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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2. 2023

14. 다뉴브의 진주, 부다페스트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황금빛으로 빛나는 도시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새로운 도시에서도 동은 텄고 오늘은 아침 8시부터 투어가 시작된다. 몇 시간을 설명과 함께 걸어야 하는 일정. 선착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다뉴브 강변을 따라 도심을 벗어난다. 부다 페스트(Budapest)가 부다와 페스트의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라는 것은 어제 조카며느리와 이야기하며 처음 알았다. 1873년 다뉴브강 서편의 부다(Buda)와 동편의 페슈트(Pest)가 합쳐진 단어. 역사적 전통이 남아 있는 부다의 사적들과 언덕에 자리한 왕국 성곽지역. 푸르게 우거진 녹음 등 그 풍광이 뛰어나다. 반면 페슈트는 많이 낙후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근대에 개발이 있었고 현재는 국회의사당이 강가에 자리 잡고 있는 등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부다 페스트에서 ‘페스트’라고 발음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언질도 들었다. 페스트는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전염병이라서, 동음어인 페스트를 쓰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꼭 ‘페슈트’라고 발음해야 한단다.

세체니 다리(Szechenyi Lanchid)를 지난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그 이름은 부다와 페스트를 합병한 세체니 백작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한동안 공사 중이어서 통행이 안되었던 다리는 며칠 전부터 다시 개통되었단다. 새롭게 도색과 정비를 마친 다리를 볼 수 있어 행운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버스는 구 시가지를 지나 호쇠크 광장(Hosok tere) 앞의 미술관을 지난다. 거리엔 벌써 조금씩 가을이 오고 있고 유럽의 작은 승용차들의 행렬이 정겹다. 버스가 도착 한 곳은 부다 성 지구(Budavari Kapu). 부다 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차시 성당(Matyas templom),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 부다 왕궁(Buda Var )으로 이어지고 박물관, 미술관과 도서관을 갖추고 있는 언덕 위의 한 동네였다. 부다 왕궁은 헝가리 국왕들이 살았던 성이다. 부다 성은 화재와 전쟁 등으로 소실되고 재건되기를 반복. 1956년 헝가리 혁명 때는 거의 다 파괴되었다가 1980년대에 옛 모습 그대로 재건했다고 한다.                                                        

이어서 마차시 성당. 성당 입구에서 처음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잡상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핸드 메이드. 예뻐. 예뻐’ 정확한 한국말로, 손 뜨게 스웨터와 식탁보 등을 팔고 있었다.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성당은 색깔이 고운 타일 지붕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안쪽은 유럽의 여느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성화, 스테인드글라스와 금장식의 제대가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바닥도 타일 꽃무늬가 있다. 금실과 각종 색실로 수를 놓은 휘장도 벽의 한쪽에 장식되어 있었는데 헝가리 인들은 손재주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 옆에는 근사한 성가대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것도 목공예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성당을 나와 옆에 있는 어부의 요새로 발걸음을 옮긴다. 네오고딕 네오 로마네스크 테라스를 자랑하는 곳이다. 뾰족한 고깔 모양 7개의 탑이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 성을 연상케 한다.  이 7개의 탑은 수천 년 전 나라를 세운 7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 어부의 요새 테라스에 기대서면 건너편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도시 전체와 다뉴브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9세기 헝가리 전쟁 당시 어부들로 이루어진 시민군이 요새를 방어해, 어부의 요새라 명명되었다. 언덕 아래쪽에는 주민들이 사는 집들도 있고 왕궁 근처에는 기념품 가게와 카페 등도 많았다.


작은 동네 같은 성곽지역을 돌고 난 후 간 곳은 엥겔스 광장. 광장은 강변과 이어지고 그 풍경이 가장 좋은 곳에는 리츠 칼튼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과 이어지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Szent Istvan-bazilika.) 1848년 기공식을 가졌으나 연이어 발발한 헝가리 독립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51년 재게 되었고 1905년에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전형적인 네오 르네상스 건축물이고 전체 구조가 그리스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중심에 중앙 돔이 있다. 헝가리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 성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대성당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보이는 겔레르트 언덕은 요새가 있었던 곳이다. 합스부르크 지배 시절, 헝가리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요새는 그 후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전범 수용소로 사용했던 곳으로 악명이 높다. 1944년 소련의 승리로 요새 꼭대기에는 모스크바 쪽을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 멀리서 보면 병따개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오후 2시가 되어 조카며느리를 만났다. 신라면과 햇반, 김치 통조림, 감기약과 소련제 항생제와 헝가리산 와인 2병이 든 커다란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배 바로 앞이에요. 짐 들여놓고 다시 나가면 될 것 같아요.’라는 메시지가 왔다. 서둘러 나가니, 반가운 얼굴이 활짝 웃고 있다. 오랜만이라며 따뜻한 손을 잡고 흔들고 어깨를 다독여 주고.  짐은 우리 방에다 들여놓고 모두들 같이 나왔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작은 동굴 성당. 마침 그 유명하다는 온천, 겔레르트 온천 건너편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성당들에 비해 턱없이 작았지만 동굴 속에서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동굴의 제일 안쪽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목각 장식품들이 눈에 띄었다. 상주하고 계시는 수녀님께 눈인사를 하고 돌아 나온다.

길을 건너 겔레르트 온천으로 들어섰다. 헝가리는 유로를 쓰지 않고 포린트(Forint)라는 헝가리 화폐를 쓴다. 화폐의 단위가 너무 커, 0을 잘 세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갔지만 입장료를 받는 곳부터 문제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포린트로 입장료를 내려고 해 보았지만 계산이 잘 되지 않자, 조카며느리가 자신의 카드로 계산을 했다. 입장료를 내고 안에 들어가 탈의실과 물품 보관함 사용료를 내고 들어갔다.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으나 각 탕으로 들어가는 길이 마치 미로 같아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제일 뜨겁다는 탕에 들어가도 한국 목욕탕에 비하면 미지근한 정도. 그래도 피부 미용에 좋다니 몸을 깊이 담근다. 조카며느리는 우리가 온천을 하는 동안 딸 하교 시간에 맞추어 집에 갔다가 왔다. 2시간 후 다시 만났고, 우리는 서로 ‘더 젊어진 거?’ 하며 웃는다.

조카며느리가 다시 왔고, 이젠 현지 가이드가 있으니 별 어려움 없이 길을 갈 수 있겠지. 갑자기 천군만마를 만난 느낌. 트램을 타고 한국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며칠 만에 먹어 보는 한식인가? 잔뜩 기대를 하고 트램에 오른다. 도착 한 곳은 <서울의 집>. 1990년에 개관을 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맛과 같기를 바라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예약한 아늑한 작은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돌솥 비빔밥과 제육볶음. 알탕 찌개에 소고기 덮밥까지, 골고루 시키며 메뉴에 적혀 있는 김치와 밥의 가격에 조금 놀랐다. 이런 반찬들도 따로 계산을 하는구나 싶어서.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고 반찬들은 메인 디쉬에 따라 나왔다. 꽤 맛이 괜찮은 한식을 헝가리 도심에서 즐겼다. 현지 가이드를 앞세우고 걷는다.


세체니 다리를 걸어서 건너고 인증샷을 찍고, 조금 더 걸어가자 ‘강가의 신발들’이 나왔다. 아픈 역사의 증거. 많은 헝가리 유대인들이 다뉴브 강변에서 신발을 벗게 하고 사살을 했다고 한다. 2005년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각품. 누가 꼽아 놓았는지 하얀 꽃도 보이고 이스라엘 국기도 보였다.

얼마를 또 걸었을까, 검은 돌의 추모비가 머르기트 다리 근처에 서 있다. 2019년 5월 29일 오후 9시경 한국인들이 탔던 작은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의 침몰. 선미를 대형 크루즈인 바이킹호와 충돌하며 전복된 사고.  7초 만에 침몰하였고, 승객 33명, 사진 기사 1명, 헝가리 승무원 2명이 희생되었다. 악천후의 기후였다고 하기도 하고, 선박과 선박 거리를 알려주는 안전장치의 고장을 알고도 운항한 인재라고도 했던 사고. 그 추모비 옆에는 씻김굿을 하는 한국무속인들의 사진도 보이고, 추모비에는 사망자 이름도 하나씩 새겨져 있다. 그 주위에 있었던 빈 화분들과 꽃병.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아픔들인지 씁쓸하기만 했다.


다시 걸어서 국회의사당으로 향한다. 어둠이 내리고 황금색 불빛을 입은 건물들은 다시 밤을 빛낸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조카며느리와 헤어질 시간. 일행들은 조카며느리의 세심함에 고마워했고 후배님은 ‘한 달 동안은 시, 짜 들어간 음식은 안 드시겠네요. 시금치 조차도요.’라고 했고 ‘그럴 리가요’ 하며, 조카며느리는 웃으며 떠났다.  우린 그녀가 알려준 대로 트램을 타고 배로 돌아왔다.

짐을 열고 각 방에 신라면 2개와 나무젓가락, 상비약들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햇반은 2개. 나눌 수가 없어 그냥 우리 방에 두었다. 필요할 때 좋은 간식거리가 될 것 같았다.

다뉴브 강의 진주라고 할 만큼, 역사도 문화도 야경도 우아하게 빛나는 도시. 그런 도시도 어딘가는 아픔이 있다.  어떤 이는 아픔을 잊으려 애쓰고 또 어떤 이는 아픔을 문화로 만들며 산다.  조개 속에 생긴 상처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 모진 풍상을 겪고 견디며 만들어진 진주 같은 도시에서 또 하루가 간다.

내일은 하선을 하는 날이다. 짐을 챙기고 이른 아침 조식 시간을 체크해 보고, 하선해서 이동할 버스 정류장을 확인한다. 크로시아 행 버스를 타는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를 미리 예약하고, 짐정리를 하고 태그를 붙인다. 하루가 너무 짧다는 생각이 휙 지나간다.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뉴브의 진주를 보고 간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밤이다. 도시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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