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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4. 2023

16.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내 생애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곳

나에게 크로아티아는 ‘꽃보다 누나’의 영향이 가장 크다. 윤여정의 ‘예쁘다’ 한마디가, 김희애의 성당 안에서 기도하며 흘리던 눈물이, 이미연이 십자 성호를 따라 긋던 일이, 이미 고인이 된 김자옥이 아픔을 숨기고 걷던 길이, 생생 하기만 하다. 이후 꿈꾸어 왔던 곳을 가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고 감사였다.


예약된 일정은 아침 9시부터 시작. 준비한 샌드위치와 물 2병과 선블락과 우비까지 챙기고 우리들을 픽업하러 올 가이드와 밴을 기다린다. 호텔 로비에서 혼자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커피를 한잔 마신다. 약속 시간에 도착한 가이드는 30대 정도의 청년. 우리 6명 말고도 이미 2명의 중년 여성이 앞자리에 타고 있었다. 오늘은 8명의 일행과 가이드, 9명이 움직인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밴은 출발했다. 자그레브를 벗어나며 보이는 건물들을 설명해 준다. 저긴 교통국이고 여긴 관광청이고… 오늘 갈 곳은 물의 도시, 라스토게(Rastoke)와 요정의 호수라고 불리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cka Jezera national park)이다. 2시간 반쯤 걸린다. 가이드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인구는 4백만 정도, 연 중 관광객도 4백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물의 도시답게 푸르렀다. 숲 속의 길 끝에서 만난 작은 도시, 라스토게.  ‘플리트비체의 작은 호수’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코라나 강(Korana River)을 통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과 연결돼 있다.


마을은 300여 년 전 물레방아가 만들어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물레방아를 이용해 옥수수와 밀을 분쇄했다. 물레방아를 이용해 모직물을 두드리고 마무리도 하였다. 남아 있는 물레방아는 몇 개 안 되지만 이 작은 마을은 물을 이용한 관광 산업, 수영, 카누, 래프팅, 낚시, 동굴 탐험 등으로 그 명성을 이어간다. 물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작고 아담한 물의 도시였다.

한 30분쯤 더 차로 가자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이다. 입구는 다른 공원들처럼 기념품 가게와 매표소가 있다. 가이드가 차를 세우는 동안 우린 입구의 안내판 앞에서 인증샷 하나. 하이킹 코스가 여러 개다. 5-6시간 간다고 하니, H코스 아닐까 하며 그 둘레길을 표지판에서 살펴본다.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한 10여분 언덕을 올랐을까. 눈앞에 나타나는 전경에 숨이 탁, 멎는다. 호수와 호수가 계단 식으로 이어지고 계단은 온통 초록색의 작은 나무들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물빛은 처음 보았다. 말 그대로 ‘청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맑은 에메랄드 빛. 그 안은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며 고기떼와 쓰러진 고목들의 등걸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넋을 놓고 들여다보다가,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경이롭다. 가이드에 따르면, 영국의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에 하나로 꼽혔단다. 이런 풍경은 사진이나 유튜브로 봐서는 안될 것 같다. 내 발걸음이 닫는 길과 숲과 함께하는 호흡과 물빛이 다른 호수들을 보고 느끼면서 걸어야만 될 것 같다. 매표소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문도 있었다. 얼마나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지 반증이 된다. 코너를 돌 때마다, 사진의 명소에 도착할 때마다 한국말이 들린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은 여러 개의 폭포로 연결되는 16개의 호수를 가지고 있다. 약 19.5헥타르(여의도의 100배)의 면적이며, 18 Km길이의 나무로 만든 인도교는 개울과 호수 위를  낮게 지나며 상쾌한 산책로를 만든다. 공원의 크기가 광대해 구석구석을 자세히 보려면 3일 이상이 소요되지만 우린 5시간 정도의 걷는 길을 택했다. 봄 철에는 수량이 가장 풍부해 폭포의 웅장함을,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져 숲의 푸르름 속에 갇힌 신비로운 호수의 모습을, 가을에는 사람이 적어 고요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이란다. 겨울에는 기온이 많이 떨어져 구간 곳곳이 결빙이 되는 곳이 있어 공원의 북쪽은 동절기에는 폐쇄한다고 한다.

공원은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고, 한국에서는 ‘꽃보다 누나’ 뿐만 아니라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도 소개되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에 등재된 곳. 나는 감히 내가 보았던 곳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물색은 눈물이 날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걸으며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1년에 3mm 퇴적되는 자연댐 위로 물이 모이고 댐의 약한 부분을 통해 물이 내려가며 아래쪽 호수를 만든다. 호수의 위쪽은 흰색에 가까운 물색을 하고 있어 백록담(White water Lake)이라 불리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검은색을 띠어 흑록담(Black water lake)이라고 불린다. 위쪽의 흰색 호수들은 석회석 모래가 가라앉아 색깔을 만들고 아래쪽은 검은 호수들은 물 밑의 엘지들이 모여 검은색을 만든단다. 자연 댐은 나무뿌리들이 엉키고 호수 아래에 가라앉은 석회암들이 응집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퇴적물들이 굳어지고 단단해지며 만들어졌단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런 퇴적 과정을 통해 댐이 만들어졌고 호수가 생기고 했던 걸까. 자연의 신비에 숙연해졌다.


너무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호수. 자연스럽게 쓰러진 나무를 이용해 길을 만들고 쓰레기통도 만들고 이정표를 만드는 친환경적인 호수. 공원 안에서 타는 버스도 전기차였고 호수의 한지점에서 다음지점으로 가는 배도 전기를 사용하는 친환경적 호수.  년 인원 천 오백여명이 하루에 10 Km씩 걸으며 호수 주변을 청소하며 관리한다. 사람의 심리가 다 똑같아,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된 곳에서는 뭐 하나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구름이 호수에 담겨 있는 듯한 곳도 지난다. 5시간 정도의 걷는 길. 오르막이 있어도 경사가 완만해 힘들지 않았고 호수를 돌아 나오는 길은 거의 내리막이어서 걷기 편했다. 만보기를 보니 19000보쯤 걸었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서일까?


돌아오는 길, 가이드는 열심히 ‘티토(Tito)’에 대한 설명을 한다. 티토는 그 옛날 역사 시간에 들어 보았던 유럽의 공산 주의자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단다. 티토는 1892년 크로아티아에서 출생했다. 티토의 본명은 ‘요시프 브로즈’며, 그가 노동 운동을 할 당시 사용한 가명이란다. 티토는 비동맹주의 외교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들지 않았고, 서방들과 관계를 잘해 경제가 많이 성장했었다는 점이다.

현재 이라크, 우크라이나, 중동에서 오는 난민들을 많이 받아 경제적으로 점점 낙후해 간다는 크로아티아,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앞세워 경제 발전을 도모했던 티토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현 상황에 측은지심이 생겼다. 너무도 열심히 설명해 주던 젊은 가이드에게 성의를 표한다. 얼마 안 되는 팁으로.


크로아티아의 사회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온 관광객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는 곳. 그것을 잘 가꾸고 보존해 세계인들의 시선이 모이고, 많은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경제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들 내외와 절친에게 사진 몇 장 보내며, 눈물이 나게 고운 물색을 가진 곳.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풍경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곳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숙소에 돌아와 쉬며, 내 마음은 맑은 청록색의 호수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꼭 다시 한번 이곳에 돌아와 더 오랜 시간 쉬며 공원의 곳곳을 담아 두고 싶다. 물안개가 자욱하고, 물보라가 이슬비처럼 내리는 폭포 아래서, 청록색 호수물이 찰랑거리는 나무산책로 위에서, 시원하고 푸른 숲 길에서, 물아래에서 서서히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고기떼가 선명히 보이는 공원의 구비 구비에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호흡은 점점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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