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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5. 2023

18. 베네치아 가는 길

덤으로 만난 풍경들


아침 7시 30분 출발 버스. 호텔에서 예약해준 밴을 타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격은 40유로. 3일 전 자그레브에 도착했을 때 남편이 호기롭게 10유로를 깎아, 40유로를 주었었는데, 40유로가 정상적인 가격이었나 보다. 그래도 바가지를 안 쓴 것에 만족.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베네치아행이라고 쓰인 플랫폼에 짐을 놓고 기다렸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나와 후배님이 자리를 지켰고 다른 이들은 화장실을 가거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다며 흩어졌다. 한 5분이나 지났을까, 건장한 아저씨가 ‘이태리? 베네치아??’하며 큰소리로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손으로 다른 플렛폼을 가리키며 따라오라는 손짓이다. 그 많은 짐을 2명이서 옮길 수는 없어 주위를 둘러봐도 4명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쪽 짐은 내가 지킬 테니, 2개씩 옮기고 오세요’라고 하자, 후배님이 짐들을 옮긴다. 급한 마음에 카톡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짐들과 실랑이를 하며 거의 다 다른 플랫폼으로 옮겼을 때야 4명은 어슬렁어슬렁 돌아온다. 내 목소리의 톤이 또 올라간다. ‘빨리빨리. 저쪽으로…’ 그제야 상황 판단이 된 다른 후배들이 빠른 걸음으로 짐을 끌고 간다.


바뀐 플랫폼에서 짐들을 싣는다. 가장 안쪽에 모아서 싣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 올랐다. 이층 버스. 그 아저씨가 이태리어로 또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니 이층으로 올라가라는 말인 것 같다. 지정된 좌석에 앉고 나자, 이제 출발만 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플릭스 버스(FlixBus)는 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직행버스인 것 같다. 플랫폼을 보니 목적지가 여러 곳이었다. 자그레브에서 베네치아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거나 버스와 페리를 연결해 가는 방법도 있다지만 우린 직행버스을 택했다. 7시간 버스를 타야 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편하게 앉아서 졸 수도 있고, 슬로베니아를 관통하는 버스 안에서 슬로베니아의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플릭스 버스는 어제 갔었던 류블랴나에서 승객을 더 태우고 푸른 초원과 포도밭과 해바라기 밭을 옆에 둔 한가한 하이웨이를 편하게 달려갔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에 도착하자, 버스는 정차했고 무장경찰 관 2명이 올라와 승객 하나하나의 여권을 검사했다. 처음으로 국경을 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오는 난민들이 많아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있다고 했던, 며칠 전 가이드 말이 생각났다. 난민들의 자손으로 국가를 세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이긴 하지만, 현 상황을 묵과할 수는 없다고 했었다. 주민들의 경제 상황도 안 좋은데 난민들은 몰려오고, 세금은 오르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휴매니티 이긴 하겠지만, 자신이 살 수 있어야 남을 돌볼 겨를도 생길 것 아니냐고 했던 가이드의 말. 공감하며...

버스는 주유소에 한번 정차해 화장실을 사용하게 했지만 여기서도 역시 카드나 동전을 넣어야 했다.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는 것과 상관이 없는 화장실. 다시 한번 한국처럼 화장실 문화가 좋은 곳이 없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얼마를 더 갔을까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버스는 서서히 언덕을 내려간다.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 아래로 아름다운 도시가 보이고, 바다는 아드리아해 최북단. 이태리의 트리에스테(Trieste)라는 휴양도시이다. 이곳에서는 버스가 터미널에 정차해 승객들을 내리고 태우고 했다. 꽤 많은 승객들이 하차하는 걸로 봐서 여기도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인 것 같았다. 우린 이곳에 내릴 수는 없었지만 아드리아해를 눈으로 즐기며 도시를 지났다. 울긋불긋 수영복이 푸른 바다와 어울리고, 길게 이어지는 해송들의 푸르름. 편안하고 아름다운 해안의 휴양도시. 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나며 만난 아드리아해 풍경은 플릭스 버스가 주는 보너스 같은 거였다. 가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작은 행복을 만나며 신나 했던 시간. 지금이 꼭 그런 시간이다. 창밖의 풍경들이 주는 선물, 마음 안에 잘 잡아둔다.

6시간 45분 후, 드디어 베니스에 입성. 버스 터미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항 앞에서 하차를 시켜주었다. 맨 안 쪽에 둔 짐을 찾으려고 손짓을 하며 ‘저거, 저거’ 했는데 아저씨는 또 우리에게 소리를 지른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표정과 톤을 봤었을 때, 우리가 뭔가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거나 엄청 혼나면서 짐을 내렸고. 그다음 호텔을 찾아가야 하는 일이 남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택시 스탠드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두들 ‘모르쇠’였다. 남편은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자세히 설명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 남자는 자신도 택시기사인데, 이미 예약된 손님이 있어 우리들을 태울 수는 없지만 저쪽으로 가면 택시들이 많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공항의 맨 끝에는 수상 택시 승하차장도 있어, 수상 택시를 타면 더 쉽게 호텔에 갈 수 있단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조언도 함께 해주었다.

남편은 친절하게 가르쳐준 그에게 주머니에 있던 유로 동전을 몇 개 집어주었다. 그가 가르쳐 준 곳으로 가자 택시 스탠드는 나왔고, 예약된 호텔 주소를 주고 택시에 올랐다. 한 20여분 갔을까. 작은 광장에서 내려준다. 그 안쪽은 차량집입이 금지되어 있단다. 도심으로 갈수록 차는 없고, 이동하려면 걷거나 수상버스, 수상 택시, 곤돌라를 타야 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짐을 끌고 구글 맵이 알려주는 데로 걸음을 옮긴다. 다리를 건너는데 계단만 있다. 휠체어가 갈 수가 없는 구조였다. 낑낑거리면 짐을 들고 오르고 내리며, 여긴 장애우들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볼멘소리를 해본다. 20분쯤 걸었을까. 호텔을 찾아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놓고 다시 만나, 내일 일정을 시작할 장소를 미리 찾아보기로 하였다.


만남 장소의 주소를 들고 구글 맵을 켜고 걷고 또 걷고, 비슷한 번지수는 있어도 똑같은 번지수가 없어서 당황했고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봐도 모두들 ‘모르쇠’였다. 그야말로 사람 반 물반이 도시에서 관광객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을 수 있나 싶었다.


‘이태리에 왔으니 피자를 먹어야지’라며 한 피자 집에 들어갔다. 즉석에서 구워주는 피자. 종류도 색깔도 다양하다. 하나씩 시키고 라자냐 도 시키고, 이태리 국민 음료라는 색깔도 예쁜 아페롤( Aprol)을 한잔 시켰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선물로 받았던 와인을 한잔씩 하며 저녁을 마쳤다. 1시간 이상 걸어서 갔으니 그만큼의 시간을 걸어서 돌아와야 하는 길. 골목은 좁고, 작은 돌을 깔아 약간 울퉁불퉁한 길. 길의 양쪽은 모두 식당이거나 기념품을 파는 집. 가끔 가면을 파는 집도 보이고 이태리 패션의 부티크 들도 보인다. 길가에 조금 넓은 공간이 있으면 난전이 서 있다. 식사 후 여자들은 숙소로 들어왔고 남자들은 맥주 한잔씩을 더 한다며 사라졌다.

내일은 8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일정이다. 또 얼마나 많은 이태리 역사를 들을까, 생각이 든다. 아까 마셨던 아페롤색 같은 주홍 색 불빛이 창으로 스며든다. 덤으로 만난 풍경들을 뒤로하고 물 위에 떠서 밤을 밝히는 도시에서의 첫날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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