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중환자실의 모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른 새벽, 알람음에 맞춰 잠에서 깨지만, 추적추적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뒤척거리며 알람을 몇 번 더 누르고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 남편도, 건넛방에서 자던 아들도 잠이 깨곤 하였다. 남편이 내려놓은 커피를 마시고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출근할 때도 많았다.
그날 아침도 진한 안갯속을 뚫고 출근을 했다. 언제나처럼 밤에 근무한 간호사로부터 인계를 받으며 커피를 한 잔 더 마시 면서 병실 안쪽을 살피었다. 침상에는 할아버지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단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고, 침상 가에는 은발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앉아 계셨다. 중환자실의 규정상 인계 시간엔 모든 보호자가 병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나는 당직 간호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내분인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요지부동이야. 할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으시대.”
나는 인계받던 일을 잠시 멈추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할아버지 부부의 보호자를 찾았다. 마침 손녀가 와 있었기에 손녀에게 할머니를 모시고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손녀딸은 할머니께 병원 구내식당에 가서 오렌지주스라도 마시고 오자며 억지로 손을 잡아끌었다. 할머니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서며 울먹이는 소리로 침상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올 때까지 절대 어디 가면 안 돼. 알았지?”
작고 굽은 어깨, 어지러운 듯 손녀에게 의지하여 느린 걸음 을 옮기는 할머니. 그때 난 알았다. 그날 내가 맡은 환자는 두 분 이라는 걸.
할머니가 나가시고 본격적인 나의 중환자실 일과가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침상을 바꾸고, 투약을 하거나 새 수액을 걸었다.
환자는 90세, 집 차고 앞에서 넘어지면서 대퇴골이 골절돼 응급으로 수술을 했다. 그러나 수술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가 없었다. 지병인 만성호흡기계 질환 때문이었고 산소포화도를 포함한 혈액검사에서도 언제 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취에서도 깨어나지 못했다. 이런 위중한 상태에서 얼마나 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일촉즉발의 상황이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었다.
환자의 가족들은 보호자 대기실에 모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끌려가 다시피 나간 지 30분도 안 되어 할아버지의 침상 가로 다시 돌아 오셨다. 손녀는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70년을 함께 사셨어요. 그래서 곁을 못 떠나시나 봐요. 안 된다고 해도 기어이 다시 오자고 하셔요.”
손녀는 웃으며, 두 분은 고등학교 때 첫사랑이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사실 할머니도 환자였다. 할머니는 치매로 할아버지와 가족 들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24시간 함께했고, 할아 버지는 할머니의 기억을 대신해 모든 일상을 도왔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지난 시간의 추억들을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며 하루 하루를 사셨단다. 두 분의 소원은 한날한시에 하늘나라로 동행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은발의 부부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수족처럼 사셨다.
할머니는 수술이니 중환자실이니,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단지 할아버지가 당신을 혼자 두고 어디론 가 멀리 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어쩔 줄 몰라했다. 침상 곁을 지키고 앉아 있으면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안 가고 함께 있을 거라고 믿는 할머니. 의식이 없고 인공호흡기가 있어야만 겨우 호흡이 가능한 할아버지 옆에서 ‘날 두고 어딜 가면 안 된다’라는 간절한 소망만 되뇌고 또 되뇌고 있었다.
만약 할아버지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돌아가신다면 할머니는 공황 상태가 올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매시간 투약도 하고, 체위도 바꾸고, 드레싱도 갈고, 석션도 해야 하는 간호 시간에도 할머니는 절대 침상 가를 떠나지 않았다. 나의 간호를 감시하듯 지켜보았다. 할머니의 시선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날 내 환자는 두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괜찮았다.
중환자실에서 거의 매일 만났던 죽음. 그 죽음의 모양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보이는 객관적인 죽음의 신호도 있다. 할아버지에게는 그게 보였다. 할아버지의 가족들에게 모니터에 뜨는 숫자들의 의미와 혈액검사 등에서 보이는 환자의 상태 를 설명했다.
상황을 판단한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면서도 장례 준비를 하고, 신부님을 모셔 와 병자성사를 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단 한 분, 할머니만은 그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동도 없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앉아 계셨다.
“날 혼자 두고 가면 안 돼"
할머니는 들릴 듯 말 듯 같은 말만 계속 되뇌고 있었다. 가족 중 할머니와 제일 가깝다는 손녀가 의자를 끌어당겨 할머니 곁에 앉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진작에 써 놓으셨던 유언장 내용 기억 나시죠? 치료가 아닌 생명 연장만을 위한 치료는 24시간 이상 쓰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벌써 48시간이 지나고 있어요.”
“나도 따라갈 수 있으면 인공호흡기를 떼도 상관없어. 그게 아니라면 저 사람만 먼저 보낼 수는 없어.”
이럴 때 할머니의 정신은 온전했다. 할아버지의 위중한 상태를 이해하시는 듯했다.
“내가 가야 밥도 차려 주고, 빨래도 해 주지.”
저세상에 같이 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러나 사실 최근의 모든 일상은 할아버지가 맡아 하셨으니, 할머니는 잡고 있는 손을 놓기만 하면 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먼저 하늘나라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저와 있어요. 제가 매일 할머니 손잡고 다닐 테니, 이제 할아버지 손을 놓아주세요.”
손녀의 간곡한 말에도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별 차도를 보이지 않은 채 사흘이 지났고, 할머니도 침상 가에서 사흘을 지냈다. 이제 할머니마저 쓰러지실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안되겠다 싶어 가족들에게 부탁했다.
“할머니가 중환자실에서 할아버지의 침상을 지키는 게 더는 무리인 것 같아요. 강제로라도 할머니를 댁으로 모셔 가고, 할아버지의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해요”.
손자, 손녀에 의해 끌려가다시피 병실을 떠나는 할머니는 ‘절대 혼자 가면 안 돼’라는 말만 반복했다.
할머니가 떠나신 뒤 할아버지가 원하셨던 대로 인공호흡기와 불편했던 기구들, 모니터와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던 모든 선 을 제거하고 투약을 중단했다. 그러자 10분도 안 되어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아주 편안하게, 가족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고 평화롭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마지막 가는 길에 편안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설사 할머니의 뜻과 다르다고 해도, 할아버지의 뜻을 존중하는 게 맞았다. 가족의 따스한 시선 안에서 평온한 배웅을 받으며 떠나시는 길.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시는 길에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건 남겨진 이들의 몫으로 두는 것이리라. 먼저 그곳에 가서 편하게 자리 잡고 할머니 오실 날을 기다리시면 되지 않을까.
서서히 온기를 잃어가는 모습에서 평화를 배운다면 너무 모진 말일까? 평화 가운데서 무릎 꿇고 있는 가족들의 숙연함. 그것도 사랑이리라.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죽음 앞의 삶’은 나의 일상 이었지만, 그 어느 죽음도 쉽지가 않다.
중환자실의 경험이 길어 질수록 만났던 죽음의 모양들도 달랐고 무게도 달랐다. 이쯤엔 죽음에 무뎌질 만도 하건만, 돌아서며 나도 울컥 눈물을 삼켰다. 눈물의 저편은 무지갯빛이었다. 할아버지도 안데르센 동화에서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그곳에 당도하셨겠지. 할아버지의 곁을 돌고 있는 천사들의 환영을 보는 듯한 착각 속에 잠시 서 있었다.
가족들이 돌아가고, 빈 병실을 정리하며 퇴근 준비를 했다. 70년이란 세월 동안 당신이 가장 사랑하셨을 할머니, 천상에 좋은 자리를 잡고 재회의 그날을 기다리시겠지. 언젠가 따라가실 할머니가 어려운 길로 잘못 들지 않게 길잡이가 되어 주시고, 따 듯한 손을 내밀어 줄 준비도 하시겠지. 그때도 가족들은 따뜻한 사랑으로 환송식을 하겠지.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퇴근길, 라디오에서 오래된 팝송 <마이 웨이>가 흘렀다. 나도, 내 사랑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서 저 마다의 길을 걷다가 언젠가는 비슷한 모습으로 그곳에 도착하겠지. 다시 만나면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서서 이 짧은 며칠을 기억하시며, 나를 아는 사람이라고 반갑게 맞이해 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