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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5. 2023

19.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종일 물 위에 떠있다


호텔에서 정해 준 조식 시간은 7시 반. 숙박하는 이들보다 턱없이 작은 식당 규모 때문인 듯했다. 써빙을 해주는 아주머니의 불친절에 어쩔 줄 몰라하며 식사를 하고 서둘러 나왔다. 만남의 장소, 캄포 산타 마리아(Campo Santa Maria)까지 가는 수상 버스를 탔다. 전날 밤, 남자들끼리 맥주를 마시러 간다더니 수상버스 타는 방법도 알아봤단다. 칭찬을 한번 날려주고 난생처음 수상버스를 탔다. 강 위에는 수상버스, 수상 택시, 개인 보트, 곤돌라 등 많은 것들이 있다. 하선해 만남의 장소로 걷는다. 교회와 식당들과 난전이 있는 작은 광장에서 만나는 거였다. 그걸 모르고 전날엔 그렇게 헤맸던 것을.


오늘 가이드는 중년 여자. 오후까지 일정이 있는 걸로 봐서 오늘도 꽤나 걸어야 할 것 같다.  팀마다 가슴에 붙인 스티커의 색깔이 다르다. 우린 18명이 한 팀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지 한참을 기다렸다.

베네치아(Venezia), 영어로 베니스(Venice). 유럽을 찾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꼭 와보고 싶어 하는 곳. 베네치아 석호 안의 118개 섬들이 약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곳. 중세 때부터 유명했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 물의 도시, 아드리아해의 여왕, 아드리아해의 보석, 가면의 도시 등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다.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화발전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고 특히 예술, 건축 부분에 지명도가 높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는 지구 온난화로 수면이 올라가고 홍수가 자주 발생하며 도시가 물에 서서히 잠기고, 많은 관광객들로 환경오염 등에 시달리고 있다. 베네치아는 거대한 습지대를 메우거나 그 위에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습지대나 강에 나무로 만든 원목 받침대를 촘촘히 박은 후 그 위에 건축을 했단다. 그 나무들이 몇 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캄포 산타마리아의 난전을 지나 강 옆의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레디얼(Radials)이라고 쓰여 있던 한 건물이 보인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비싼 것들만 파는 최고급 백화점. 건물의 가운데에 운하 같은 것이 있고 그 안으로 물이 드나들며 조류의 균형을 맞춘다. 백화점은 예약제로만 운영되고, 건물 맨 위에는 루프탑이 있는데 이곳도 예약을 해야만 15분 정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방문객이 얼마나 많으면 그런 제한이 있을까 싶다.

그 옆이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 이태리 베네치아에서 카날그란데(Grand Canal)를 연결하는 다리 4개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1181년 부교 형태로 세워졌다가, 무너지기도 하고 화재를 입는 등 수난을 겪었다. 현재의 다리는 1588년에 재건축을 시작하여 1591년 완공되었고,  2019년에도 증축을 하여 베네치아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 다리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지만 다리에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도시 풍경이 압권이다. 도시 전체가 물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다리 위에서 한컷 찍으면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근사한 한 장이 만들어진다.


베네치아를 S자 모양으로 관통하는 카날 그란데. 로마 광장에서 시작해서 산 마르코 광장에서 끝난다.  수상버스나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따라 지날 수 있는데, 아름다운 궁전들과 박물관 등의 전면을 볼 수 있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 다리를 묘사했고,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이 다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문호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마르코폴로가 살았던 집.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동방견문록은 작가 루스티치아노가 그의 구술을 듣고 쓴 여행기이다. 마르코 폴로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갔었고 17년간 중국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와 제노바 전쟁시절 전쟁포로로 1년간 감옥 생활을 하였는데, 그때 작가 루스티치아노를 감옥에서 만났다. 작가 루스티치아가 마르코폴로의 해박한 구술과 재미있는 여행담을 적은 것이 동방견문록이다.


이어 베네치아의 골목들을 누빈다. 손이 닿을 만큼 좁은 골목, 차가 못 들어오는 것은 당연했다. 골목에는 오래된 상점들과 카페, 건물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다. 골목마다 기웃거려 보고, 가이드는 쉴 새 없이 설명을 한다. 누가 살았었고 왜 유명한지 등등. 그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금은 아무 기억이 없다. 그냥 고풍스러운 골목이었다는 것 외에는. 골목들의 끝은 작은 광장이다. 광장엔 우물도 보이고 배수 시설도 보인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이다 보니 물의 빠짐이 얼마나 중요했을까. 동시에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도 필요해 필터 시스템을 갖춘 공동 우물이 광장마다 있었단다. 지금은 주위에 담배꽁초가 가득한, 지저분하기만 한 관광객에게 보이기 위한 한 것으로만 존재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또 들으며 도착한 곳은 식당들이 있는, 산 마르코광장. 점심시간. 자리에 앉아서 음식과 음료수를 주문해야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곳. 노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샌드위치와 맥주를 주문했는데, 음식 위에 뚜껑이 덮여 있다. 뭐지? 하는 눈으로 웨이터를 쳐다보자, 광장 중앙을 가리킨다. 음식을 주문한 우리보다 먼저 찾아 올 비둘기 떼 때문이란다.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기 무섭게 채가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아~하~, 그럴 수도, 라며 웃는다.

점심 식사 후 다시 만나는 장소는 산 마르코 광장의 한 코너이다. 오전 모임시간에 늦었던 4명이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들처럼 번지수를 들고 한 시간 이상 헤맸던 모양이다. 곤돌라를 타는 것이 오후의 첫 번째 일정이다. 긴 줄이다. 그 끝에 우리도 섰다. 정원은 5명. 우린 6명이 일행이니 하는 수 없이 나누어 타야 했다. 곤돌라는 천천히 골목골목을 누빈다. 곤돌라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강 골목도 있고, 커다란 강의 가운데를 다니기도 한다.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작은 배와 곤돌라. 우리가 자동차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베네치아 사람들은 배 한 척이 없으면 그 건물 안에 갇혀 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수상 우버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휙 지나간다. 집과 집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 작은 골목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다리. 그 사이사이를 곤돌가가 지나간다. 베네치아의 건축들은 건물밖의 정원을 만들기 쉽지 않단다. 그도 그럴 것이 건물 바로 밖은 물이고 땅이 없으니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 같았다. 물 위에 떠서 365일을 사는 일. 물결의 흔들림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들었다. 물결의 일정한 흔들림을 보면 마음이 우울해진다는데, 라며. 관광객인 우리야 며칠 있으면 떠날 곳이고, 흔들 들리는 물결과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현지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문득 궁금하다.


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관람 장소인 두칼레 궁전( doge’s Palace)과 성 마르코대성당(Basilica di an Marco)이다. 대성당에 먼저 들렸다. 비잔틴 건축의 대표 양식인 성당은 원래 두칼레 궁전 소속의 성당이었으나 1807년 베네치아 대주교가 이곳을 주교좌로 옮기면서 대성당으로 승격되었다.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돔으로 꾸며져 있고, 성당을 덮고 있는 황금 모자이크를 만드는 데는 몇 세기나 걸렸다고 한다. 11세기에는 ‘황금 교회’라고 불릴 만큼 베네치아의 부와 명예의 상징이기도 했다. 베네치아의 유리 산업을 잘 반영하며 만들어진 교회라는 느낌이 드는 유리 장식이 많은 대성당이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 내부공사를 하고 있어 일부만 공개되어 대신  대 성당의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좁은 첨탑길을 올라가니 광장은 물론이고 베네치아 도시 전체와 강이 한눈에 보인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광경은 잠시, 이글거리는 햇살 아래 땀은 비 오듯 숨이 찰 정도였다.

서둘러 내려와 광장을 사이에 두고 성 마르코 대성당과 이어져 있는 궁전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이드는 지치지도 않고 모노톤의 설명을 이어간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도제(국가원수)의 공식적인 주거지로 9세기부터 건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309년부터 1424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다. 고딕 양식의 건물로, 조형미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궁전 안에는 ‘10인의 평의회 방’ 베네치아의 주요 역사를 그린 그림, 원수 76인의 초상화등이 있어 박물관 같았다. 이어서 옆에 있는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이드의 설명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모노톤의 설명에 모두들 지루해하고 지친 모습들이다. 두칼레 궁전은 중간쯤에서 하나둘씩 대열에서 빠져나간다. 이런 역사적인 설명보다는 눈으로 쓱 보고, 와우~ 감탄하고, 인증샷 찍고 가길 원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도시의 정수만을 원한다. 가이드는 그걸 간과한 것일까? 그래도 우리 6명은 거의 끝까지 남아 그녀의 설명을 경청했다. 같은 그룹 중에서 관광을 마치고 자리를 뜨면서도 아무도 그녀에게 팁을 주지 않았다. 돌아와 생각해도 왜 그랬을까 싶다. 후배님은 그때의 상황이 가장 미안했던 일이라고 기억했다.


드디어 일정이 끝났다. 수상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번엔 정차하는 곳이 많다. 덕분에  강가의 건물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피곤이 밀려왔지만 저녁식사를 거를 수는 없어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을 찾았다. 해물 파스타, 홍합파스타,  해물 구이등과 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그곳에서 만난 맥주, 비라 모레티 로사(Birra Moretti Rossa). 후배는 인생맥주를 만났 단다. 약간 달콤 쌉싸름하며 신듯한 뒷맛. 작은 기포. 붉은색이 도는 맥주. 약간 초콜릿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얼마나 오래 마시고 떠들었는지 식당은 문 닫을 시간이 되었나 보다. 마무리로 레몬 첼로(Limoncello) 한잔씩을 주며 내일 또 오라고 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일은 다른 곳에 있을 텐데, 하며 마음속의 인사를 건넨다.


물 위에 떠서 흔들리며 멀미를 한다. 시선의 어디에도 흔들림이 있는 곳. 흔들림 속에서 멀미를 진정시킨다. 내일은 또 새로운 곳을 향한다. 긴 여행에서 지칠 만도 하지만, 아직도 신성하고 새로운 만남에 작은 흥분이 생긴다. 흥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젊다고, 할만하다고 생각해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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