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아침 회진을 막 마치고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는데 후배 간호사 둘이 붉은 장미꽃 다발을 만지고 있었다. 누군가 선물로 보내 준 것처럼 보였다.
“누가 특별한 날인가 보내? 꽃 배달이 왔나 봐.”
“꽃 배달 온 것은 아니고 우리 둘이 사 왔어. 특별하긴 하지.”
"특별해? 무슨 일인데?"
“11호실 환자, 오늘 결혼식이거든.”
“뭐 결혼식?”
제리가 중환자실에 들어온 것은 2주 전이었다. 주로 밤에 일하는 전자공이었는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새벽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차가 굴렀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으나 워낙 낭떠러지가 급해 차가 구르며 목을 심하게 다쳤다. 목 위 얼굴은 괜찮았으나, 경추의 골절로 전신 마비가 온 상태였다.
제리의 보호자는 스스로를 부인이라고 소개했던 제인은 제리의 여자 친구였다. 둘이 함께 산 것은 11년. 둘 사이에는 11살과 7살의 아들과 딸이 있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였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여자 친구 제인은 제리의 정신이 돌아오자 가장 먼저 한 것이 청혼이었다. 제리는 그 자리에서 "예스"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제리가 가야 할 길이 멀고 험난 하다는 것을 제인은 잘 알고 있었다. 제인은 그래서 더더욱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녀가 옆에 있어야만 제리의 재활과 간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오늘, 병원의 원목을 모시고 병실 안에서 간단한 예식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둘의 사랑을 축하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나섰다.
꽃을 사 부케를 만들고 제인의 머리 손질을 해주고 중환자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웃들의 손을 잡고 깨끗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나타났다. 젊은 원목도 로만 칼라의 정복을 입었다. 간호사들이 하객이 되어 방안에 둘러섰다. 제리는 밤 당번 간호사가 면도도 시켜주고 그동안 길어진 머리를 뒤로 묶어 아주 핸섬한 모습이었다.
제인은 꽃무늬 원피스와 잘 어울리는 붉은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제리의 침상 가에 섰다. 아이들은 엄마 곁에 서 있다. 원목이 묻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평생 이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하겠습니까?”
“네~~ 에!!!”
제인의 소리가 병실을 울리게 크다. 우린 그녀의 장난스러운 커다란 목소리에 킥킥 웃었다.
“당신은 제인은 아내로 맞아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물론이지요”
이어 원목의 짧은 설교가 있어졌다.
"이 힘든 일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제리, 당신은 행운아입니다. 그리고 제인, 지금까지 사랑하며 살았던 것처럼 어려운 일이 있어도 사랑했던 그 시간만 생각하며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세요. 당신의 힘이 될 아이들이 있고 둘의 사랑 있으면 헤쳐나가지 못한 난관은 없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제인은 움직일 수 없는 제리의 손을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박수를 쳤다. 사진을 몇 장 찍고 간호사들과 물리 치료사들이 제리를 휠체어에 앉혔다. 허리를 묶어 안전하게 하고 제인이 휠체어를 밀며 병원 마당으로 나갔다. 딸은 엄마의 부케를 건네받아 손에 들고 옆에 서 있다.
“바깥공기가 이렇게 신선한 지는 오늘 처음 알았네.”
제리가 말한다. 오랫동안 인공호흡기를 걸고 있었던 후두에서 나는 소리는 거칠고 가늘었다. 그러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처음 그가 들어왔을 때는 아무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장담을 못했었는데 말이다.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둘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다. 물리치료사가 그만 들어가자고 재촉을 했다. 혹 차가운 공기에 감기라도 들면 어쩌겠느냐며.
제인은 서서히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 가려다가 멈추어 손으로 작은 폭포수의 물을 만진다. 손에 묻었던 물을 제리에게 뿌리며 웃으며 말한다.
“시원 하지? 옛날처럼 해봤지!”
제리도 따라 웃으며 분위기는 마당의 햇살처럼 밝다.
돌아온 병실에서 부케로 들고 있던 붉은 장미를 꼽아 놓는다. 중환자실에서는 병실 안에 꽃을 두지 못한다. 꽃가루가 흩어지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지만 오늘만 예외이다.
일주일 후 제리는 재활 병동으로 떠났다. 아직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갈 길이 멀지만 사랑은 그것도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