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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01. 2023

9. 린츠, 오스트리아(Linz, Austria)

기도가 되는  진한 감동이 있는 곳


아침에 눈을 떠보니 새로운 곳이다. 독일의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린츠. 오스트리아의 3번째 큰 도시이고 체코 국경에서 30 KM 떨어진 곳이다. 799년 린츠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신성 로마제국의 한 도시였다. 도나우 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요건 때문에 체코와 폴란드, 이탈리아 등을 잇는 중요한 무역의 길목 도시로 역할을 해 왔다. 도나우 강을 끼고 오스트리아 최대  왕국을 형성하고 오랫동안 지배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리히드 3세가 말년을 보냄으로써 한때 합스부르크 시절의 가장 중요한 도시로 명성을 날렸었다.

린츠는 히틀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초등학교 졸업 후 린츠의 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말년의 히틀러는 린츠가 그의 진정한 고향이라고 여겼다고 전해진다. 나치의 제3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건축을 구상했다고도 한다.

오늘도 가이드가 있는 걸어서 하는 투어. 오늘도 유럽 역사 공부를 꽤나 하겠구나 싶었다. 아직도 날씨는 오락가락 비를 뿌리고 유람선에서 내어 주는 빨간 우산 하나 들고 길을 나선다. 정착장을 건너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간다. 유럽의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린츠도 하우프트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되었다. 중심엔 삼위일체 동상이 있고  주위엔  구 시청사도 있고 상가들도 즐비하다. 이어폰을 끼고 가이드를 따라가며 설명을 듣는다.

처음 장소는 린츠 예술 대학(University of Art and Design Linz). 1947년 개설된 예술학교(Kunstschule) 던 곳이 1973 예술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전문 역량, 예술 작품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을 끼고 도시와 만나는 곳에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젊음들이 강바람을 맞으며 지난다. 잠시 안을 들여다보니 여느 대학의 강의실처럼 단정하다. 이어 도심의 작은 길에 이어지는 카페,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대부분의 가게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거나 준비 중이다.

골목 끝에서 모차르트의 흔적을 만난다. 1783년 모차르트가 짤스브루크에서 빈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들렸던 이곳. 모차르트가 린츠에 들린다는 소식을 들은  현지 백작은 그의 연주회를 개최하려 했고, 그 소식을 들은 모차르트가 나흘 만에 작곡했다는  ‘교향곡 36번 C 장조, 린츠’.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교항곡 36번 C 장조는 손을 대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작은 거리를 흐르는 모차르트의 교항곡 마지막 악장의 소나타(Finale, Prest)를 들으며 모차르트가 머물었던 하숙집 앞의 작은 골목길을 걷는다.  골목 곳곳을 돌며 이어지는 설명들. 메모를 해 두었다고는 하나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이다. 사진도 찍어 놓지 않은 곳들은 그냥, 그런 곳이 있었지 쯤으로 치부되고 만다.


골목을 돌아 나오자 다시 광장이다. 그 한쪽에선 와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가성비 최고의 와인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지역의  와인이 전시되고 시음 된단다. 12시에 연다고 하니, 그 시간에 맞추어서 다시 와 봐야겠다.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한 컷.

이어, 도시의 잘 정돈된 거리를 지나고 광장의 가까운 곳에서  린츠의 오래된 구 성당, 이그나티우스(Ignatiuskirche)를 만난다. 두 개의 첨탑이 도시 중심에서 잘 보인다. 예수교 성당으로 1669년부터 1683년 사이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후 1785년부터 1990년까지 린츠 교구의 대성당으로 사용되었다는 성당.  이후 린츠 교구의 새로운 대성당이 지어지자 지금은 일반 성당으로 쓰이고 있다.  제대의 성화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인상 깊었다. 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거대한 설교대. 고해소. 성가대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 등. 대성당으로 충분히 쓸만할 것 같았는데, 다시 신 대성당을 지었다고 하니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같은 평범한 신자는 이유를 잘 몰라도 될 일이라. 광장의 끝으로 멀리 보이는 린츠 교구의 대성당 가는 길을 알려 주는 것으로 가이드와 함께하는 일정은 끝났다.  

대성당의 첨탑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 길을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린츠 무염시대 대성당(Linz Matiendom Cathedral)을 만난다. 네오고딕 양식의 건물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 1855년 건축 계획이 시작되었고 1924년 요하네스 주교가 완성하여 무염시대 성당으로 봉헌하였단다. 2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교회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크지만 가장 높은 교회는 아니란다. 교회의 특징은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빛을 받아 실내를 비추는 색색의 글라스는 색의 조화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후의 만찬, 성모승천 등의 성화, 교회 건축에 기여한 후원자들의 초상화, 기하적인 현대 조형미의 스테인드글라스들이 말 그대로 최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빛이 들어오며 이루어 내는 색감은 신비롭다. 성당 정면에는 황금색으로 장식한 십자고상, 그 옆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을 붙인 고해소가 여러 개 이어져 있다. 죄 많은 신자들은 어떤 죄를 고할까? 반쯤 내려가는 성당의 지하에는 건축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반대편과 측면의 파이프 올갠은 1986년에 제작되어 가장 현대화된 올갠 모습을 갖고 있다. 티켓을 사면 첨탑으로 오를 수 있고 그곳에는 커다란 종이 있고, 린츠 도시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이 걸었고 오후에도 또 걸어야 하기에 포기한다. 현재도 주일에는 미사를 보고, 예정된 날짜에는 행사를 한다는데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단다. 모든 행사는 독일어로 진행된다고 하니, 요건 패스해야겠지?


서둘러 배로 돌아와 편안한 점심을 먹고, 오후엔 이름도 어려운 푀스트링베르크(Postlingberg) 언덕을 가보기로 하였다. 린츠 전체가 보이는 전망을 갖고 있고, 순례교회라는 곳도 있단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 문의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그곳에서 기차표를 살 수 있단다. 푀스트링베르크 언덕이 종점인 50번 열차는 30분마다 한 번씩 다니고, 왕복에 7.60유로였다. 표를 구매하며 언제 떠나느냐고 물었더니 2분 후란다. ‘뛰어!’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도착을 하니 기차는 막 문을 닫고 있었다. 표를 흔들며 보여줬지만 기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몰차게 출발이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조금만 기다려 주지…’하며 볼멘소리를 한다. 잠시 숨을 고르며 파머스 마켓을 기웃거렸다. 신선한 과일들이 제법 있었다. 내려오면서 사야지 마음을 먹었다.

30분 후, 기차를 타고 언덕을 오른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철도 중의 하나라는 것은 다녀온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1720년 경 언덕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를 찾는 순례자들을 위해 철도를 놓고 기차를 운행했는데, 그때는 옆이 오픈된 여름 열차였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에도 순례자들과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게 되자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단다. 동네의 골목 같은 길을 오르고, 내려오는 열차를 위해 서 있기도 하며 덜컹거리며 천천히 올라간다. 40분쯤 오르막의 끝에는 작은 숲이 있고 계단을 좀 더 올라가자 성당이 있다. 성당 앞마당이 말 그대로 전망대이다. 린츠 전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넓기만 했던 다뉴브 강도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난 재밌는 풍경. 많은 자물쇠들이 철창에 매달려 있고 그 바로 뒤에 성모 마리아 상이 서 있다. 이곳에 자물쇠를 채우면 사랑이 깨지지 않는 걸까?  제법 녹이 쓴 것도 있는 걸 보니, 오래된 관습인가 보다. 성당 내부는 깨끗하고 아담하며 흰색의 레이스를 둘러놓은 것처럼 예쁘다. 배에 돌아와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언덕까지 갔다 왔다고 자랑을 했더니, 신부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 하는 성당이라고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멋진 파이프 올갠과 금장의 제대가 황홀할 지경이었고, 고해소조차 멋있었던 게 생각났다. 돌아서 나오는 길엔 숲으로 난 길을 택했다. 성당 주변엔 무엇이 있을까 싶어서. 그곳은 기차 박물관이었는데 주로 아이들이 방문하여 기차의 역사를 보고 배우는 곳이란다.


시내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다시 광장에 도착했다. 아까 보아두었던 맘에 드는 모자를 사러 간다던 젬마와 앤은 골목으로 가고, 이미 파머스 마켓은 파장이어서 과일들을 살 수는 없었다. 나와 남편은 동전을 조금 바꿀까 싶어서 은행을 찾았지만 이미 창구는 문을 닫은 후였다. ATM에서 뭔가 하고 있는 내 또래의 부인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동전이 있으면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자기 지갑을 탈탈 털어 바꾸어 주었다. 또 하나의 친절한 유럽인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기다리는 동안 거리의 카페에 앉아 맥주 한잔 시켜서 마시며 좀 더 동전을 바꾸었다. 그렇게 애써 동전을 바꾼 이유는 저녁 식사 후, 카드놀이를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었다. 배에서 카드는 빌릴 수 있었지만 내기를 할 수 있는 칩은 없었기에.


마음에 드는 모자를 산 젬마와 두 부부가 돌아오고, 맥주잔을 비운 우린 왔던 길을 잘 찾아 쉽게 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린츠는 광장을 지나면 바로 강이고 강을 따라 나있는 길은 어디서도 정착해 있는 배를 찾을 수 있다. 배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에 강 건너 언덕엔 붉은 저녁노을이 지고, 우린 좋은 음식과 무제한 와인에 취한다.  


하루에 세 곳의 성당을 방문했다. 미사와 기도가 아닌 방문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완전한 여행객이 되어 성당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만 감상했기 때문이다. 여행객이었도, 단순한 방문객이었어도, 색의 조화와 조형물의 무게감과 십자고상과 성인들의 벽화가 내어주는 신성함이 가는 곳마다 가득했다. 마침 일행 모두가 가톨릭 신자들이었기에 느끼는 감동이 더 진했을 수도 있다. 이 기도 같은 마음의 진한 감동이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또 다음 도시를 향해 떠나는 달빛 고고한 밤의 강을 따라 나도, 우리도, 하나가 되어 흘러간다.

이전 08화 8. 세 개의 강이 만나는 곳, 파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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