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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3. 2023

15. 크로아티아를 찾아서

수도 자그레브(Zagreb)


배 안에서 마지막 이른 조식. 하선하는 시간까지 친절하게 음식을 서빙해주고, 매시간 침구를 정리해 주고, 매일 세심하게 준비해 준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같은 그룹의 승객이 모두 내리고 나면 남은 종업원들은 침구를 벗기고 전체 소독에 가까운 대청소를 마친다. 주방에서는 식기를 소독하고 다음 승객들을 위한 준비를 한다. 종업원들이 자신들의 생필품을 사기 위해 외출도 하고, 현지 식재료들을 배에 싣는 작업도 한다. 그리고 삼 일 후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유람선. 그렇게 강물을 따라 오르고 내리는 일상의 반복. 우리들에게는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그들에겐 일상인 곳. 6곳의 기항지를 뒤로하고 하선했다.

다시 우리들끼리의 여행이 이어진다.


하선 후 첫 번째 도시는 자그레브. 크로아티아(Croatia)의 수도이다. 거의 10년 전쯤 한국의 한 방송국에서 ‘꽃보다 누나’라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크로아티아,라는 나라를 처음 알았다. 해변 가 동화 같은 마을. 주황색 지붕의 집들이 계단식으로 이어지고, 담은 하얀색으로 칠해, 푸른 바다와 흰 골목과 주황의 지붕이 동화 같았던, 참 가보고 싶다고 느꼈던 풍경.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자그레브와 인근 국립공원 등을 들릴 예정이다.

선착장에서 택시로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했다. 도착하여 표지판이 있는 승차장에 줄을 섰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줄은 길어지는데 버스는 오지 않고 살짝 불안했다. 뒤에 있던 젊은 친구에게 자그레브 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제야 안심을 하고 남자들은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우린 대합실로 들어갔다. 벤치같이 생긴 의자가 달랑 2개. 화장실 앞에는 건장하게 생긴 남자가 동전을 받고 있었다. 1유로를 내고 화장실을 사용하고, 버스에 올랐다. 2층버스.  3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편안하게 한잠 자면 될 것 같았다. 졸음의 끝에서 만나는 풍경들. 수확을 앞둔 해바라기 농장이 가끔 나타나는 것 말고는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초원. 그러다 갑자기 푸른 바다 같은 것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뭐지? 웬 바다? 옆 자리의 남편이 구글 지도를 찾아보더니 헝가리에서 제일 큰 담수호, 발라톤 호수(Balaton lake)란다. 차창 밖으로 흔들리는 바다 같은 호수를 보며 고속도로가 참 한가하다는 생각이 든다.

크로아티아는 발칸 반도의 한 국가로 동남 유럽에 속하며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했다. 2013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신생중립국이다. 평화로운 풍경들을 뒤로하고 버스는 자그레브 도착.

우린 다시 택시를 타고 예약된 호텔로 가야 했다. 인원도 6명, 각자 하나씩 끄는 케리어가 있으니 짐도 만만치 않았다. 일반 택시를 타면 2대가 필요해서 대형 밴 같은 택시를 타야 한다. 택시 라인에 마침 커다란 밴이 서 있다. 주소를 보여주고 가격을 흥정한다. 50유로. 20분 정도의 거리이니 그 정도는 줘야 할 것 같았는데, 남편이 나섰다. ‘40유로면 어때? 현금 줄게.’ 좋다는 답을 받았고, 너무 쉬운 흥정에 우리가 바가지를 쓴 건 아닌가 싶었다.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고, 짐을 풀고 조금 쉰 다음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프런트에 물어보니 바로 한 블록을 가면 크로아티아의 전통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고 알려준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잠시 쉬었던 휴게실에서도 요기를 못했으니 적당히 출출했다.

식당 이름은 푸거(Purger). 식당 안쪽의 실외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를 봐도 현지 음식을 알턱이 없는 우리. 영어를 몰라 쩔쩔매는 늙수그레한 웨이터. 손짓 발짓으로 옆 데이블의 저거, 저쪽 테이블의 저것, 하며 겨우 주문을 했다. 볶음밥 같이 생긴 것도 시키고 빵도 주문하고. 클로아시아의 대표 맥주라고 하는 오쥬스코(Ozujsko)도 주문한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주 맛있게 현지 음식을 먹었다. 먹물리소토. 체바피라고 불리는 소시지 모음.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스튜같이 생긴 브루테드 등. 맥주도 좋지만 현지 와인도 마셔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와이트 와인 한병도 주문했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끼리의 도심 투어. 걸어서 15분 정도 가면 반 엘라치치 광장(Ban Jelacic Square)이 나온다.  광장은 1641년 만들어졌고,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영웅 반 엘라치치 장군의 동상은 1848년 헝가리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에 세워졌다고 한다. 광장은 시민들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여행객들에게는 이정표가 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뚱보 아저씨 동상은 스테판라디치(Stjepan Radic Statue). 1928년 의회에서 저격을 받아 사망한 크로티아의 유명 정치인이란다. 광장에는 트램도 지나고, 분수도 있고, 거리를 따라 쇼핑센터도 있다.

광장을 가로질러 낮은 언덕 위에 이어져 있던 계단을 오르자 돌라체 전통시장(Dolac Market)이 나왔다. 오후 2시까지만 여는 전통시장. 과일, 야채, 꽃과 기념품 등을 판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파장.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반가운 한글. 시장 바로 옆, 가정집 같이 생긴 2층집 창문에 <돌><라><체>라고 크게 한글로 쓰여 있었다. 궁금증 폭발. 네이버를 두드려 보니 한국 민박집이다. 민박집을 운영하며 관광 가이드도 하는 모양이었다. 리뷰가 상당히 좋다. 이런 걸 진작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한다.

돌아서 언덕을 내려가다 새로운 풍경 하나를 발견했다. 고풍스러운 넥타이를 파는 작은 가게. ‘KRAVATA’. 한눈에 오래된 장인의 가계인 것 같았다. 17세기 유럽의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 왕실에 용병으로 고용되었던 크로아티아 기병대는 목에 붉은 천을 매고 있었다. 붉은 천을 매 주는 것은 크로아티아의 오랜 풍습으로 용병들이 무사귀환을 염원하면서 가족들이 매어 주었다. 이를 눈여겨본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 14세가 그 풍습을 넥타이로 발전시켰다. 넥타이를 지칭하는 프랑스어 크리바트(Cravat)는 크로아티아(Croats)에서 기인된 단어란다. 인증샷 하나 남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넥타이를 선물하고 영원한 사랑을 기약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지나간다.


골목을 돌아가니 그곳엔 맥주와 칵테일을 파는 카페들이 양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기웃거리다가,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 한잔 더 하자고 의기투합. 길의 이름은 카톨(Kaptol).

카톨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작은 광장은 자그레브 대성당(Zagreb Cathedral)의 앞마당이다. 첨탑은 철근 프레임에 쌓여 보이지 않았고 공사 중이었다.

그다음 갈 곳은 성 마르카 교회(Saint Marka Church). 성당의 입구에는 스톤 게이트(Stone gate)가 있었고 그 안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는 곳이다.  성당 쪽을 향해 길을 가다 만난 ‘깨진 관계에 대한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라는 곳. 방 한 칸만 한 곳에 엽서와 속옷, 하이힐, 도끼 등 사랑이 깨지면서 생긴 각각의 사연들을 적어 놓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드려다 보는 것으로 족했다.

성 마르카 성당은 규모는 작지만 지붕은 빨강. 파랑. 흰색의 체크무늬를 조화롭게 타일로 모자이크를 해 놓았다. 지붕에는 크로아티아와 자그레브 시 문장도 모자이크로 장식해 색달랐다. 현재는 실내 까지도 대대적으로 재건축하고 있어 여행객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색다른 지붕과 예쁜 동네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어서 좀 더 언덕을 걷자 자그레브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곳, 자그레브 전망대(Pogled na Zagre)가 나왔다. 언덕을 오르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차, 푸니쿨라를 탈 수도 있었지만 우린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전망대라고 하기엔 너무도 협소하다. 한 5층짜리 건물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게 해 놓은 곳. 13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 시대에는 최고 높은 건물, 도시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곳이긴 하였겠지만... 돌아오는 길. 거리는 어둠이 깔렸고 들리려 했던 카톨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내일을 기약하며 걸음을 서두른다.


한나라의 수도, 작고 아담한 도시. 여행객이라면 광장을 중심으로 모든 볼거리가 15-20분 정도만 걸으면 다을 수 있는 곳. 유럽의 한 국가 안에서 생소한 또 한 도시를 만나며 밤은 또 저문다. 이렇게 조금씩 알아가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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