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엄마'랍니다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by 전지은



매일 오전 9시 30분, 중환자실의 병동 순회가 시작된다. 중환자실 의사, 담당 간호사, 간호 교육 담당자, 약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재활 치료사, 언어장애 치료사, 원목, 사회사업가 그리고 때에 따라선 실습 학생들과 케이스 매니저인 나까지 꽤 많은 인원이 이동한다.


팀의 리더인 나는 환자의 매일 특이 상황을 기록하고 각 파트마다 의문이 있으면 질문과 답을 하게 한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빨리 다음 환자로 옮겨가게 해야 정해진 시간 내에 라운딩을 마칠 수 있다. 방 번호 1번에서 시작하여 36번까지 보통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새로운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이유를 듣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치료 계획을 잡는다. 계속 입원해 있었던 경우라면 지난 24시간 동안의 상태는 얼마나 호전된 것이며 다음 치료 단계는 무엇인지 의료 팀은 서로 의견을 나눈다.


13번 방에는 주말 동안 여자 환자가 새로 들어와 있었다. 지나던 중환자실 의사가 한마디 한다.


“또 13번 방이네. 혹시 내가 자동차 사고로 중환자실에 오면 말이야 절대 이 방에 넣지 마. 이 13번 방. 징크스가 있어 꼭 뭔가 잘 안 풀린단 말이지. 불행한 케이스도 많고 말이야. 저 환자도 말이야. 어쩌냐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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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늦은 시간 남자 친구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차가 전복되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으나 심한 충격으로 좌석의 앞과 옆에 있던 에어백이 터졌다. 앉은 자세에서 머리가 심하게 앞으로 숙여졌다가 뒤로 졌혀지며 부딪친 것 같단다.


에이미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두통이 심하며 뒷목이 뻐근한 정도란다. 병력을 살펴보니 10살 때 강물에 빠져 익사 직전 구조된 적이 있어 정지적 장애가 있었고, 18세의 아들과 친정 엄마, 셋이 함께 살고 있었다.


‘경추 2-3번의 완전 골절’이 에이미의 진단명이었다. 대부분 대형사고가 있어 응급실을 통해 환자가 중환자 실로 들어오는 경우 전신의 엑스레이는 물론이고 부상이 의심되는 여러 곳을 단층 촬영을 하게 된다. 환자의 경추 엑스레이와 단층촬영이 컴퓨터 화면에 떴다. 곧게 있어야 할 경추가 부러지면서 뒤로 튕겨 나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거의 일자로 평행하게 보였다. 말 그대로 목이 부러졌다.


20 파운드의 견인 추를 걸었다. 양쪽 측 두부에 나사못을 박고, 줄을 걸고 목을 잡아 뺀 다음, 그 중심에 무거운 견인 장치를 다는 것이다. 추는 침상의 머리 쪽에 대롱대롱 매달려, 환자의 목이 어느 정도까지 바로 돌아오도록 도움을 준다. 목의 근육과 경추의 부종이 빠지며 수술이 용이하게 되도록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이지만 머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견인 추를 보면 '얼마나 무겁고 불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일 후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부서진 경추들을 바르게 맞추어 세우는 수술이었다. 달고 있던 무거운 견인장치를 떼어 버렸고 목에는 부드러운 목 지지대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지마비. 사고의 그 순간 이미 그렇게 된 것이다.


에이미는 우리에게 슈퍼맨으로 기억되는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와 똑같은 상태가 되었다. 크리스토퍼는 당시 승마 사고로 경추 골절을 당했고, 사지 마비로 9년쯤을 살았으며 합병증인 욕창이 전신 감염으로 진행되어 심장마비로 별세하였다. 그의 아내는 사고 이후 줄곧 24시간 그의 곁을 지키며 간호했고 줄기세포 연구 재단을 만들어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잃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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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는 그날 사고 차량을 운전했던 남자 친구, 그리고 함께 사는 엄마와 아들이 있다. 세 사람이 돌아가며 환자를 돌본다면 어느 정도 돌볼 수는 있겠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그녀가 얼마나 견딜지는 글쎄…. 갈 길이 너무도 멀고 험난한데, 환자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 때 맞추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생글거리며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


남자 친구가 자기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아들이 얼마나 착한지 등등. 몸은 움직일 수 없어도 목 위의 부분들은 말짱했으니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앞으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험난한 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남자 친구와 같이 살 거란다. 그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운전을 했던 남자 친구가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며칠 후 염려했던 것처럼 호흡기에 문제가 있었고 기관지 절개술을 하게 되었다. 임시로 인공호흡기를 다시 걸고 이틀이 지나자 호흡기 상태는 몰라보게 호전되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절개한 기관지를 통해 가래를 제거해 주고 산소를 공급하자 상태는 많이 안정되었다. 다시 에이미는 날 불러댔다.


기관지 절개 때문에 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입술 움직이는 것으로 대화를 나누어도 에이미의 재잘거림은 참으로 잘 이어진다. 바람 새는 것 같은 소리의 대화. 잘 참고 들어주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방식대로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인지도 몰랐고 진짜 지적 장애로 발생하는 일일 수도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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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로 그녀를 돌보아야 하는 간호사들은 무척 힘들어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것 때문에. 에이미는 움직일 수가 없었으므로 도움을 청하는 벨을 누를 때는 마이크 같이 생긴 기구를 침상 가에 달아 두고 고개를 돌려 있는 힘을 다해 분다. 그럴 땐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부는지 "빵~~~' 하는 소리가 온 중환자실을 울렸다.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내 등을 떠밀어 답을 하게 했다. 그리고 제발 빨리 재활 병동으로 올려 보내라고 아우성이었다.


조금씩 물리치료를 시작하였고 재활 치료도 병행하였다. 전자동 휠체어를 주문하고 갑옷처럼 생긴 척추 브레이스도 주문했다. 혹 척추 손상 환자들이 갖게 되는 쇼크는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살폈다. 환자는 의외로 잘 견디었고 재활 의지도 확실했다. 본격적인 재활을 위해 재활 병동으로 올려 보내며 환자에게 묻는다.


"어떤 경우라도 꼭,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뭐예요?"


환자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이에게 더 의지가 될 것 같아서. 내가 만약 죽고 없으면 아이는 내 남자 친구를 얼마나 원망하겠어. 아빠도 없는데 말이야. 나라도 살아 있어야 아이가 살아갈 이유가 되지 않겠어? 그리고 내 남자 친구도 그래. 자신이 운전하다 내가 이지경이 되었으니, 만약 내가 죽으면 얼마나 괴롭겠어. 내가 살아있어야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생기고. 그가 그랬어, 앞으로 평생 나만 돌보겠다고. 살고 싶어, 정말 살고 싶어."


앞으로 살아갈 일이 얼마나 힘들지 알지 못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진정으로 강한 엄마였고 진정한 연인이었다.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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