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가을이 익어간다(7)

7. 인생 곳간

by 사랑의 빛



엄마의 인생 곳간에는

어떤 곡식 단이 쌓여 있을까?


스무 살 갓 넘어 나를 낳은 우리 엄마.

내가 먼저 생겨 결혼식도 제때 못하고

동생까지 낳고 난 후에야 웨딩드레스를 입으셨다.


우리 부모님 결혼식 사진 속에

나와 남동생이 들어가 있었다.


이젠 조금씩 희미해져 가지만

우리 아빠 엄마 결혼식 직후

가족ㆍ친지 사진 찍는 시간

웅성거리던 어느 장면 한 컷이

제법 또렷하게 기억난다.




6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난 우리 엄마.

어린 나이에 일찍 취업하고 서울 직장 생활하다가

리 단위, 깡시골 출신 아빠를 만나셨다.


우리 아빠..

큰 이모 하는 말을 들어보면,

웬 남자를 따라갔대서

물어 물어 내려가셨단다.


세상천지 허허벌판,

요리봐도, 저리봐도 논과 밭...뿐.

집은 다 허물어진 그 옛날 흙집.


모아 놓은 재산, 모으는 재산도 하나 없는

그야말로 가난한 시골 농사꾼,

아직 학생인 막내까지 시동생이 줄줄이 셋..


우리 엄마....

큰 이모 생생한 증언,


"미쳤나..."

"이게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네"


머리채를 잡아끌어 데리고 올라가셨단다.


데려다 놓았더니

또 내려가고

다시 데리고 올라갔더니

또 따라 내려갔다는 우리 엄마..

그렇게

가정이란 인생 곳간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의 인생 곳간 재료는 부실했다.


술꾼 남편의 교통사고, 5년 남짓 병원 생활..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

부당하게 차별받는 설움,

안 되는 형편..

그야말로 부실 종합 세트..


어린 내가 보기엔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켜내기엔 터무니없던 재료들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5월 어버이날이면

엄마에게 써드린 감사 편지에

내가 빠지지 않고 썼던 내용이 있다.


"엄마, 엄마로 살아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엄마의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어쩌면 그 한마디가

엄마의 인생 곳간을

짓고, 지키고, 살게 하지 않았을까?


그 어린 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엄마의 곳간 재료들이 충분했을까? 생각해 본다.




시집살이는 여전했고,

아흔을 넘은 시머니와 오늘까지 함께 살고 계신다.


술쟁이 남편은 다행히 술을 끊으셨지만

교통사고 이후 왼쪽 팔ㆍ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으로 사셨다.


남편의 인생을 참 많이 닮은 아들은

학생 시절의 뜻밖의 교통사고로 뇌전증이란 후유증을 안고 살아간다.


오랜 음주의 결론인 간경화.. 합병증으로 비장 수술대에 올랐던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엄마의 곳간 재료들 중

몸 약하긴 했어도 그나마 멀쩡했던 딸인 나는..

초기ㆍ중기를 넘나반복되는 유산,

두 아들을 품에 안기까지의 출산 스토리로

엄마의 가슴을 수없이 쓸어내렸다.


마흔의 젊은 미망인..

홀시어머니를 모시는 과부 며느리..


한없이 부족하고

턱없이 모자랐던 재료들 뿐이었다.


무엇이 엄마를 살게 했을까?

무엇으로 엄마는 인생 곳간을 지켜오셨을까?




남동생과 나..

자식.. 이 엄마를 살게 했다.


아무리 재료가 부실해도

내 자식은 나보다 더 풍성한 인생을 살게 하고 싶은

엄마..라는 자리가 엄마의 인생 곳간을 지켜왔다.


결코 넉넉할 수 없는 재료들 뿐이었지만,

오늘까지 엄마의 인생 곳간은 잘 지어졌다.


엄마의 때

아내의 때

며느리의 때

잘 살아냈으니까.......




추적추적..

비 내리던 가을,


'우리 엄마 인생 곳간, 잘 지어진 걸까?'

'엄마는, 엄마의 인생 곳간을 기쁘게 보고 계실까?'


슬그머니,

엄마의 인생 곳간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