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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un 18. 2023

HAPPY FATHER’S DAY!

아버지의 날에


아버지날아버지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아버지의 희생을 다시금 깨닫게 하려고 만든 날이다. 어머니날이 보급되면서 미국에서는 6월의 3번째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며, 여러 나라에서 기념한다. 아버지날을 기념하는 꽃은 카네이션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드리지만,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아버지의 무덤 앞에 올려놓는다. -위키피디아에서-




미국 집에 돌아 가 있었더라면 떠들썩한 파티를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블록 파티를 열 수도 있고 성당의 지인들을 불러 바비큐를 할 고기 손질을 할 수도 있다. 어울리는 야채와 감자와 달콤한 디저트까지 챙기며 들떠 있을 시간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이런 떠들썩한 파티를 하며 즐기는 편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과 오래 살다 보니 너무나 닮아 버렸고, 당연한 내 일이 되어 버린 몇 번의 행사. 그중 하나가 아버지의 날이고 또 하나는 가을에 있는 남편의 생일이다. 남편의 생일엔 모든 것을 내 혼자 준비하지만 여름의 시작에 자리한 아버지의 날은 조금 다르다. 동네 블록 파티인 경우, 주민 센터에 미리 알려, 동네로 들어오는 차 길을 일부 막고, 서너 시간 동안 웃고 먹고 마시고 떠들며 즐긴다. 각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을 한 접시 준비해 온다. 몇 가정만 모여도 근사한 음식이 한 테이블에 마련되고, 시원한 맥주 한잔이나 어울리는 와인 한잔을 곁들이며 동네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시사 이슈 등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통해 가까워지는 이웃들.

freepik 에서 빌려온 이미지

그리고 성당의 지인들이 모이는 아버지의 날엔 친한 몇 가정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한다. 한국식 갈비 양념이 주이지만 가끔은 스테이크를 굽기도 한다. 어울리는 반찬들은 우리 집에 오는 분들이 하나씩 해 오기도 한다. 주인인 나는 미역 냉국을 만들고, 오이 무침을 무치기도 하고 나의 주특기인 해파리냉채를 만들기도 한다. 음식이 준비되면 모여 앉아 맛있는 식사를 나누며 아버지의 날이니, 남편들의 칭찬이 주제였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 반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리 오래 같이 살았느냐 하면… 하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전설의 고향은 끝없이 이어지고. 그런데도 왜 여태 함께 살았냐는 물음에는 아무도 답을 못한다.

freepik 에서 빌려온 이미지

그럼 나의 답은 무엇일까? 43년을 살고 있는 지금. 애교도 없고 사근사근하게 말을 하는 것도 아닌 날 견디어 준 고마움이 제일 큰 것 같다. 물론 유학생 시절에는 공부, 육아와 일을 병행했던 날들이었기에 싸울 시간도 힘도 없었고, 별 갈등이 없이 시간을 지낼 수 있었다.

이민자로 신분이 바뀌자 그다음은 사는 일에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동지 의식과 삶의 전선에서 이기기 위해 살다 보니 트러블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황혼을 바라보는 이쯤에는 무덤덤하긴 하지만 영원한 친구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내편인 사람. 늘 든든하고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날 지켜주고 있다. 남편은 나를 ‘우리 글라라’라고 부른다. 어느 지인은 남편에게 억지 불평을 했다. 맨날 ‘우리 글라라’라고 부른다고. 얼마나 다정하냐고, 와이프를 얼마나 인정하면 꼭 ‘우리’라고 앞에 넣어서 부르겠냐고. 웃자고 하는 소리이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늘 기분이 좋았다. 남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늘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고, 너니까 할 수 있었다고 해주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 되면 다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 했겠지만 인생의 노을이 지는 이 시간에 남편으로부터 받는 인정보다 더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인생의 노을이 나쁘지 않다고,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느냐고 늘 이야기하는 나는 오늘 아침에도 남편과 페이스 톡을 하며,

“HAPPY FATHER’S DAY!  아들, 며느리 하고 잘 지내. 옆에서 맛있는 음식 못 해줘서 미안해.”라고 인사했다.

“괜찮아. 내년도 있고, 지금까지 해마다 해주었는데… 이제 강릉에서 며칠 안 남았는데 잘 지내다 와.”

그 한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다시 그 젊음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와 결혼을 하라면 할까? 하는 우문이 휙~ 머릿속을 지나간다.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열어 놓은 창으로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어 든다.


다시 한번 <HAPPY FATHER’S DAY!>라는 메시지와 하트 뽕뽕 이모티콘을 카톡으로 보낸다.

                 freepik에서 빌려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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