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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0. 2023

13. 황홀한 야경, 부다페스트

밤항구의 황홀한 환영을 받으며


다뉴브 강에서 만나는 풍경은 그야말로 비경들의 연속이었다. 꼭 덱에 올라가지 않아도 방에서도 창을 열면 시선에 가득 담기는 풍경. 발코니에 나가 유속을 즐기기도 하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삶의 여유와 평화, 감사가 절로 나오는 일주일 이상을 지냈고 마지막 기항지인 부다페스트에 근접했다.


선상에 어둠이 깔리고 멀리 보이는 풍경도 어두운 실루엣 속에서 점처럼 사라지는 풍경이 이어졌다. 그때 선내 방송이 들렸다. ‘앞으로 20분 후면 부다페스트에 도착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이 궁금하신 분들은 지금 덱으로 올라오십시오. 눈앞에 펼쳐질 장관을 놓치면 안 됩니다’라는.

서둘러 두꺼운 재킷을 찾아 입고 덱으로 올라갔다. 계단 끝에 올라서자 멀리 황금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이 어울리며 빛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 아래를 지나자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황금색 빌딩 국회의사당, 은백색의 빛이 강을 가로질러 빛난다. 빛나는 은백색 교각 사이로 비치는 푸른색은 멀리 보이는 엘리자베스 다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어 부다 왕궁이 나타난다. 거리는 검은색으로 왕궁을 잘 떠 받들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성 이트반 대성당도 보인다. 빛을 받은 백색의 탑 위로 이어지는 청색의 첨탑이 도드라져 보인다. 사진 속에서만 보았던 야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 넋을 놓고 바라보며 ‘와우~~~~~~ 와~~~~’ 하며 이어지는 소리만 들리고, 많은 사람들의 감탄사 합창 안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들. 열심히 사진기를 누른다. 황금빛과 은백색이 강물에 흔들린다. 온통 도시의 빛과 그림자가 출렁거리는 강. 푸른색과 붉은색, 초록 색의 무늬도 덤으로 완벽한 빛의 조화를 이룬다. 한컷에 다 담기 어렵다. 누르고 또 누르고 각도를 바꾸고. 열심히 시선을 돌리며 셔터를 누른다.


하구까지 내려갔던 배는 서서히 뱃머리를 돌려 기항지로 향한다. 바로 그때 만났던 현대식 건물의 빛. 오픈된 축구장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부다와 페스트 사이를 이어주는 세체니다리.  그 옆엔 무슨 호텔이라는데 이름을 놓쳤다. 도시 전체가 불을 밝히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  뱃전에 기대서서 빛과 검은 강 위로 내리는 흔들리는 빛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일은 내 평생 처음 느껴보는 황홀함이었다. 이런 광경들 때문에 유럽의 3대 야경으로 꼽히고 있구나 싶었다.

아침 동이 트면 이 풍경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생각하며 덱을 내려간다. 유람선에서 제공해 준 담요를 벗어 통에 담으며 세심한 서비스에 ‘대접받고 있다’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방으로 들어와 친정 조카며느리에게 카톡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잘 도착하셨어요? 부다 쪽을 보신 거예요? 아님 페스트 쪽?’ ‘그건 모르겠는데, 선 상에서 보는 야경이 장난이 아니네. 이런 야경은 생전 처음이야.’라고 말을 시작했고 조금 긴 통화를 끝냈다. 조카네 가족은 한국 대기업의 지사장으로 부다페스트에 산지 일 년 남짓. 모스크바에 있던 지사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헝가리로 옮긴 후부터. 하필, 조카는 우리가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출장이었다. 본사에서 온 분들과 함께하는 출장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시댁 친척이 왔으니 좀 어려웠겠지만, 필요한 것을 물어왔다. ‘신라면 6개 그리고 종합 감기약’이라고 답했다. 조카며느리는 내일 일정을 물었고, 오전 투어가 끝나고 배에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하고 난 오후 2시쯤 만나기로 하였다.  배의 선착장 주소를 보내고는 황홀한 도시의 불빛들 아래서 황금날개 옷을 입은 상상을 하며 잠이 든다. 도시는 밤새 온몸으로 그 휘황한 불빛을 발하며 수많은 방문객을 환영하며 반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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