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아침 일찍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건넨다.
"대단한 노인이네. 내일 모래가 아흔인데 아직 비행기를 조정한다네. 사고가 났다니까, 혹 당신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을까?"
도시 내에서 사고가 난 모든 환자가 우리 병원으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고 컴퓨터를 켜자 역시 노인의 이름이 새로 들어온 환자 명단에 있었다.
노인은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전신에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은 찢어진 이마를 봉합하느라 생긴 상처로 밤송이만 한 크기의 혈종이 생겨 있었다. 얇은 환자 가운 밑으로 드러나는 다리와 팔도 심한 타박상에 성한 곳이 없었다. 높은 곳에서 추락을 하거나 자동차 사고 등으로 입원을 할 때는, 보통 넘어진 쪽이나 차가 부딪힌 쪽에만 상처가 나게 마련인데 노인의 경우 온몸에 상처가 있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파일럿이었다. 선더볼트(Thunderbolt,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주력 전투기 가운데 하나)라고 불리는 단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조정했다. 혼자 비행기를 조정하며 탑재된 로켓탄이나 폭탄을 떨구는 긴장된 순간들의 연속인 전쟁터를 누볐다고 하니 생사가 일초 여각에 있었던 것은 물론 힘껏 당겨진 고무줄 같이 긴장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화려하고 용맹스러운 과거를 가졌다고 해도 젊음이 갖는 긴장감과 위급 시의 순간 판단력은 시간과 함께 가 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노익장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인 것 같다. 노인은 어느 날 해질 무렵, 공항의 개인 비행기 보관소에 간직하고 있었던 추억의 선더볼트를 꺼내 비행을 시도했다. 그리고 비행기는 높이 올라 보지도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며 추락했다. 노인의 파일럿 면허증은 아직까지 유효했지만 그의 순발력은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이다.
노인이 선더볼트를 갖게 된 것은 14년 전. 당시 그는 전쟁에서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그 경 비행기를 간절하게 갖고 싶어 했다. 때마침 인근의 군부대에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군 장비들을 자격을 갖춘 개인들에게 판매했는데, 노인에게 일 순위로 기회가 왔다. 일부는 아들 며느리와 딸, 사위들이 돈을 모아 보탰고 나머지는 노인의 연금에서 갚는 방법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것이고 추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소장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났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쓸고 닦아 문지르고 반들거리게 만들었고 그의 최고 애장품이 되었다. 노인은 가끔 비행기를 조종하여 공항 주변을 얕게 날곤 했는데, 그때마다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단다. 하늘을 날아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을 모를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노인은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 보행기에 의존하지 않고는 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운전을 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고 비행을 하는 데도 별 문제가 없다 생각해 그날도 다른 때와 마찬 가지로 비행을 시도하였다 결국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기체의 결함인지 아니면 노인의 조정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짧은 활주로에서 여러 번 비상을 시도했던 작은 비행기는 결국 멀리 오르지 못하고 추락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행기 조정석 주위가 강철판으로 만들어져 추락을 했어도 기체만 파손되고 사람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신이 멍들고 피부의 상처가 심했던 것은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노인은 관절염이 심해 종종 프레드니졸론(Prednisolone)이라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 사고 일주일 전에도 통증이 심해져 다시 약을 복용한 상태였다. 또한 사고 후유증으로 음식물 삼키는 기능도 저하되었다. 음식과 침이 목에 걸려 사래가 들리는 일이 잦아져 금식 조치가 내려졌다.
“내 평생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일은 없었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짧은 게 인생이거든. 엊그제 전장에서 돌아온 것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지났잖아. 너무 빨라. 모든 게 너무 빠르다고. 물 가져와 물! 아니면 주스라도 한 잔 주던가. 목이 말라죽겠어! 굶어 죽이겠네 이 병원. 안 주면 그냥 나갈 거야. 그냥 나간다고”
우리들은 모두 손을 놓았지만 부인은 조곤 조곤 설명을 이어갔고 노인은 검사를 받았기로 했다. 결과는 역시 ‘삼키는 기능이 많이 저하되어 있음’이라는 판단이었다. 며칠만이라도 재활 병동에서, 삼키는 연습 좀 받고, 보행기에 의지하였던 걸음도 좋아지고 온몸 상처도 나아지면 집으로 퇴원하라고 하자, 더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은 절대 안 된단다. 반복되는 설명에 지친 나는 그럼, 가정방문간호사와 물리 치료사, 언어 치료사는 어떻겠느냐고 묻자, 그것은 괜찮을 것 같단다. 방문간호사에게 연락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노인이 내게 묻는다.
"비행기 고치는 방문 간호사는 없나? 그것도 있으면 알려 줘!"
그러면서 호탕하게 웃는다.
"비행기 고쳐서 조종, 또 하시려고요?"
"물론이지! 구경하러 올래? "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부인과 딸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노익장일까, 고집일까. 한국 소식을 전하는 미국 신문에서 패티 김의 소식을 접했다. 73세의 나이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실마르 플라이파크에서 생애 처음으로 행글라이더에 도전했단다. "가수로서 무대에 설 때도 설레고 흥분되지만 무엇인가 짜릿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살아있는 기쁨이고 도전"이라며 "하늘을 나는 기분은 정말 인생 최고였다"라고 말하는 그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노래 인생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의 열정에 문득 할아버지의 노익장이 떠올랐다. 지금도 비행기를 손질하고 시간이 되면 낮게 활주로를 오르며 공중을 몇 바퀴 돌고 내려오실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