가는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직책이 생기고 맡은 바에 제도적, 관계적 제약이 생기면서 고려할 지점이 많아질 때 의지가 꺾일 수 있다. 정 경감님도 그런 상황을 거쳐 왔기에 조언해 줬을 것이다. 기자의 초심, 그것을 꺾는 기자 생활의 제약은 무엇인가. 나아가 보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져야 할 초심과 의지,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제약은 어떤 것인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랬다. 어디서든 경찰처럼, 강철처럼 세운 나의 초심과 의지를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수습기자의 하루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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