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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의 빛 Mar 13. 2024

우리 엄마는 큰집 맏며느리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우리 집 명절은 그야말로 딱 잔칫집 풍경이었다.
집안의 큰집이었던 우리 집에는 명절 전날 제사를 지냈고, 명절 아침에도 온 집안사람들이 모여 절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며 제사도 졸업했지만, 우리 엄마는 맏며느리 졸업을 아직도 못하고 계신다. 곧 일흔을 앞둔 할머니가 되셨는데도 말이다.

명절 한 달 전부터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는

제법 분주해지신다.
가족들 오면 무슨 음식을 해줘야 하나,

아빠 돌아가시고는 반찬 신경 안 써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꾸 잊어버려 짜증 난다 그러신다.


가족 맞을 준비하는 일상의 분주함과 없는 형편의 현실과 그래도 내 식구 잘 해먹이고 싶은 마음..

그 어딘가에서 뒤섞인 생각들이 푸덕거리는 모양이다.

정신없어 못한다 하시면서 엄마의 밥상은 항상 푸짐하고 싹 비워질 만큼 맛있다.

엄마의 돼지갈비는 육식가인 우리 집 식구들이 먹으려면 족히 열다섯 근 정도는 되어야 한 끼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이제는 단출해진 가족 수 탓에 3분의 1 양만으로도 충분해졌지만 맛은 여전하다.

내 결혼 전ㆍ후로 엄마의 명절 식탁 준비가 조금은 수월해지기도 했다.
설명절에는 김을 집에서 직접 구워 먹어야 맛있다는 딸 때문에 한 톳 혹은 두 톳까지 김을 발라 구웠었다. 추석 명절에는 집에서 만든 깨송편만 먹는 딸 때문에 조금이라도 빚으셨다.


결혼 후에는 이제 나도 없으니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사다 먹어도 충분하다고...^^;;; 그래도 설에는 여전히 김을 바르신다. 엄마의 김구이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가족들이 진수성찬 차려진 밥상에서도 김을 찾기 때문이다.

작은 엄마들이 일찍 오시나 늦게 오시나 상관없다. 맏며느리 명찰 단 우리 엄마는 큰집 며느리에 숙련되어 손도 크고 빠르다. 부침이 정도는 함께 앉아 부쳤지만 이젠 그것도 안 한다.


며느리들이 한데 모여 음식을 만드는 모습도 이젠 사라질 듯하다.

지난해 여름, 고관절 수술 이후 아흔 넘은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시니 아빠 없는 우리 집엔 다른 가족들의 방문 시간이 짧아졌다.



옛말에.
딸부잣집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갔다 했다.

왜? 얼굴이 예뻐서 그랬단다.

결혼사진 속 우리 엄마는 얼굴이 정말 어른 손바닥만 하게 작다. 쌍꺼풀도 깊고 진하고 코도 오뚝하고 참 예쁘다.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면서 식구들 식탁 빈 그릇 채우기 바빴던 우리 엄마,
누구의 딸보다
누구네 며느리로 쌓인 세월이 훨씬 길다.

결혼 생활 40년 넘어,

환갑 지난 우리 엄마 얼굴엔

진짜 깊은 주름이 자글거린다.

쌍꺼풀은 파였고 얼굴도 조금 커졌는데 결혼식 때만큼이나 아니,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아름답다.

큰집 맏며느리로 살아온 세월만큼 깊어졌고
푸근해졌다.

엄마가 힘써 지켜온 며느리의 때 덕분에
온 집안 식구들의 식탁엔 부족함이 없었다.

며느리로 사느라 참 고단하면서도
그때를 잘 살아내 준 우리 엄마가
참 자랑스럽다.

이번 설명절에는 오랜만에 같이 김구이 해야겠다.


ㅡ포레스트웨일 공동출판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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