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신년 벽두에 다짐할수록 작심삼일이 될 때가 허다하다. 중년에 들어서 하는 다이어트는 당초 목표한 대로 실천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살을 좀 빼면 무릎관절도 좋아지고, 허리도 덜 아플 텐데 말이다. 국수와 감자를 좋아하는 천생 강원도 아줌마인 것을 어쩌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한동안 열심히 등산을 다닌 적이 있다. 로키산맥 끝자락에 살아서 차로 일이십 분만 가면 산길은 항상 새로운 풍경으로 나를 반기었다. 토요일 아침마다 남편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싱그러운 바람과 흔들리는 들꽃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 계곡과 언덕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풍광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도 거의 하지 못한 것은 생업 때문이었다. 남편이 하는 사업을 도와야 했다. 작은 소매상인 가게는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 손이 참 많이 필요했다. 편하게 쉴 팔자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얼마 전까지도 나는 가게와 병원, 두 곳에서 종종걸음을 쳤다.
그날 만났던 환자는 서른다섯 살 유진. 급성백혈병 환자였다. 유진이 쓰러진 곳은 동네의 야트막한 등산로였다. 아내의 손을 잡고 쉬엄쉬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숨이 차며 한 걸음도 앞으로 더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철근을 매단 것 같은 발목의 무게에 주저앉았고 아내는 혼자 힘으로 남편을 움직일 수 없어서 구급차를 불렀다.
그가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신에 붉은 반점이 있었고 인공호흡기를 걸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아내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다가가 살포시 안아 주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 분 이상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의자를 당겨 내 옆에 앉았다.
“유진의 발병을 안 것은 두 달 전이에요. 하도 피곤해해서 병원에 가 보라고 했어요. 아직 젊은데 이유 없이 너무 피곤해하는 것이 이상해서요. 사실 이유는 있었지요. 저희 둘이서 작은 잡화점을 해요.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거든요.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작은 공간에서 종일 함께 있으니 부딪힐 일도 많았죠. 똑같이 일하는데 난 별로 힘들지 않는데 유진은 늘 피곤 하다고 하는 거예요. ‘남자가 뭘’ 하며 난 늘 불만이었지요.”
남편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는지 그녀는 잠시 말을 맘췄다 힘들게 말을 이어 갔다.
“좀 더 일찍 의사를 만나라고 했더라면……. 피곤하다고 했을 때 제가 그랬어요. 남자가 이 정도 체력도 안 되느냐고. 체력을 좀 기르라고. 유진은 운동보다는 잠으로 체력을 보충하겠다고 했는데…….”
남편의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텐데, 과거에 대한 자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다. 환자 상태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환자의 상태가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물론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요.”
“지난주 의사를 만났을 때도 이번 항암 주사가 별 효력이 없다면 힘들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린 이제 어떡하죠? 제 삶은 어떡하죠?”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병실을 나서며 마음이 착잡했다. 가장 씩씩해야 할 30대 청년의 심각한 병세는 그리 쉽게 호전될 것 같지 않았다. 두 번에 걸 친 항암 치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유진의 병세는 이미 중증 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창밖 풍경은 병실 안쪽의 고통을 모른 채 고요한 풍경화처럼 흔들리지도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퇴근이 가까운 시간, 유진 담당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유진 환자의 부모님이 도착했어. 그런데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아.”
나는 유진의 병실로 향했다. 가족들과 담당 의사와 원목이 모여 앉았다. 어려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하는 나의 자리, 케이스 매니저의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하면 할수록 더욱더 어렵기만 하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유진의 케이스 매니저입니다. 다들 모이셨으니 미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에 부모님과 아내, 주치의, 원목이 함께했습니다.”
난 간단히 우리가 왜 함께 모였는지를 설명하고, 현재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내 말을 한참 듣던 유진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은 참으로 병약했던 아이였어요. 늘 가슴을 졸였지요. 사춘기를 지나며 우울증도 심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다행히 여자 친구를 만나 생활의 패턴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둘이 등산도 가고, 여행도 가고, 수영도 배우더라고요. 병약했던 아이가 점차 건장한 청년이 되어 갔어요. 그 변화를 가족 모두가 반겼어요. 그랬는데 저렇게 되었네요.”
어머니의 말을 듣던 주치의가 말했다.
“이럴 때 ‘담당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제가 한심하게 느껴지네요. 항암치료제를 두 번 이나 써 봤지만 유진의 경우에는 전혀 반응을 안 하네요. 이 정도면 백혈구수치도 좀 좋아져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요.”
의사의 말은 짧았지만, 희망은 전무한 것처럼 들렸다. 유진의 아내는 듣고만 있었다. 아무런 말을 못하는 그녀가 너무도 안 타까웠다. 원목은 유진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고, 난 남아서 그들이 지낼 곳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미팅은 끝났다.
퇴근길, 풍경은 이미 어두운 명암의 수묵화가 되었고, 유진의 사투도 어두움 속에서 계속되었다. 답보 상태의 병세가 일주 일이 넘자, 담당 의사도 가족도 모두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젊은이는 그렇게 왔다가 소리 없이 떠나는 걸까.
다음 날 병실에는 유진의 아내는 혼자 침상을 지키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통통한 그녀였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등뼈는 도드라진 느낌이었다.
“유진의 체력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아침 마다 실내운동을 함께 하고 단백질 효소도 사다 먹이고 저녁이면 동네 산책을 했지요. 그러나 가게를 하면서 시간이 항상 부족했어요. 둘 다 운동을 좀 더 하고 싶었지만, 아침이면 가게 문을 열 어야 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가 집에 돌아가면 모든 게 귀찮지요. 우리처럼 소규모 자영업을 안 해 본 사람들은 몰라요. 같이 운동도 하고, 그이를 좀 더 챙겼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것 같네요. 너무 늦었어요. 만약 이 사람의 상태가 호전되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종업원을 늘려야지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니터엔 빨간불이 들어왔고 호흡기에선 댕댕거리는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 동시에 병실로 뛰어 들어온 간호사가 외쳤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이어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난 그녀를 조용히 일으켜 세워 손을 잡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 계세요? 지금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위급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나의 단호한 억양에 감을 잡았을 것이다. 서너 군데 전화를 걸고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좀 더 일찍 챙겼어야 했는데, 좀 더 일찍…….”
유진의 아내는 어느 노래의 후렴구처럼 자신을 책망하며 같은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가 쉬고 싶었으며 쉬어야 할 때이고, 그가 운동하고 싶었으면 그때가 운동해야 했던 시간인 거죠. 잠을 자고 싶었으면 또 그때가 자야 할 시간인 거고요. 안 좋은 일 을 당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후회를 하죠. 하지만 이미 그 시간은 지나 버렸어요.”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젊은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뿐이었다. 45분의 심폐소생술이 끝나고 끝내 유진은 세상을 등졌다. 무엇이 그리 급해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부모보다 앞서 길을 떠날까. 잡아서 묻고 싶었지만 그건 우리의 몫이 아니다.
나는 병원에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가게로 출근을 했다. 처음 해보는 장사는 녹록지 않다. 유진이 왜 쉼 없이 가게에 매달렸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매트를 깔고 유튜브를 틀어 놓고 나무처럼 외발로 서거나 동물처럼 엎드려 심호흡을 한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개근상 한 번 받지 못했던 나의 체력은 이제 억척스러운 코리안 아줌마가 되었다. 병원에서 는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아 10년 근속상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체력은 정신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이겨내고 견뎌야 하는 이민 생활이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억척일 수 있었을까.
‘노동은 노동이고 운동은 운동이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난 가게에서 일하는 내내 휴대전화의 만보기 앱을 켜 놓고 만 보를 채우기 위해 종종걸음을 한다. 하루의 목표는 최소 만 보. 그게 내 건강에 얼마나 이로운지 알 수는 없지만 만 보를 채운 날과 못 채운 날의 수면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충분히 걸은 날은 숙면을 취해서 다음 날 아침에 머리가 맑고 상큼하다. 커피 한 잔이면 거뜬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걸은 숫 자가 적은 날은 밤새 뒤척거린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노동 역시 운동이라며, 스스로에게 최면 을 걸며 종종걸음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