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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03. 2023

10. 괴트바이크 수도원 (Gottweig Abbey)

오스트리아, 크렘스에서 만난 곳

밤새 배를 타고 크렘스(Krems)에 도착. 다뉴브에 인접한 소도시로 오래된 와이너리가 많고 살구 재배지로도 유명하다. 봄에 강 언덕에 핀 살구꽃이 장관이고 여행객들을 위해 살구를 따는 체험농장도 곳곳에 있다. 벌들의 향연도 함께 해, 방문객들이 주의해야 한다. 세계적인 살구 브랜디 메릴렌쉬납(Marillenschnaps) 생산 공장이 있기도 하다.


오늘 투어는 12시부터 시작한다. 느긋하게 크루즈 선상에 올라가 모처럼 햇살을 즐긴다. 요새처럼 생긴 뒤른스타인(Durnstein) 성과 끝없이 이어지 와이너리들.  마을의 지붕들과 어울리며 한 폭의 그림 같다. 비가 그치고 햇살을 받은 언덕은 더욱 푸르고 마을의 지붕은 주황색이 더욱 선명하다. 유럽은 왜 주황색 지붕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유럽 전역에서는 찰 진흙이 많아서, 그 진흙으로 구워서 만든 지붕 타일들이, 자연재해에도 잘 견디며 견고하고 값도 비교적 저렴하여 많이 쓰인다고 한다. 진흙의 매장량이 상당하여 앞으로 몇 백 년도 더 쓸 수 있다고 덧붙인다. 선조의 유산뿐만 아니라 자연의 혜택도 많은 유럽. 그걸 잘 지키고 가꾸는 후손들이 다시 한번 부러웠다.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오른다.  말 그대로 힐탑에 위치한 대형 수도원이다. 수도원은 파사우 주교인 알트만(Altmann)에 의해  1083년에 설립된 베네틱도 수도원으로 그 크기가 어마 어마 하다. 오랜 무덤과 살구 과수원, 와이너리를 아우르는 작은 동네만 한 넓이이다. 1083년 9월 9일 봉헌된 재단 헌장은 여전히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수도원은 가톨릭 수도사들의 학문과 규범 준수의 중심지가 되어 수도원 학교와 수녀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서는 수도원장이 없을 정도로  쇠락하기도 하였다. 1580년에는 화재로 거의 손실된 후 다시 재건하였다. 수도원에는 150,000여 권의 책과 원고, 중요한 종교 조각품 컬렉션, 미술품등을 소장하고 있다. 기적인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제2차 세계 대전 속에서도 거의 손실이 없었다는 가이들의 설명. 이런 역사 공부를 현지에서 할 수 있다니…

이 수도원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15분 정도 비디오를 보여 준다. 수도원의 역사와 주위의 환경을 보여 준 후 특산물인 살구 주스 한잔씩을 건네준다. 그 달콤함을 음미하며 본격 투어에 나선다. 수도원 성당 안은 높은 제대와 설교단으로 각 기둥에는 성인들 그림과 그림을 싸고 있는 황금색과 흰 장미들 모형이 그 웅장함을 더한다.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이다. 제단 아래쪽으로 나 있는 반지하에도 의자를 놓아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알트만 주교의 시신이 모셔져 있는 대리석 무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대형 파이프 올갠도 있었는데, 마침 누군가 올갠 연주를 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연주였는지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는 연습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연주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가득한 성당은 그야말로 성령의 은혜가 가득한 듯했다.

현재 수도원에는 신부님과 수사를 합쳐 38명이 계신단다.  이 넓은 곳을 38명이 관리한다고?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수사들은 수도에만 전념하고 건물을 유지하고 기념품을 팔고 관광객을 안내하는 데는 직원 100여 명이 근무하며 매일의 일과를 소화한다. 수도원 건너편 피정의 집 부속건물에는 황실계단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천장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1739년 폴트로거 프레스코가 그렸다고 하는데 샤를 6세를 신격화한 그림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으로 불린다. 그림의 크기에 압도당하고 곳곳의 장식의 조화에 감탄하며 계단을 오른다. 이곳에서는 개인이 머물 수도 있는데 현재는 32개의 방을 운영하고 있고 숙소의 예약은 인터넷을 통해서 가능하다. 숙식을 하면 수사님들의 기도 시간에 동참할 수도 있단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았고 살구 과수원과 와이너리를 동시에 갖고 있어 살구 주스와 쨈, 직접 만든 와인을 시음할 수 있고 구매할 수도 있다. 피정의 집을 돌아 나오는 선물센터 안쪽에 와인 시음장이 있다. 화이트 스파클링, 연붉은 피노노아 한잔씩을 시음용으로 준다. 같은 와인을 병으로 살 수 있다. 맛은 상큼하고 감칠맛이 있었지만 유람선에서 주는 무한 리필 와인이 있는데 꼭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도 화재로 소실되었던 지붕을 보수하는 일이 현재 진행형인 수도원.  언덕 아래로 동네가 보이고 산책로를 따라 걷고 싶을 만큼 풍성한 숲이 이어져 있는 곳. 그때 우리들 옆으로 아주 앳된 청년 하나가 지나갔다. 가이드가 알려준다. 얼마 전 새로 입교한 수사님이라고.  그 넓은 곳에서 홀로 핀 들꽃 하나를 발견했다. 홀로 외롭게 피었다 진다 해도 그 자리에 뿌리내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 지나쳤던  젊은 수사님도 홀로 핀 들꽃이더라도 그렇게 제자리에서 피었으면 좋겠다는 화살기도를 보낸다.


이른 오후 유람선은 출발했다. 항해 시간이 좀 긴 걸 보니 다음 기항지까지는 거리가 좀 있나 보다.

유람선에서는 매일 저녁, 다음 날의 일정과 도착할 도시에 대한 날씨와 역사등이 빼곡히 적혀 있는 뉴스 레터를 방마다 놓아둔다. 그 뉴스레터에는 오늘 오후엔 모두들 배의 데크 위로 올라와 바깥 풍경을 감상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바흐우 밸리 포도원(Wachau Valley Winery)을 반듯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20 마일 이상 이어지는 높고 낮은 언덕의 포도밭. 유네스코가 지정한 보물이기도 한 곳. 우리가 막 떠나온 크렘스(Krems)와 멜크(Melk) 사이로 다뉴브강 언덕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생산하는 와인은 주로 화이트. 리즈링(Riesling), 그루너(Gruner) 등 상큼하고 약간 단맛과 과일맛, 허브 향을 겸비한 우수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포도원은 대를 이어 와인을 생산 공급하는 장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의 포도원. 그 사이의 작은 마을들. 주홍색 지붕을 이고, 작은 교회의 뾰족한 첨탑을 보이며 평화롭게 서 있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은 그야말로 내가 상상했던 유럽의 모습이다. 유람선을 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이런 풍경이 바로 River Cruise의 백미 아닐까 싶다.

선상 위의 데크를 몇 바퀴나 돌며 좌우와 앞뒤의 모습을 담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강바람을 너무 맞았던 탓인지 저녁이 되자 목이 따끔거리며 아팠다. 상비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무한 리필 와인을 주는 식사도 몸이 아픈 데는 소용이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남편은 식사를 챙겨 방으로 배달을 왔다. 웨이터가 챙겨주더라며. 배에 오른 첫날 필리핀 웨이터에게 슬그머니 건네준 20불 팁. 그 효력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일까? 같은 동양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한국드라마와 탤런트 이름을 줄줄 꿰차고 있는 웨이터 부부의 서비스는 꽤 괜찮았다. 내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컨디션이 빨리 좋아져야 할 텐데, 걱정을 하며 챙겨 온 저녁 몇 수저 뜨고, 비타민도 챙겨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꿈속에서는 포도원의 초록이, 와인의 향기가, 젊은 수사님의 영성이, 살구꽃 향기가 되어 봄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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