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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 Honey Oct 14. 2021

Before Sunset

Ep.1 Paris

오늘 내 생일이에요.

 
매년 돌아오는 내 생일이면 당신이 준 선물이 생각나곤 해요.
예쁜 봉투에 들어있던 파리행 티켓 두 장을 잊을 수가 없군요.

당신 참, 안 그런척하지만 낭만적인 사람이에요.



노트르담 성당을 지나 에펠탑을 보았었는데. 

그런 유명지가 아니더라도 

파리는 정말 유럽 향기가 강한 도시라고 생각했어요. 

지독히 습하고 더운 날에도 야외 테라스 석을 고집하는 사람들, 

어딜 가던 흐릿하게 맡을 수 있는 타바코 향, 

 와인 잔 두 개와  빵 바구니 하나가 겨우 올려지는 작은 테이블,

 케비어를 곁들인 달팽이 요리와 화이트 와인, 

길거리를 배회하며 소매치기를 시도하는 어린 집시 소녀들까지도. 

지금 당장 다시 가고 싶은 도시를 고르라고 하면

난 분명 파리를 고를 거예요. 



내가 말했던가요?  

난 처음 가는 도시라면, 가급적 미술관에 들리지 않아요. 

그렇게 전시를 좋아하면서 그건 또 왜 그러냐고요? 

처음 방문한 도시와 사랑에 빠지기 바쁜데, 

그림에 한눈팔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미술관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날 떠올리면 

꽤 그럴듯한 이유이지요? 

지금 근데 그때 루브르 박물관 안에 들어가지 않았던 건

 조금 후회가 돼요. 

파리를 이렇게 오래 다시 가지 못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때 당신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생각난 건데, 당신이 기억할지 모르겠어요. 

난 비포 시리즈 영화 중에서 <Before Sunset>을 가장 좋아해요. 

같은 테마, 주인공들이 나오는 세 편의 영화 중, 

가장 낭만과 현실의 중간을 잘 표현한 것 같거든요. 

영화처럼 너무 달콤하지만 

어쩌면 정말 일어날 수도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가 

난 좋더라고요. 


이 영화에서 몇 년 만에 두 주인공이 다시 재회하는 장소가 

파리의 Shakespeare and Company라는 작은 책방이라는 거, 

내가 지겹도록 말해 줬던 거 벌써 까먹었죠? 

비포 시리즈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테지만, 

정말 그 작은 공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땐, 

내가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어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가 한대 놓여 있고, 

책을 읽다 지친 예술가가 잠을 청할 수 있는 

간이침대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죠. 

왜 감독이 이곳을 촬영지로 정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고

내가 점심을 먹는 내내 떠들었는데. 



아, 그때 식당에서 당신은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했었네요.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곧 보겠다고 내게 약속했었는데, 

아직도 이 영화 안 봤죠? 



오늘의 난 파리는 아니지만, 

즐거운 생일이 될 것 같은 기분이네요. 


그럼, 또 편지할게요. 

당신의 하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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