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사람을 부를 때

그래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by 전지은



“잘 지내? 병원 분위기도 그렇고, 통통 튀는 네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퇴직하고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동료 애니의 전화를 받았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전화를 받을 때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쯤 올라가 있다. 연락을 줘서 참 반갑다는 나 나름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애니의 목소리는 침울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이 울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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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 있어?”


“제니퍼가 휴직했어. 톰이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거든.”


톰은 우리의 동료이자 제니퍼의 오랜 연인이었다. 톰이 갑자기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자 그를 간호하기 위해 휴직하는 것이란다. 둘은 동료이자 오랜 연인이었다. 같은 집에 살지는 않지만, 양가의 일을 같이 해결하고, 대소사 참석은 물론,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도 함께 지내고, 병원의 크고 작은 파티에서도 공식적인 파트너였다.


함께 살지 않는 것뿐이지, 영락없는 부부였다. 왜 결혼을 아직 안 하느냐고 물으면, 개인생활이 있는 각자의 공간을 유지하는 게 서로를 구속하지 않아 더 편하고 여유롭다고 했다. 그랬던 제니퍼가 톰을 간호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들어간단다.


톰은 항암을 시작했는데, 그 고통이 엄청나다는 말도 전해 왔다. 동료들이 도와주고 싶어도 요즈음 같은 때는 코로나19로 인해 방문도 안 되고, 항암 치료를 시작한 톰의 면역 상태도 급격히 나빠져 손 놓고 있단다. 그저 걱정하며 우울하고 침통한 분위기라고 한다.


“그래도 뭐라도 도와야 하는 것 아니야? 돌아가며 음식을 해주거나 조금씩 돈을 모아서 생활비나 약값을 보태는 게 어때?”


함께 기도하자고, 기운을 내라고. 뭐라도 돕게 되면 알려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뭐라도 돕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들은 별일이 없는지 물었다.


“앤도 그만뒀어. 상황이 좋지 않아.”


이번엔 앤의 소식이다. 유방암이 재발하여 난소까지 퍼졌고, 수술 후 입원 중이라고 했다. 예후는 아직 정밀 조직검사를 보냈고,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단다. 또 물리치료사인 조시는 직장 내 시경 검사에서 폴립 몇 개가 발견되어 제거했고, 조직검사에서 암으로 판명되어 사표를 냈고, 치료한다며 고향인 아이오와주로 돌아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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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침울한 소식에 애니와 했던 마지막 통화를 떠올려 봤다. 지난여름이었던 것 같다. 나의 잦은 한국 방문을 알던 친구였기에, ‘이 심각한 코로나19 사태에도 넌 한국을 꼭 가야 하니’ 하며 걱정했다.


애니의 걱정을 뒤로하고 한국을 다녀왔는데도 안부 전화조 차 하지 못했던 나의 무심함이 미안했다. ‘거리는 멀리, 마음은 가깝게’라는 말처럼, 전화라도 자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어야 했는데……. 이중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긴장이 가득한 중환자실. 목전에 다가와 있는 죽음의 그림자들을 보며, 촌각을 다투는 을 하는 우리들이었지만, 친구며 동료가 환자가 되어 죽음과 맞서는 일은 정말 당황스럽고, 또 두렵다.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처음인 것 같아.”


애니는 코로나 블루로 오는 박탈감, 고립감, 우울감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침울한 분위기인데 친구들의 발병 소식은 정말 힘들단다.


미안했다. 내가 먼저 전화했어야 했는데……. 생활이 바쁘다 는 핑계를 대며 그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반성하며 긴 통화를 끝냈다. 옆에 있었던 남편은 내 표정을 읽고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나의 무심함과 더불어 친구들의 발병 소식을 전했다. 같이 걱정을 하던 끝에, 난 무심코 그런 이야길 했다. 하늘이 사람을 부를 때는, 착한 순서로 부르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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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기들이 하늘나라로 갈 땐 천사처럼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배냇짓하던 모습으로 떠나간다. 조금 더 자란 어린아이들이 떠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의 가슴에 묻히는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화롭다. 최후의 순간까지 잡은 끈을 놓지 못해 애쓰는 어른들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으로 헤어진다. 아이들은 헤어짐이나 영원한 이별, 그런 의미를 알지 못하므로.


그러나 어른들의 죽음은 간혹 옆에 있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집착에 가까운 삶에 대한 욕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려만 놓으라는 황당한 요구를 할 때도 있다. 너무 지나쳐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주위 사람들이 더 힘들어하고 아파한다. 남겨진 이들이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업보. 가슴에 매달린 추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돌아보면 중환자실의 환자들도, 동료들도, 친구들도, 착하고 선한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더 빨리 데려가시는 것 같다. 난 그리 착하지 않으니 좀 천천히 데려가실까? 쓸데없는 생각도 휙 지나간다.


보름쯤 지났을까? 애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은 잘 견디고 있는지. 그들의 빈자리에는 또 누가 와서 일하고 있는지, 앤의 조직검사 결과는 어떤지, 아이오와주로 돌아간 조시에게서는 연락이 없는지 물었다. 애니의 목소리는 더 기운이 없었다.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모두들 나쁜 소식만 있다고 전한다. 며칠 뒤 애니는 분홍 리본 핀을 하나를 나에게 보내왔다.


암 병동에서 쓰는 ‘회복을 기원하는’ 핀이다. 환자의 가족들이나 지인, 병원 직원들이 환자의 빠른 쾌유를 빌며 겉옷에 다는 작은 핀. 핀을 받자마자 난 입고 있던 스웨터의 왼쪽 가슴에 달았다. 친구들의 빠른 쾌유를 빌고 주위의 친구들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친구들. 그들과 사랑을 나눌 시간이 많이 허락되지 않았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을 착하고 착한 이들. 착한 순서대로 부르시는 그분의 뜻을 나 같은 사람이 알 수는 없겠지만, 따듯한 계절이 되어도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참 시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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