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환자는 퇴원을 시켜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던 당황한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 지금 아픈데 어딜 간다는 거예요. 여긴 중환자실이에요. 기억하지요? 여기 온 것."
"중환자실이든 아니든 내 알 바 아니고 난 지금 퇴원해야겠어. 빨리 차 대기시켜."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와달라는 듯 날 쳐다본다. 환자에게 말을 건넸다.
"퇴원시켜 드리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데, 지금 나가면 당신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좋은가요?"
"죽기는 무슨. 그런 말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빨리 퇴원시켜 줘."
병원에서도 환자가 원하면 퇴원을 할 수 있다. 의사의 처방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퇴원하는 것을 AMA(against medical advise)라고 한다. 의사는 환자는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지만 환자가 퇴원하기를 원하면 AMA서류에 사인을 하게 하고 퇴원 후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 일절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서약하게 한다.
"술은 언제 마지막으로 마셨나요?"
"술 마신다고 누가 그래? 난 그런 거 하고 상관없어."
"그래요? 혈중 알코올 농도가 200이 가까웠는데요. 혈중 알코올 농도가 200 이면 말이지요, 앞의 물체들이 이 이중으로 보이거나 일자로 걷지도 못해요. 한두 잔 먹어서 그렇게 되겠습니까. 쉬지 않고 저녁 내내 마신 것 아닌가요. 아니면 매일 눈뜨면 시작해서 눈 감고 잠들 때까지 마시던가 해야 하는 수준인데요. 뭘 거짓말을 하십니까. 이왕 병원에 들어왔으니 이 기회에 끊어 보는 것은 어떠세요?"
"허리가 너무 아파서 한잔 마시고 자려고 했던 것뿐이야."
"한잔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지요. 당신에게 무슨 불이익을 주려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거예요. 솔직히 대답해야 치료가 잘 되지요."
"그게 전부야."
그가 고개를 돌리며 외면을 하자 아내가 나선다.
"솔직히 말해요, 당신.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 당신도 인정하잖아요. 병원에 들어왔을 때, 이 기회에 다 이야기하고 치료도 받아요."
"시끄러워!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 퇴원만 하면 될 것을 왜 나서! 나서길!"
다시 내가 나섰다.
"퇴원 후 발생하는 문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의사 말로는 지금 이 상태로 퇴원을 한다면 주차장에서 쓰러 질 수도 있어요. 폐와 왼쪽 대퇴동맥에 커다란 혈전이 생겼고 심장 아래쪽에도 골프공만 한 혈전이 만들어져 있어요. 혈전을 녹이는 치료를 받지 않고 지금 이대로 움직이면 혈전이 혈류를 타고 돌다가 어디에 가서 막힐지 몰라요. 그게 관상 동맥이면 심장 마비, 뇌동맥이면 뇌졸중, 작은 동맥들을 막으면 그 아래 부분은 순환이 안 되어 괴사가 될 수도 있어요. 당신의 혈전 정도는 심각한 상태랍니다. 꼭 그렇게 퇴원을 해야 한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해요."
"엄포 놓지 마. 죽기는 무슨."
"당신. 정말 죽고 싶어요?"
다급한 아내가 외쳤다.
"죽긴 누가 죽어?"
그렇게 긴 언쟁을 하고 있는 사이 의사가 들어왔다. 똑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그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리고 생각을 해 보겠단다. 수면제를 맞고 환자가 낮잠이 든 사이 아내가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의 마지막 음주는 입원하기 직전인 지난밤이었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는 습관을 가진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을 마시게 된 주원인은 허리 통증에서 시작되었는데,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살이 찌고 몸이 무거워지자 요통이 생겼고, 통증을 이기고 잠을 자기 위해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녁 식사와 함께 하는 위스키 한잔 전부였지만 그다음은 한 병이더니 다음은 섞어서 마셨다. 병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주말이면 아침부터 마시기 시작해 종일 여러 가지 술들을 섞어 마셨다. 술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월요일이면 일을 못 나가는 경우도 생겼다.
술에 취하여 지내다 보니 점점 게을러지고 운동도 하지 않아 술의 칼로리와 함께 체중은 점점 더 불었다. 체중 증가로 인한 허리의 통증은 더 심해지고 통증을 잊는다는 핑계로 술의 소비량은 점점 더 많아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졌다.
아내와의 사이에는 아이도 없어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중계자도 없었다. 처음에는 함께 앉아 술을 마셨으나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 자신은 술을 끊었다. 그리고 남편을 설득하고 윽박지르고 애걸하기도 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요즈음은 진통제용 마리화나까지 구입해 피우고 있어 문제가 터지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급성 대퇴동맥 혈전증과 패혈전'이라는 진단명으로 일이 터졌고 이왕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였으니 이 기회를 통해서 술도 끊고, 진통제도 끊어 버리도록 해야겠다고 아내는 말했다.
“이해는 하지만 환자 스스로가 끊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우선 혈전 용해 치료를 하고 상태가 호전되면 그때 다음 것을 준비합시다. 이 동네에도 술을 끊고 진통제를 줄이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어요.”
냉정했지만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다음날, 그는 심한 금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헛소리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얇은 환의를 벗어 버리고 나체로 침상 위에서 뒹굴었다. 처음에는 한쪽 팔을 묵었고 나중에는 두 손과 한쪽 다리를 동시에 묶어야 할 만큼 거칠었다. 매 15분마다 묶여 있는 부분의 순환을 확인하고 정맥 주사약들은 바로 주입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얇은 침대 커버를 덮었다고 해도 그 밑의 흉한 모습이란 참으로 표현하기 힘들다.
금단현상에 주는 아티반(Ativan)이라는 진정제 주사를 계속 주고, 혈액 용해 제제도 동시에 주며 환자의 상태를 관찰했다. 아내는 종일 그의 침상 가에서 그가 소리를 지르며 거칠질 때마다 조용히 말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당신은 환자야. 조금만 참아. 좋아진다니까."라고.
미국에는 중학생이 되면 엄마와 함께 직장을 가는 날이 한 학기에 한 번씩 있다. 딸은 엄마를 따라, 아들은 아빠를 따라 출근을 해 부모님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운다. 우리 아들은 내가 하는 병원 일이 궁금하다며 아빠를 따라가지 않고 나를 따라나섰다.
그때 나는 중환자실 간호사, 밤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 밤 담당했던 환자는 알코올 중독, 금단증상 환자였다. 지금은 법적으로 못쓰게 되어 있는 가죽으로 만든 손발 묶는 끈을 이용해 환자를 묶어야 할 만큼 환자는 거칠었다. 환자의 거친 말고 행동에 나도 똑같이 거칠게 대하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지르며 손발을 묶는 것을 보고 아이는 좀 놀랬던 것 같다. 손으로 아픈 델 만져 주거나 열이 나면 이마를 집어 주는 부드러운 간호사와는 영 딴판의 이미지였을 테니까.
가죽으로 묶으면 끈을 풀기 위한 열쇠가 있어야 한다. 열쇠로 거죽 끈을 풀어 환자의 순환 등을 검사하며 "술 좀 작작 먹어. 이게 무슨 사태야. 정신 차리라고. 응?" 하고 훈계를 하는 나를 보고 아이는 '우리 엄마는 무지하게 강하구나. 등치도 그리 크지 않은 동양인인데도 거구의 백인 남자들을 야단도 치네. 무서운 엄마야'라고 생각했었단다. 물론 아주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들은 술을 거의 안 한다. 취중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도 말하듯 말 그대로 '술 권하는 한국 사회'. 생활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직장 동료들 간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우정을 위해, 또는 사랑을 위해, 그리고 무엇에 대한 축하와 이별을 핑계 삼아 우리들 속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지는 나 같은 나이가 되면 수면제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고 적포도주 한잔은 순환에 좋고 심장 질환을 막아 준다며 저녁 식사 때 반주로 마시기도 한다. 적당한 양과 적절한 이용은 사는 것에 윤활제가 되기도 한다. 잠을 못 자 뒤척이는 것보다는 다음날 아침의 상쾌한 기상을 위해 한잔 마시고 푹 자는 것이 좋으니까. 그러나 이용이 남용이 되고 한잔이 한 병이 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술이 가정불화, 가정 폭력의 도화선이 되는 것들을 우린 자주 목격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술은 즐기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매일 술을 마시고 주말이면 인사 불성이 되게 폭음을 한다. 체내에 술기운이 남아 있는 낮 시간 동안에는 멀쩡하게 일상을 수행한다. 저녁부터 밤, 잠이 들기 직전까지 다시 술을 마신다. 다음날은 또 말짱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루 이들 혹은 한몇 년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술의 양과 횟수가 들어 나게 된다. 중독으로 진행됐다는 이야기이지만 단 한 사람도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수술 등 어떤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술을 끊은 후 3-4일 안에 금단 현상이 나타나고 한바탕의 소동이 벌어지는 것이 알코올 중독의 보편적 과정이다. 때론 심장 마비까지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경우이지만 어느 누구도 스스로 인정을 하지 않는 질환 중의 하나이다.
난, 술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에 가면 포장마차에서 눈물이 쏙 빠지게 매운 떡볶이와 파를 둥둥 띄운 뜨거운 어묵 국물을 후후 불어 마시며 먹는 소주를 좋아하고, 특별한 이유가 있어 외식을 하는 날이면 근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한쪽과 함께 마시는 적포도주를 좋아한다. 새해 벽두를 열며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청명한 크리스털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한다. 막걸리를 넣고 찐 술 빵을 좋아하고 여름밤이면 푸른 숲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좋아한다. 잠들기 위해 한 모금 넘기는 알싸한 코냑의 향기도 좋다. 그러나 실제 휘청거리듯 취해 본 기억은 한참 되었다.
금단 현상이 지난 환자는 지난 며칠 동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필름이 끊긴 기억 속으로 나와 환자의 아내는 알코올 중독은 심각한 질환이며 계속적인 치료가 없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해 머릿속에 집어넣어 주었다. 혈전의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고 내과 병동으로 옮겨가며 환자는 스스로 술을 끊겠다는 다짐을 했다. 퇴원과 동시에 프로그램에 등록을 하겠단다. 환자의 아내와 손을 잡고 진실로 기뻐했다.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는 늘 생활 속에 존재하지만 도를 지나치지 않는 절제 속에서만 그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