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엄마, 열여덟 아빠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by 전지은



산모가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임신 중에는 때때마다 검사를 하기 때문에 아기가 거꾸로 서 있다든지, 골반이 좁아 난산이 될 것 같은 경우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단에 따라 임신 중 간호를 잘하고 미리 계획을 잡아 수술을 하게 되어 산전, 산후의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산모가, 그것도 17세의 산모가 중환자실에 들어왔다. 제왕절개술로 아기를 나은 지 3주가 지난 상황이었다. 걸음을 디딜 수 없게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다. 처음에는 산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견길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응급실을 찾았다고 했다.





초음파 진단 결과 오른쪽 대퇴부 정맥에 혈전이 생긴 것이 발견되었다. 요즘은 수술 후 흔히 올 수 있는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혈전 방지제를 반드시 처방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산모의 경우, 퇴원 시 혈전 방지제를 처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유 수유를 한다는 이유로 처방받은 약을 주사하지 않았다. 환자는 의사에 처방대로 따라 하지 않은 것이다.


"왜 처방받은 대로 하지 않았어요?"


어린 산모에게 처방을 따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데 그 약 성분이 들어가 아기에게 나쁠까 봐요….”


“지금 아기는 어디 있나요? 누가 보나요?”


“우리 엄마가….”


혈전의 크기가 꽤 컸으므로 혹 작게 나누어지며 순환기를 타고 돌다가 폐색전까지 가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었다.


입원 후 12 시간이 지나자 산모는 다리의 통증보다 가슴의 통증이 더 심하다고 울었다. 건드릴 수가 없이 아프단다. 수유를 하던 가슴이 퉁퉁 부어 터질 것 같았다. 급하게 중앙 공급실에 연락을 하여 유축기를 가져왔다. 뜨거운 물로 가슴을 닦고 유축기를 대 펌프질을 하자 고여있던 젖은 물줄기를 뿜듯 쏟아졌다. 금세 펌프에 달려있던 병을 가득 채웠다. 작은 비닐 주머니들에 옮겨 담고 냉동실에 넣어 달라며 몇 번이나 부탁했다.






“이거 얼렸다가 나중에 녹여서 아기에게 먹여도 전혀 지장이 없지요? 지금 이렇게 강한 혈전 용해제를 주사로 맞고 있는데….”


“그러니까 퇴원 시 간호사가 일러 준대로 주사를 맞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야. 피하주사보다는 영향이 있겠지만 괜찮을 거야. 꼭 모유를 먹이고 싶다면서?”


반말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조금 놀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분유로 바꾸던지요.”


“아니에요. 꼭 모유를 먹이고 싶어요.”


“그러면 엄마에게 아기를 데려와 여기서 젖을 물려야 할 텐데. 지금은 아기가 집에서 할머니가 타주는 분유를 먹고 있을 것 아니에요. 나중에 아기가 엄마 젖을 안 물면 어떻게 하려고.”


“지금 제 아기는 할머니 젖을 먹고 있어요.”


“할머니 젖이라니?”


“사실, 우리 엄마는 작년에 제 동생을 나았고 아직 수유 중이거든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미안한 표정으로 환자를 바라보았는데 그녀가 먼저 말한다.


“예, 다들 웃어요. 엄마와 딸이 동시에 아기를 낳았다고요. 근데 엄마는 작년에 낳았고요, 저는 지난주에 낳았잖아요.”


“엄마가 젊으신가 봐요.”


“아니에요. 엄마도 나도 둘 다 사고예요… 호호호. 엄마는 넬 모레 쉰이거든요.”


우리 둘은 다시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병실 노크소리와 함께 산모에게 가족 방문객이 있다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모의 엄마는 바구니에 손녀인 신생아를 담고 가슴에는 배낭 같이 생긴 들것에 두 살짜리 아들을 안고 들어왔다. 나는 웃으면서 나중에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브렌다라는 백인 여학생과 둘이 간호학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다. 간호학과는 3-4학년이 되면 임상실습을 병행하여야 한다. 수강과목은 지역사회 보건 간호학이었고 실습장소는 고등학교의 보건교사를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웠던 것은 고등학교에 임신 중인 학생들과 이미 아기를 낳은 학생들을 따로 모아 한 학급을 만들었던 것이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이 길어 임신 중인 학생들은 충분한 휴식을 하게 해 주고 있었다. 이미 아기를 낳은 학생들은 아기를 학교로 데려와 수업이 끝나면 수유를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수업 중에는 아기를 돌보아 주는 탁아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보건담당 교사는 아기와 산모의 건강 체크를 해 주는 것은 물론 아기나 산모에게 이상 증상이 발견되면 즉시 의사에게 연결시켜 주는 역할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임신과 출산 후 꼭 필요한 예방접종과 아기에게는 충분한 영양을 주기 위해 정부가 보조해 주는 윅(WIC) 프로그램을 알려주었다. 한 학급이 20명 정도였는데 한 학급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많은 수의 학생들이 고등학생이면서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임신 중에도 학업을 계속한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출산 후에도 아기와 함께 학교에 온다는 사실이 또한 무척 놀라웠고 말 그대로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들이 중학생 정도의 사춘기가 되면 성교육 시간이 있다. 학교에서는 부모를 초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먼저 보여 준다. 그리고 어른들의 피드백을 듣기도 하고 어른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똑같은 프로그램을 아이들에게도 하는데 똑같아야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질문을 해 왔을 때 같은 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교육이 시작되면 동시에 남녀 학생들에게 가상 아기를 돌보게 한다. 보통은 일주일씩 맡게 되는데 아기 인형은 프로그램돼 있어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운다. 울 때마다 병으로 우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바꾸어 주어야 해 밤에도 수시로 깬다. 일주일 정도 돌보는데 24시간 육아 일지를 쓰게 한다. 그것을 통해 아기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이며, 인내가 필요하고, 책임이 따르는가 보여 주게 된다.


아이들은 이 교육을 통해 책임 있는 임신과 출산 등을 생각하게 되고 책임감을 기를 수 있다. 지금도 이런 프로그램이 중 고등학교에서 계속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그 옛날 일들이, 어린 산모 환자를 통하여 다시 기억이 났다.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던 프로그램들을 만나며 한편으로는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부추기는 것 같아 불편했던 것들이었다.






삼 일 후 산모의 상태가 많이 호전돼 일반 병동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산모의 병실에 들려 아기 잘 키우라는 인사를 해 주렸는데, 병실엔 많은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아기는 엄마의 젖을 물고 있고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의 아빠가 그 곁에서 신기한 듯 아기와 산모를 쳐다보고 있다.


아빠는 18세. 임신 중에 둘은 약혼식을 했고 그들은 이제 고3이었다. 산모의 엄마는 산모의 어린 동생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업 주부였다. 자신의 아기도 아직 어리고 내친김에 손녀까지도 키우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할아버지가 거든다.


“이 아이들 5월이면 졸업이고. 가을이면 둘 다 대학에 갈 거야. 대학 가기 전에 결혼시키려고. 여름쯤에. 초대장 보내면 올 수 있어?”


“아. 그래요.”


갑작스러운 초대에 흔쾌히 웃으며 답했다. 결혼식 초대장을 받으면 혹, 가족계획 백과사전이나 총서 한 권쯤 사 들고 갈 수 있을 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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