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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6. 2023

20. 물멀미를 뒤로하고 하고

길 위에 쌓이는 날들


길 위에서 지나는 날들이 쌓여간다.  집을 떠난 지 3주가 넘고 있지만 아직 갈 곳이 남아있다. 일찍 잠이 깼다. 가방도 이미 정리가 되었고 정해준 시간에 아침도 먹었으니, 오늘 탈 기차역은 어딘가 확인도 할 겸 숙소를 나왔다. 기차역은 걸어서 10분 거리. 확인이 되었다. 다시 돌아서 어제와 그제 갔던 길을 또 걷는다. 처음엔 낯설었어도 며칠 지나고 나면 익숙해지는 거리의 풍경. 어느새 현지인이 된 듯, 아는 거리인 듯, 편하게 걷는다. 이른 아침이라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는 쓸쓸하기만 하다. 다른 도시에 비해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많았던 도시를 미화원이 쓸고 있다.


강가로 나간다. 강물은 검고, 정박된 많은 배들이 떠나는 사람의 마음처럼 어둡다. 아름다움의 뒤에도 어둠이 있고 쓸쓸함이 공존한다. 여행객이 되면 그 어느 것을 봐도 와우~~ 하는 탄성이 나오며 기분이 업된다. 그런 소소한 행복 때문에 우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지불하고 여행을 하는 것 같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에서 기념품 하나라도 건지고 싶었지만 남편이 말려서 그만두었다. 현지에서는 예뻐 보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무용지물이 되어 짐이 되고 마는 것 아니냐는. 고운 칼라의 유리로 만든 목걸이와 귀걸이가, 베네치아 마그네틱이, 반짝거리는 가면의 반쪽이, 곤돌라 모형이, 그림엽서가 그랬다.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 들어와 체크 아웃을 하고 걸어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짐을 한 곳에 모아두고 우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많다. 화장실에 가야 했다. 이번엔 토큰이 필요하단다. 토큰을 받기 위해서는 편의 점에서 물건을 사고 그 거스름으로 토큰을 준단다. 남편은 맥주를 한 병씩 사 오고 칩도 하나 사 오고 물도 두어 병 사 오더니 토근이 6개가 되었다면서 하나씩 나누어준다. 웃을 수밖에… 한꺼번에 사고 토근을 몇 개 달라고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아니란다. 아무튼…

그렇게 토큰을 하나씩 건네받은 우리는 사용을 했고, 편하게 기차에 올랐다.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익히 들은 데로 짐은 낑낑대면서도 선반 위에 올렸고 절대 시선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기차에 오르니 남편이 이번엔 맥주 한 병씩을 건네준다. 후배가 인생 맥주라고 했던 것. 하나씩 받아 마시며 편하게 간다. 2시간 정도의 고속 열차. 지나는 풍경들은 여느 유럽처럼 푸르고, 푸르름의 안쪽은 평화로울 것 같다.

편하게 고속기차 2등 칸을 타고 밀라노에 도착했다. 밀라노의 중앙 스테이션은 유럽의 어느 궁전 같다. 높은 천장과 광장 같은 대합실을 지나며 인포메이션센터에 가서 확인을 한 후 구글 맵이 가르쳐 준 데로 걷는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호텔. 체크인을 하고 조금 쉰 뒤,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가까운 곳에 차이나 타운이 있다고 하여 걸어서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엔 마이크로 소프트 건물도 보이고 삼성과 LG 건물도 보인다. 새삼 대도시인걸 알았다. 미국, 한국의 대기업들이 모두 들아와 있는 것을 보니.


차이나 타운에서 걷다 만난 중국 음식점에서 짬뽕같이 생긴 국수와 볶음밥을 먹으며 김치 생각이 났다. 집을 떠난 지가 꽤 오래되긴 한모 양이다.  개운한 김치가 생각나는 것을 보니. 또 웃는다.

다음날의 일정은 11시간. 숙소에서 편하게 쉬며 다음날을 기다린다. 그 유명한 코모레익(Como Lake)이 유럽이 초행인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길 위의 날들은 추억을 켜켜이 쌓으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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