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유럽 여행을 준비하며, 이 책을 다시 들었다는 것은 우연일까, 김영하의 매력에 빠진 것은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그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에서는 그가 정말 살인을 했던 것 같은 디테일한 장면들에 놀랐었는데 TV에서 그는 말도 잘했다. 그의 소설과 산문집이 술술 읽히는 것처럼, 말도 술술 잘하는 작가. 여행을 좋아하는 소설가. 좋은 글을 쉽게 쓰는 작가. 그는 여행을 많이 하기로도 이름나 있다. 대학 때부터 시작했던 유럽 배낭여행이 장편소설 집필을 하기 위한 세계 여행으로 이어졌고, 그 이야기의 배경들이 이 책, <여행의 이유>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만나는 단상들을 그가 가지고 있던 문학적 배경을 접목해 풀어가고 있다.
‘노바디의 여행’이라는 소단락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끌어와, 뉴욕에 살던 이야기를 엮어간다(150-185쪽). 그 안에서 여행자의 정체성 위기를 일갈한다. 허영과 자만심을 버리고, ‘예의 바른 무관심 정도’의 태도로, 구태여 현지인인 척할 필요도 없고, 티 내서 여행객인 척할 필요도 없다고 알려 준다. 그것이 여행을 하는데 가장 안전된 태도이며 객관적으로 한 도시나 여행지를 관찰하기게 좋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여행은 꽤 긴 여정으로 짜여 있다. 비행기를 타야만 유럽이라는 또 다른 대륙에 도달할 수 있고, 그곳에서 다시 유럽 내의 국내선과 선박과 고속열차와 버스를 이용해 짜인 일정대로 움직일 예정이다. 누구도 해 보지 않았던 우리들 만의 여행 경로. 지도를 보고, 다른 여행객들의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고 일정을 짠 우리들의 리더. 그의 수고에 감사하며 우리들은 떠난다.
책의 첫 단락에서 작가는 중국에서 추방당했던 사건을 이야기한다. 비자받는 것을 몰랐고, 그 결과로 한 달 예정으로, 집필을 위해 떠났던 여행이 24시간 내에 추방당했다. 여행 준비는 무모할 만큼 철저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래서 나도 확인을 했다. 유럽 여러 나라 중 우리가 들리는 어느 나라에서도 비자를 받을 필요는 없는지 하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했다. 어둠과 아픔이 벽지의 얼룩이 되어 있는 집보다는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는 완벽하게 자유롭다(65쪽) 라며. 벽지를 사용하지 않는 우리 집 같은 경우에도 그 얼룩이 남아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얼룩이 없다 하더라도 삶의 모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이곳에는 크고 작은 마음의 얼룩들을 그 먼지가 덮고 있다. 그것을 겉어 내는 대청소의 수고보다는 휘레쉬한 시트와 청결한 냄새의 호텔이 좋다는 작가는 그 ‘호텔 방’에 들어서면 삶이 리셋된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처음부터 직립 보행의 종으로 항상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한 지점에서 또 다른 곳으로, 그렇게 여행은, 움직이는 ‘호모 비아토르’들의 본능이기도 했다.
또한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부산, 해운대가 보이는 곳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잠시 한다. 휴양지에서 살다 보니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분이(193쪽)라고 말하는데 그건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강릉이라는 곳이 고향이고 고향에 머무를 때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니, 강릉은 ‘또 여행을 왔구나’ 싶은 곳이다. 고향은 푸근한 곳이지만, 이곳 미국 집에 돌아와서 느끼는 ‘이제 집이네, 집에 돌아왔네’ 같은 안정감은 없었다. 늘 조금은 들뜨고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긴장되는 곳이었다. 아마 김영하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작가는 책을 마치며 초등학교 6년 동안 6번 전학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유년기는 마치 긴 방랑처럼 기억된다(194쪽)고 했다. 책 읽기가, 특히 <15 소년 표류기>나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었다고 한다. 친구를 사귀고 또 헤어지고 그런 불암감을 해소해 줄 수 있었던 것이 책 읽기였고 그중 여행기들을 주로 읽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그 유년기를 통해 이미 여행을 많이 하는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 보니,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213쪽)는 작가의 말을 빌리며, 나의 남은 인생도 누군가의 궤적을 따라가며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여행자가 되어 보려고 한다.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짧을 것이 분명한 지금, 지구로 왔던 우리들의 여행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나의 느낌을 기록하고 나누는 일도 병행할까 싶다.
다음 주 길떠나기 전 미팅을 우리집에서 한다. 주일 미사가 끝난 일요일 오후, 피자 한조각으로 허기를 채우며 이어갈 우리들의 여행 계획.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없을지? 각자의 의문 사항들을 나누며 최종 점검을 할것이다. 10개국을 한달여 동안 여행 하는 일이 그리 쉬울 수 있을까만은, 곳곳에 즐비한 여행 계획서들을 읽고 정리해서 떠난다. 시행 착오조차 우리들이 계획에 미리 넣어두며 여유롭게. 책에서 이야기하는 반쯤의 현지인과 티나지 않는 여행객의 모습을 닮아 보려 한다.
함께 여행하는 이들과 같이 나눈 아름다운 풍경, 좋은 느낌, 맛있는 음식, 고생의 시간들까지 오롯이 나의 것이 될 것 같다. 핸드폰의 공간을 늘려 사진을 찍을 공간을 확보했고, 일정을 보며 작은 노트를 준비했다. 익숙하지 않은 유럽 지도를 보며 장소들을 눈에 익숙하게 하려고 애쓴다. 낯선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며 읽은 책,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내 여행의 이유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