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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07. 2023

12. 브라티슬라바를 아시나요?

슬로바키아의 수도


다음 기항지는 슬로바키아(Slovenska Republika)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체코 근처에 있던 사회주의 국가 정도로 기억되는 나라. 수도는 내게는 좀 생소한 이름의 도시이다. 새로운 곳을 알아 가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하지만 낯선 이름이 도시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 준다. 오늘은 버스 투어로 짜여 있다. 지나는 곳마다 설명을 할 터이니, 또 길고 지루한? 유럽 역사가 이어질 모양이다.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을 접하고 있어, 여러 나라의 수도 중 유일하게 2개의 주권국가와 국경을 접하는 수도 이기도하다. 도심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삼국의 국경이 접하는 지점에 삼각형 테이블이 있고 각 나라의 국기가 새겨져 있어, 아이들에게는 산 교육의 현장으로 쓰인다.

버스를 타고 언덕을 오른다. 가이드는 브라티슬라바의 베버리힐즈라고 알려준다. 고도가 제법 있는 언덕길은 구불구불 이어지고 길 가에는 백악관 축소형의 집과 번듯한 현대식 건물들이 다뉴브 강을 내려다보고 서있다. 뷰를 잡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버스는 움직이고 창을 통해 빛이 반사되며 사진은 빛이 반사되고 흔들린다.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는 수밖에. 한 번쯤 버스를 세우고 인증 샷을 찍으면 좋겠지만 그곳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정차가 불가하다.  그렇게 차 안에서 설명을 들으며 한 시간쯤.


그러다 버스가 멈춘 곳은 흐비에즈도 슬라브광장(Hviezdoslavovo namastie) 근처. 광장 안에는  슬로바키아 국립 극장이 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아담한 구 극장과 현대식으로 지은 새로운 극장의 두 건물이 이어져 있다.  앞의 분수대는 고대 신화의 인물들과 다뉴브강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의 조각이 있다.


이어 만난 곳은 성마틴 대성당(St. Martin Cathedral). 햐얀벽과 빨간 지붕의 교회. 지금까지 봐 왔던 다른 대성당들과는 달리, 안정된 동네 교회 같은 느낌이다. 헝가리왕 11명과 오스트리아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나와 그의 남편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대관식 성당으로 유명하다.

다음 도착한 곳은 구시가지.  조금 걷자 구청사와 중앙 광장이 이어진다. 그럴듯하게 생긴 남자가 벤치 뒤에 서있는 동상. 남자는 남의 말을 엿듣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 거리는 한산했지만 유럽의 거리가 그렇듯 걸으며 만나는 건물 하나, 고르게 놓인 돌길 하나도 잘 어우러지며 참 좋은 느낌을 준다.  광장의 골목 끝에서 만나는 역사의 거리 미하엘의 게이트. 그  안쪽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다리 옆에는 미하엘 천사 동상과 체코 황실의 사제였던 안네프무스키 사제의 동상이 있다.

작은 돌다리를 건너 조금 걷다 보면 관광객들이 많은 한 곳을 발견하게 된다. 하수구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생긴 동상, 커밀(Cumil). 하수구에서 반쯤 나와 턱을 궤고 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동상. 머리가 반질반질 닳아 있다. 소원을 비는 곳이라나. 나도 마음속 소원하나 빌며 한컷. 하수구 안의 사람은 전쟁의 종식을 뜻하는 것으로 전쟁 중 사람들이 하구수에 숨었다가 나오며 햇살을 쬐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유럽의 오랜 역사 안에서 만났던 수많은 전쟁. 그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코너를 돌아서니 초콜릿 가게에서 선전용으로 만들어 놓은 동상 하나가 서 있다. 재밌는 모습에 나도 같이 한 장.

그다음은 브라티슬라바 성.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곳. 원형은 15세기에 지어졌고, 나폴레옹 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2차 대전 이후 복원되었다. 성탑은 4개로 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성의 일부는 대통령 궁으로 쓰인다는데 현재는 여성대통령이란다. 올 가을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25개 정당이 각각의 후보를 내고 경합을 벌인다고 하니, 이건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쩌면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독립한 민주주의 신생국의 혼란일까 싶기도 하다.   성 앞에서는 UFO처럼 생긴 다리가 멀리 보인다. 그 중간의 타워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다는 말도 전해준다. 국경이 인접한 도시이다 보니 옛날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다른 나라들과 대치하기도 했단다. 긴 성벽과 포문들이 보이고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선을 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기도 했다는 슬픈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흩어진다.

맥주가 콜라보다 싸다는 곳, 물이 나빠 14세가 되면 물대신 맥주를 마신 다는 곳, 어딜 가도 초록이 완연하고 어딜 가도 바로 옆에 강을 끼고 있는데 물이 나쁘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유람선으로 일찍 돌아온다. 오늘 출항은 11시 30분. 지도를 보니 다음 기항지까지가 이번 코스 중  제일 긴 항로이다.  오후에는 선장이 주관하는 샴페인 파티가 있고, 부다페스트에 대한 설명도 있고,  또다시 바이킹호를 이용해 달라며 여기서 사인을 하면 저렴한 가격일 수 있다는  선전시간도 갖는단다. 우린 모두 데크에 올라가 바깥경치를 눈에 담기로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와이너리와 교회의 첨탑이 보이는 작은 마을, 반짝이는 강 물결이 아른거리며 참 평화로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댐이 나온다. 강물의 수위를 내려야 다리 밑을 빠져나갈 수 있다. 댐과 수위를 거의 비슷하게 하고 있던 배는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선두에 서서 우리들은  물 빠지는 광경을 직관한다. 물이 다 빠지자 거대한 댐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배는 움직인다. 이런 댐이 다뉴브 강에는 10개나 있다. 자연과 현대 기술이 어울어져 만들어 내는 신비스런  광경.  흘러가는 유람선 위에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삶에 대한 감사와 오늘의 소중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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