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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05. 2023

11. 예술의 도시 비엔나

음악과 예술과 역사가 공존하는 곳


달빛 따라, 강 물결 따라 밤새 항해한 유람선은 유럽 최고 예술의 도시에 도착했다. 영어식으로 비엔나(Vienna), 독일어로는 빈(Wien)이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알프스 동쪽 끝자락이며 다뉴브의 남쪽 둔치 지역이다. 지금까지 봤던 여느 도시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일까, 좀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한 느낌이다. 오늘 시작은 가이드가 있는 ‘파노라믹 비엔나’ 도시의 곳곳을 걸어서 관광하는 4시간 정도의 일정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흔적은 기원전 500년 즈음으로 켈트족이 다뉴브강 유역에 정착하였다. 12세기 무렵엔 아일랜드 베네딕도 수도원이 만들어지고 그 주변인 이곳에 주거지가 생겼다. 그러다가 유럽의 최대 왕국인 합스브루크가 는 1440년부터 이 지역에 살기 시작했단다. 이로 인해 빈은 신성 로마제국의 실질적인 수도이자 예술, 과학, 음악, 요리의 중심지로 등극한다. 16-17세기는 기독교 진영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오랜 전쟁으로 많은 인구가 소멸되기도 했다. 1894년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던 때에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1867년경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전음악의 거장이 다수 등장해 빈악파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이후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같은 많은 작곡가를 길러냈다.


1913년 빈은 아돌프 히틀러, 레온 트로츠키, 조시프 브로즈 티토, 지그문드 프로이트, 이오시프 스탈린 등이 도시 중심부 몇 킬로미터 반경 안에 동시에 거주하던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들은 같은 카페에서 종종 목격되기도 했는데 그 무렵 빈은 사회주의 중심지로 여겨지며 ‘붉은 빈’이란 별명도 얻었다.


1938년, 대중의 인기를 누리던 히틀러는 헬덴 광장의 발코니에서 연설을 했다. 이때부터 빈에 살던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고 외딴곳으로 쫓겨가거나 처형을 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빈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위원회가 4조각으로 나누어 감시를 했다. 그 후 1955년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이 체결되면서 갈라졌던 빈은 하나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걸어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하선장에서 가까운 슈테판  광장. 젊은 청년들이 난해한 복장과 줄담배를 피며 곳곳에 모여 있다. 그 바로 옆에 빈 대교구의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이 자리 잡고 있다.  로마네스크 및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은 루돌프 4세가 주도하여지었다고 한다. 빈의 가장 중심지인 곳에, 옛 성당 2개가 있던 유적지에 새로 세워진 대 성당. 성당의 지붕이 다양한 색깔의 타일로 만들어져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광장의 중심부에는 금도금의 장식이 달려 있는 바로크 양식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페스트 기념탑. 유럽 일대를 휩쓸었던 페스트가 끝나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건립했다고 하는데, 삼위일체와 감사의 마음을 담은 동상은 웅장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앞에서 인증샷.

좀 걸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미술사 박물관과 그 옆의 자연사 박물관. 각각의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도 모자랄 만큼 많은 작품들을 가지고 있단다. 빈의 예술과 문화는 연극, 오페라, 고전음악과 순수 미술분야를 아우르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약이 없는 약속, 언젠가 다시 또 와보리라는 마음을 먹으며 길을 걷는다.

시내의 거리를 지나며 만나는 건물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요즈음 증축과 개축을 하는 건물들도 역사의 흐름을 잃지 않고, 옛날의 양식을 그대로 살려, 가장 어울리게 하는 것 같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옛것을 너무 잘 보존하며 현대화하는 도시. 그 안에서 난개발의 한국과 역사가 너무 짧은 미국의 모습들이 비교되며 지나간다.

이어 주청사 앞 광장까지 걸어오며 가이드는 끊임없이 모차르트의 음악적 생애와 베토벤의 이야기가 이어갔고, 이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빈은 정말 많은 음악가와 학자와 예술가들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건널목에서 옛날 스포츠카의 행열을 만났다. 무슨 행사를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도착한 곳은 빈의 또 하나의 명물, 국립 오페라 극장. 제2차 세계 대전 후 오랜 복원작업을 거쳐 1955년 재 개장되었다. 옛 모습 그대로 복구된 극장은 2,200여 개의 객석에 최고의 음향장비가 갖추어진 곳이다. 공연이 없는 시간엔 이렇게 무리를 지어 입장해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을 통한 수입이 만만치 않고, 저녁이면 오페라 공연의 수입도 크다. 독일어로 공연하는 최고의 공연장. 입장료가 만만치 않지만 주민들을 위해서는 매년 초에 일정 기간, 주민들 전용 좌석에 한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있단다.  물론 전매가 금지돼있다는 한마디도 덧붙인다. 예술의 메카, 빈의 주민으로 사는 특혜를 톡톡히 받을 수 있구나 싶었다. 오페라는 일 년 전부터 예매가 끝나 있다.

큰길을 건너고 골목을 지나며  가이드의 설명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유럽의 역사를 제대로 배웠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광장으로 돌아오며 커피 문화에 대한 설명이다.

비엔나커피문화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중 하나다. 비엔나커피는 그 역사가 300년도 넘는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오스만시대의 터키 사람들이 커피를 가져와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차를 타고 전쟁터에 나가거나 이동을 해야 했는데, 커피만 들고 가면 출렁거려 쏟아지게 되니까 그 위에 끈적하고 달콤한 휘핑크림을 얹어 흔들림을 방지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 커피를 마셨기에 비엔나커피는 지금도 위에서부터 조금씩 마시며 크림을 저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전한다. 300년 후 강릉의 커피도 무형문화재가 돼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가이드는 커피를 즐기고 도시의 쇼핑 거리를 즐기라며 4시간 일정을 마무리했다.


너른 광장엔 인파가 가득하고, 커피카페도 즐비하다. 가이드가 가르쳐 준 한 곳. 실내 장식이 고풍스럽다는 커피집을 찾아들어갔다. 비엔나커피의 부드러움을 음미하며 곁들여 나온 초콜릿 케이크의 달콤함을 즐긴다.


오후엔 예정대로 우리끼리 쉰브룬 궁전(Schonbrunn Palace)을 찾아가기로 한다. 미리 찾아봤던 대로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고, 내려서도 좀 걷는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점심은 일단 케이크로 요기가 되었으니, 쉰브룬 궁전 근처에 가서 먹기로 한다. 광장의 한쪽에서 지하도를 내려가 기차표를 사려고 키오스크 앞에 섰다. 영어로 된 설명을 읽으며 티켓을 샀고, U4 기차를 탔고, 한참 후 쉰브룬 궁전 역에서 하차했다. 어느 쪽 출구로 나가야 할지 망설이던 중, 사람들이 모두 가는 곳을 따라 우리도 걸었다. 10여분 걷자,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빈에 가면 꼭 봐야 할 명소답게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 티켓을 구매했는데 입장 시간이 2시간 후란다. 앗차! 입장권을 미리 예매하지 않은 실책이었다. 2시간 동안 점심을 먹기로 하고 어디 적당히 앉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궁을 나와 시내 쪽으로 걸었다. 그러다 만난 포장마차 비슷한 곳을 찾았다. 아메리칸 핫도그에 햄버거, 소시지 등을 주문하고 빠질 수 없는 맥주도 한잔 시키고 야외 벤치같이 생긴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의 음식을 즐겨보자며. 넝쿨 아래에서 잘 익은 청포도는 후식으로 따먹었고, 시선을 돌린 곳에선 무궁화도 만났다.

궁전으로 돌아와 투어를 시작한다. 1441개의 방중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45개.  그중 30개의 방을 관람할 수 있는 그랜드투어 입장권을 구매했다. 한국어로 된 설명이 있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방문객이 가장 많은 유적지. 쉰브룬 궁전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품격과 취향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50만 평에 이르는 대지와 궁궐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8세기 중엽 마리아테레지아 왕비가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며 그녀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가 지내던 곳이다. 쉰브룬 궁전은 1569년 착공해 1696년 재건, 1700년에 완공되었다. 궁전의 외관은 바로크양식으로 그리 화려하지 않으나 내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방 하나하나의 특성이 제대로 살려져 있다. 그 예의 하나로 모차르트가 6세 때 콘서트를 했다는 전면이 거울로 장식된 거울의 방이 있는 가 하면, 흰색으로 장식된 딸들의 그림이 붙어 있는 화이트 룸. 중국식으로 장식된 차이나 룸. 죽은 남편을 애도했던 검은색의 애도의 방. 나폴레옹이 침실로 쓰던 방 등등. 화려한 샹들리에와 고풍스러운 장식들로 조화를 이룬 방들. 어느 한 곳도 주제와 특성을 살리지 않은 방이 없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내부의 사진은 하나도 못 찍었다. 나중에 보니 기념품 가게에서 내부가 고스란히 담긴 CD를 팔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어, 구매는 하지 않았다.

쉰브룬 이라는 이름은 ’ 아름다운 우물’이라는 뜻이란다. 공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분수가 그 뜻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나오는 길에서 만났던 미로의 정원 등에서도 각각 입장료를 내야 했다. 인터넷으로 보는 것으로 하고 패스. 돌아오는 기차를 탔고, 광장에서 내려 무사히 배로 귀환했다. 강물 위로 노을은 지고  우리끼리 쉰브룬 궁궐에도 갔다 왔고, 우리끼리 비엔나커피도 마셨고, 우리끼리 거리의 음식도 맛보았다.  유럽의 어디를 갔다 놔도 이젠 자신이 있다는 후배님의 한마디에 모두 빵 떠진다.


예술의 도시에서 그들의 사랑과 애환, 부귀와 영화, 그 어느 것도 사람 사는 일이었음을 배운다. 빈 소년 합창단의 화음을 유튜브를 찾아 듣는다. 음악과 예술이 가득한 도시의 밤이 고운 선율이 되어 강 위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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