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병원 대표 번호가 뜨며 휴대폰이 울렸다.
"전지은 씨인가요?"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스테파니예요. 5호실 환자 짐의 아내. 이야기 좀 할 수 있나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스테파니. 5호실 환자 짐의 아내이자 보호자였다.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안방 문을 열면 아직 창 틀에 짐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시선을 돌리면 온 사방에 짐의 환영이 보여요.”
“집에 가지 말고 당분간 시댁에 가 있으면 어때요?”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시댁에 안 다녀요. 시부모님들이 저를 싫어하셔요.”
“그래요. 그러면 누구 다른 친구나 친척은?”
“아무도 없어요. 여긴… 벌써 이틀째 한잠도 못 잤어요.”
“그래서 환영도 보이는 것일 수 있어요. 집에서 일어난 일이니 집이 무섭기도 할 거고요. 우선 잠을 좀 자야 할 것 같은데 주치의에게서 수면제나 진정제 처방을 받아 한 알 먹고 자도록 해요. 한국 교회에 연락해 드릴까요?”
“아니에요. 교회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냥 견디어 볼게요. 그만 끊어요.”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퇴근 후 걸려 오는 병원 전화는 대부분 반갑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급한 상황이 발생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는 전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화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퇴근 후 걸려온 그녀의 전화 역시 그러했다.
정신적으로 약간 불안한 것 말고는 크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크게 위급한 일도 아닌 것 같은 전화. 전화를 끊고 나니 멍한 느낌이 들었다. 퇴근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는 끊어버리는 무례함. 혹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일까.
짐이 중환자실로 입원한 것은 월요일 오후. 부부 싸움 끝에 목을 맸다. 10여분 후쯤 아내에 의해 발견되었고,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짐의 호흡은 분당 5번, 심장 박동 수는 16번 정도로 아주 위험했다. 짐은 도착한 응급 요원들에 의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로 입원했다.
화요일 아침 그의 이름을 봤을 땐 금방 한국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이 환자로 들어오면 더욱 애틋한 감정이 들기에 자세히 차트를 살펴봤다. 병력을 살피자 건강상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신체 건강한 청년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이 확실했다.
이민 1세대들은 자녀들의 결혼 적령기가 되면 자식들의 배우자로 '한국 사람'을 고집한다. 짐도 한국 여자를 만나 결혼하겠다고 하자 부모들은 조건 없이 허락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시작은 거기에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스테파니는 남편을 독점하고 싶어 했고, 시댁과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스테파니는 남편을 독점하는 것이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남편과 아이들, 자식과의 울타리 속에 남편을 묶어 두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남편은 부모들과 형, 누나들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정도 잘 융화되고 화목하기를 바랐다. 스테파니는 사사건건 시댁과의 일들에 부딪혔고 혼자 외롭게 고립되었다. 남편이 백방으로 노력을 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짐은 이혼을 결심하였고 목을 맨 그날 저녁, 스테파니에게 마지막 통보를 한 상태였다.
다음날 스테파니를 만났을 때 생각보다는 모습이 괜찮았다. 스테파니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 아버지의 빈자리가 상처로 남아 마음의 아픔이 아직 치유가 되지 않은 듯했다. 스테파니의 엄마는 이혼 후 한국을 떠나 이민을 왔다. 그리고 딸을 키우며 부 목사까지 맡게 된, 말하자면 자신의 꿈을 이루어낸 사람이었다.
내가 교회에 전화한다고 했을 때 극구 반대하던 스테파니가 이해가 갔다. 성공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그 자리에 서게 된 엄마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는 딸의 결혼생활. 가장 가깝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은 친정엄마에게조차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 할 수 없다면 그녀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을 것이다. 스테파니와 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짐의 자리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결혼이란 둘이 함께 가는 길이다. 어느 쪽의 일방통행도 용납되지 않는다. 수입과 지출, 육아와 가족과 친지들과의 관계들이 잘 정리되고 같은 방향으로 갈 때는 문제가 없다. 이럴 때 결혼은 서로에게 의지와 도움이 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동반자 관계이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관계는 연쇄 작용으로 엉키게 된다. 사람 관계가 그러하듯, 예쁘다고 보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나쁘다고 보면 모든 것이 싫고 이상하게 보인다. 모든 시선은 자신에게서 시작하는 것이지 상대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나 같은 이민 1세대들은 ‘아메리칸드림’을 내세워 재력을 키우는 것에 목숨을 건다. 청소, 세탁소, 그로서리 등 노동 집약적인 일로 시작하여 술 가게, 모텔 등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주로 하는 돈벌이 수단이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직업을 가졌다 해도 1세대인 경우 한국인 고객이 대부분이다. 한국말이 더 쉽고 한국 문화가 더 편한 것도 있지만 우린 그 '우리'라는 울타리에 묶여 우리끼리 나누고 우리끼리 우리 안에서 지지고 볶는다.
이민 온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분분은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는 반드시 우수반에 들어가야 하고, 대학은 아이비리그에 가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한 이민자 대열에 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서운 단절도 있다. 부모는 한국말로 묻고 아이는 영어로 대답하는 가족 관계에서 두 세대는 마음 통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1세대는 일에 치여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2세대는 미국 사람임에도 사회 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받는 차별에 힘들어한다. 친구들은 이민 가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는 자신의 갈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속에서 아이들은 많이 아파하고 많이 힘들어한다.
이런 이민 가족의 어려움도 짐의 갈등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참으로 착한 아이'였기에 자신의 힘든 일상을 표현하지 못했을 짐. 가슴이 아려왔다.
삼 일 후 짐은 깨어났지만 자신이 했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싸웠던 것은 기억하니?"
"네."
"심하게 싸웠어? 왜 싸웠는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이었던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아요."
"헤어지자는 말을 했어?"
"네."
"헤어지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야?"
"네."
부부 관계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죽음이고 둘째가 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어디 선가 본 적이 있다. 짐은 횡설수설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격한 행동을 이틀이나 계속했다. 나와 이야기하거나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는 말짱하다가도 돌아서면 주사 바늘을 뽑거나 모니터 선을 빼버리는 등의 행동을 했다.
정신과 의사가 급하게 오고 '정신장해'가 있어 입원 치료를 요함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번엔 부모님의 걱정이 컸다. '정신과'라는 단어에 크게 놀란 것 같다.
"맹장염 걸리면 째고 꿰매고 외과에 입원하지요. 당뇨에 걸리면 내과에 입원하고 산모는 산부인과에 입원합니다.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는 게 당연합니다. 요즈음은 약이 좋아 약물과 심리 치료, 아내와 함께하는 상담 치료도 같이 받으면 별 문제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냥 저희들하고 싶은 데로 하게 내버려 뒤 주세요. 부모님 도움이 필요하다고 손 내밀 때까지 그냥 두다 보면, 자기들도 알 걸요. 부모님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머니가 힘드시겠지만 그냥 혼자 해결하게 두세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늘 작은 것들로 티격태격하고 그렇게. 어쩌면 이게 좋은 기회가 되어서 자신의 감정을 잘 추스르고, 가릴 것 가리며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도 있어요. 이혼을 해야 할 상황이면 그렇게 해도 되고요. 또 함께 치료를 받아 다시 잘 살 수 있으면 더 좋고요. 그런데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어야지 억지로 하는 것은 안될 것 같아요. 하마터면 아드님 잃어버릴 뻔하셨잖아요.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알아. 알지. 그런데 저거 불쌍해서. 착한 것이 너무 불쌍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짓을 했을까 싶어서."
"아버님. 다 큰 자식이 뭐 불쌍합니까. 착하기 때문에 양쪽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이런 일 저지른 것 아닙니까. 좀 두고 보시자고요. 저희끼리 어떻게 하나 좀 두고 보세요. 그리고 그들의 결정에 따라 부모님은 도와 주실 수 있는 만큼만 도와주시기만 하면 돼요. 몰론 도움을 청할 때 만 말이지요."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한국말로 병원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 자세한 설명을 쉽게 드릴 수 있었다.
중환자실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이 생겨 입원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낯선 환경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럴 때 조심스럽게 다가가 조근조근 설명을 하면 그들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오늘도 힘차게 중환자실의 통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다.
모처럼 쉬는 날이면 인터넷 상에 떠있는 이야기들을 섭렵한다. 시카고의 한인 이민 가족 이야기를 다룬 '더 하우스 오브 서 The House of Seo'라는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제 상을 휩쓸었단다. 90분짜리의 다큐멘터리로 아메리칸드림 속에서 조각난 이민 가족사란 소개 글이 눈을 사로잡았다. 어머니의 생명보험금을 노린 누나의 약혼자를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앤드류 서(한국 이름 서승모)씨의 이야기. 꼭 사서 보아야겠다며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보를 프린트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짐은 스테파니와 같이 상담 치료를 시작했고 부모님들과 대화도 잘 되고 있단다. 이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이겠지만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모습들에 씁쓸하기만 하다.
다 자란 나무를 뿌리 채 통째로 옮겨 심으려면 구덩이는 깊고 넓어야 하며 좋은 흙과 자양분과 물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야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자양분과 물줄기를 끌어올려 잔가지를 친다. 새잎을 내는 데는 몇 번의 계절이 바뀌어야 한다.
처음엔 시들 거리며 금방 죽을 것처럼 비실 댈 수도 있다는 것을 떠나 보지 않은 사람들을 모른다. 화사한 꽃을 피우기 위해, 잔가지를 치기 위해 애쓰는 나무처럼 제자리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고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다. 웃자라거나 굽어진 나무처럼 견디다 못한 심리적 부담감은 충동적인 상황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짐이 그랬던 것처럼. 부부관계도 가족 관계도 새로운 토양 안에서는 자양분을 끌어올려 제 색깔을 내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