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퇴직 후 가장 좋은 점은 언제라도 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고향 강릉은 언제 가도 정겹고 따스하다. 고향이라는 알싸 한 단어를 나는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철이 든 곳.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맞춰 경포에서 안목으로 이어지는 바닷가 솔밭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길들이 많겠지만 내게 가장 위안이 되는 곳은 안 목에서 경포대까지 이어지는 솔밭 길이다. 옆에서 길동무하는 파도가 잔잔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파도가 거세면 마음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 바람 따라, 세월 따라 굽어지고 휘어진 해송들, 숲으로 난 길에서 은은한 솔향이 나를 반긴다.
난 늘 70세까지는 간호사 일을 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래야 마음도 몸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건강도 유지된다고 믿었다. 40년 동안 ‘중환자실’이라는 긴장된 곳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천성이 느긋하지 못해서 항상 바쁘게 살아서일 수도 있다. 나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스스로를 몰아쳤다.
이 년 전 겨울, 평생 하던 일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일까? 어디가 아팠던 것도 아니고, 일이 힘들었던 건 더욱더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늘 바쁜 척하고 늘 종종걸음을 치는 내 모습에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도 살 만하고, 남편과 아들이 하는 사업도 정상 궤도에 올랐는데 왜 이리 바쁘게 살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이제 그만 병원 일을 놓고 싶었다. 남편에게 어떻게 생각하냐며, 병원 일을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을 던졌다.
“글라라, 그대가 하기 싫고, 어딘가 매여서 해야 하는 일들이 부담스럽다면, 오늘이라도 그만둬! 그 정도면 충분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만둬도 좋다는 남편의 답을 듣자, 진작 그럴 걸 미루고 있었나 싶었다. 젊은 시절엔 풀타임 간호사에 풀타임 학생으로, 이후엔 간호사와 글쓰기를 병행했다. 지난 10년 동안은 간호사와 가게 일을 병행하며 숨 가쁘게 살았었다.
마지막 출근일 다음 날 아침, 허리가 아플 정도로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해는 중천에 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는 건 이런 게으름을 허락하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니 동네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를 둘둘 감고 장갑을 끼고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동네를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상큼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얼마나 걸었을까, 코가 시려서 집에 들어와 늦은 점심을 혼자 먹으며 웃음이 나왔다. 이 편안함!
그러고는 오래된 절친 부부와 하와이의 섬들을 도는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도착하는 섬마다 풍경이 달랐다. 예전에 왔던 곳인데도 또 좀 다르게 느껴졌던 건, 퇴직 후의 여유로움 때문일까? 많이 웃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그 편안함, 좋아 보여. 그동안 자기 참 딱딱했거든.”
그래, 어떤 틀에서 벗어났을 때의 편안함이 이런 거구나. 미소가 절로 번지는 편안함, 열흘 간의 크루즈 여행 중에 많이 웃었다. 주황으로 넘어가던 노을, 그 황홀함 속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풍경도 저렇게 아름답게 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방에서 저 멀리 로키산맥의 최고봉 중 하나인 파이크스피크가 보인다. 노을은 언제나 그곳으로 넘어간다. 노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강릉 송정해변의 파도가 익숙 해진 것처럼,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내 발걸음도 아주 편하고 익숙해졌다. 지는 노을도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것을…….
오늘 아침 SBS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위 글을 김창완 님이 낭독해주셨습니다.
멋진 낭독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