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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Aug 11. 2023

반가운 길손

친구들이 다녀갔다.


한국에서 돌아와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고 났더니 신기하게도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혹시 체중이 좀 줄었나, 기대하며 몸 무게를 재어봐도 여전하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성당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났고, 아주 오랜 친구들이 온다는 반가운 소식 때문이었을까?

주말의 길손은 대학 때 같이 서클 활동을 하던 선후배 부부였고, 지난 월요일부터 며칠 다녀간 친구 부부는 아들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만났던 친구부부와 그의 친한 친구 부부였다.


성당을 다녀와 집안 청소도 다시 하고 곳곳을 살피며 쌓인 먼지를 닦았다. 차고부터  작은 화장실까지. 손님맞이용 장미꽃 한 다발을 꼽으며 마음은 그 옛날로 돌아간다. 대학 새내기, 청춘은 생기 있고 발랄했고 꿈에 부푼 시간들이었다.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안의 나를 기억하며 발걸음이 가볍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선배와 후배는 도착했고, 근사한 고깃집에서 소주 한잔을 곁들인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우리 집. 디저트용 아이스 와인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음은 추억 열차를 타고 그 옛날로 돌아갔다.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남편의 장단이 정겹다. 늦은 시간 두 분은 세미나가 열릴 덴버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청소 점검을 했다. 월요일 오후에 도착할 친구 부부와 친구의 지인 부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이날은 시간이 충분해서 내가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다. 음식 재료들을 다듬으며 지난 시간들을 기억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았고, 그 인연으로 30년을 함께 지낸 세월. 어디에 있어도 늘 궁금하고 든든한 친구이다.  강릉에 있을 때면 강릉으로, 미국에 있을 땐 이곳 콜로라도까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와 주는 친구. 같이 여행도 하는 편안한 친구부부이다. 이번엔 캘리포니아에서 친하게 지내는 지인 부부와 함께 온다며, 그  지인 부부는 콜로라도를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다는 말도 전했다.


우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콜로라도로 이사를 온 지 20년. 이젠 완전히 콜로라도 사람이 된 나는 이곳을 잘 알려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2박 3일의 일정을 준비하고, 음식도 준비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거든다. ‘해파리냉채는?’ 자신이 먹고 싶었는데 손님이 온다니, 핑계 삼아 해 달라는 것 같았다. ‘그게 내 특기인데, 해야지.’ 하며 손을 바삐 움직인다. 음식을 할 때마다 남편은 기미상궁이 된다. 난 음식을 하며 맛을 거의 안보는 스타일이다. 누군가 이것, 레시피 좀 주세요 하면 영 난감하다. 그냥 대충 넣고 버무리고 익히고 지지고 볶는다.  그러나 옆에 남편이 있으면 계속 먹어보며, 싱겁네 짜겁네, 한다. 남편이 옆에 있으면 심부름도 잘해 주어, 아래층 냉장고, 차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잘 갔다 주기도 한다. 기미상궁 겸 심부름꾼 남편을 위하고, 오래된 친구를 위해 정성껏 손맛을 내 본다.


오후가 되어 공항에서 픽업해 집으로 오는 길. 이야기 꽃은 피기 시작했다. 지난번 콜로라도 우리 집을 방문하였던 것이 벌써 7년이나 되었다면서, 세월의 유수 같음으로 화두는 시작되었다. 이어 동행 한 지인 부부와  서로 알아 가기 위한 대화도 이어갔다. 두 분과  남편은 동향이라며 금세 가까워졌다. 한국인들의 지연, 학연들을 성토 하다가도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이어가는 좋은 매체가 되는 것을 보면, 그게 꼭 나쁜 것 같지는 않다.

가게에 잠시 들렸다가, 두 부부가 묵을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집으로 왔다.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두 부부는 감사해했고 준비한 내 마음도 흐뭇했다.


이야기 속에서 이어지는 식사. 와인을 겸한 한국 음식들. 그중에는 내가 강릉에서 가져온 재료도 있고, 이곳에서 사서 준비한 것도 있다. 그 어느 것도 소홀하지 않은 내 마음을 담은 음식들이다. 다행히 친구 부부도 지인 부부도 음식을 잘 드셨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밤 10시가 지나도 끝나지  않는 저녁 식사. 오랜만의 반가움이 음식을 준비한 마음과 상 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아쉬웠지만 다음날 일정을 위해 그분들은 호텔로 돌아갔다. 남은 음식과 그릇을 정리하며 “와인과 친구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 빛으로 아는 사이, 언제 만나도 편안한 사이, 포장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 부엌에서는 식기 세척기가 달그락거리며 돌아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멀리 창 너머 밤하늘에 별이 빛난다. 내 가슴에 내려앉은 우정이라는 별도 함께 빛난다. 그 별 빛은 오래오래 밤하늘과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으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누인 곳이 따스하고 포근하다.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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