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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 빛 Sep 15. 2023

미운ㅡ 술 이야기

3. 시나브로


우리 아버지는 술을 벗 삼아 동네 한 명 있는 동갑내기 친구와 매일 밤 술에 절어 사셨다.

임신 중에도
갓난아기를 독박 육아로 키울 때도
우리 엄마는 밤마다 남편의 생사를 걱정해야 했다.

그렇게 내가 돌이 될 즈음
우리 아빠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헤어져 돌아오던 길
내리막 커브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어쩌면 언제고 날 사고가 그날 일어났던 게 아닐까..

의사도 포기했을 만큼 위중했던 아빠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덕분에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목숨을 건지셨다.

그렇게 
내 생애
"아빠"를 부르며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벗 삼았던 술과의 동행.. 끝에..
 '간경화'라는 지병으로 톡톡히 그 값을 치러야 했.


결국은 합병증인 비장 파열로 수술실에 들어가셨다가
예상 못 한 의료사고로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다.

얼굴 한번 뵙지 못한 친할아버지는

술에 젖은 인생 끝에 뇌경색으로 일찍 돌아가셨단다.


아빠도..

설 명절을 일주일 앞두고 혼수상태에 빠져
오늘 내 나이를 살아보지 못하시고

마흔의 설 하루 전날 돌아가셨다.




올해 햇수로 19년이 지난다.


아빠를 하늘 집으로 보내드린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다.


나는 오늘도 눈부신 그리움
5월의 화려한 해 아래에서도 시린 가슴을 움켜쥐곤 한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본인 수술 뒤 엄마랑 아들과 딸 그나마도 더 살기 어려워질까 걱정하며 수술을 거부하셨던 아빠..

아빠가 생전 참 좋아하셨던 큰 이모..
이모 만나고 내려오자 오른 서울 길에서
집이 아닌 병원으로 향했던 날
아빠의 마지막 걸음이 되었다.

의료사고 이후..
평생을 죄책감에 짓눌려 살고 계시는 우리 엄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다며..
동강 난 마음 조각들을 쓸어 담기 시작할 즈음..




2018년 겨울을 디디기 시작한 차가운 11월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인생의 유일한 도피처로
술을 택하며 살았던 작은아버지..
간암 판정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겨울날 돌아가셨다.

아빠 생전에도
엄마가 혼자 농사일을 지을 때도
4형제 중
가장 많이 도와주셨던 작은아버지다.

키도 작고 왜소하신 외모에
성격도 내향적이셨던 작은아버지는
부모에게 차별받은 상처가 쌓이고
뜻대로 안 되는 인생사의 괴로움이 쌓여
건강하게 말하지 못한 상처의

얽힌 실타래가 많은 분이셨다.

말하는 방법도 모르고
말할 수 있는 곳도 없었던
작은아버지가 선택했던

......



아픈 만큼
참고 견딘 만큼
술을 드셨고

술에 먹혀버린 날이면
가족,
위ㆍ아래,
때와 장소 구분 없이
큰 소란을 피우셨다.

나이 50을 앞에 두며
이제는 정신 차리고

혹시나
실수할까 싶고
못 참고 폭주할까 싶어
형제들과의 술자리도 피하셨는데
그러기를 불과 몇 해 지나지 않던 하루..

예고도 없이
방법도 없이
간암의 광풍에 쓰러져 버렸다.



지나는 길에라도
아빠 좋아하시는 코카콜라 한 병이라도 사서 들리고

농사일 힘든 여름날엔
몸 불편한 아빠를 대신할 일 있을 때
힘든 내색 크게 없이 다녀가 주시고

자취하는 큰 조카 원룸에 수리하러 들리셨다가
에어컨 없이 고생하는 거 보고
작은 거라도 하나 사라고 보태주시고

동네 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등산 다니셨던 엄마
등산복, 등산화..
소소한 것들의 필요를 소리 없이 채워 주셨었다.

때때로..
그리고 종종..
술 웅덩이에 빠져서 힘들게 했어도


심성이 착하고 여렸던 분이었다.
마음이 약하고 따듯한 분이었다.

암 치료 방법 중 가장 덜 힘들다는 색전술..
다른 환우들은 입원 후 다시 퇴원하는데
작은 아버지는
부작용으로..
극심한 복부 통증과 고열로 퇴원을 못 하셨다.




1박 2일,
외박을 허락받은 날..
나와 남동생은 작은 아버지 집으로 찾아갔고,

먼저 도착한 나는
작은 아버지께 다시 한번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나중에 도착한 남동생에게
작은 아버지가 입으셨던 겨울 파카.. 캠핑 용품..
사용하시던 깨끗한 물품을 정리해 주셨다.

이제 병원 들어가면
작은 아빠
다시 집으로 못 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 없이
그러나
정확하게 내뱉은 한마디.. 였다.

분당에서 천안까지..
아이 등원 시키고 돌아서면서
가는 시간에 동동거리며
병원에 찾아가 뵈었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월요일..

신랑에게 부탁해 함께 면회를 하러 갔었는데
작은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아빠 대신인데 미안하다며 우리 신랑에게
나를 부탁하셨다.

그날 헤어지면서

"작은 아빠,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
"천국 가면 아빠 있으니까 아빠랑 같이 있어"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

목이 메어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어..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돌아섰다.

따듯한 손을 잡고
천국에서 보자고 한 인사가
작은 아빠와의 마지막이 되었다.

그날 밤
작은 아빠는
정신이 있던 마지막

기도하는 큰 조카
예수 믿는 우리 큰 형수를 찾다 쓰러져
다음날 이른 아침 하늘 집에 가셨다.




아직도 
가족들과의 기억이 생생하고

여전히
그리움의 아픔에 가슴이 저리다.

그래도..
이제는...

다시 만날
하늘의 소망이 있어
시나브로 뜨겁던 그리움의 날들이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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