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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7. 2023

22. 듀오모성당에서 넋을 잃다

우리의 이야기가 그곳에 남아 있기를

호텔 프런트에 물어본다. 미팅 포인트까지 트램으로 가고, 밀라노 아웃렛을 가는 방법까지. 아웃렛은 버스로 한 시간쯤 가는데 일인당 22유로라고 알려준다. 쿠폰이 필요하면 줄 수 있다고 주섬주섬 꺼내는데 오후의 일정이 있어 안될 것 같다고 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 쇼핑할 생각은 없었다.


트램은 바로 길 건너에 있었다.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도 있었고 날씨도 흐려, 우비와 우산을 준비해 나간다. 일정은 오후지만 미리 시내 중심지를 돌아보고 오후 일정을 할 계획이다. 선로와 정류장은 보이는데 티켓을 파는 자동판매기가 안 보인다. 또 물어볼 수밖에. 자동판매기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있단다. 계단 아래에는 지하철이 있었고 길 위에는 트램이 있는 구조였다. 서둘러내려 가 티켓을 사서 올라오는데 폭우가 쏟아진다. 오늘 하루의 일정도 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소나기처럼 내리던 비가 조금 뜸해졌고 우린 트램을 타고 시내로 나올 수 있었다. 도심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손으로 꼭 잡고 조심하며 시내를 걷는다. 거리엔 미국의 유명 브랜드가 모두 나와 있는 것 같았다. 나이키 앞에 줄을 선 것을 보고, 왜? 의아했다.


높은 돔 같은 건물에 들어서니 십자로 난 길의 코너에 프라다(PRADA), 구찌(GUCCI), 루이뷔통(louis Vuitton), 알마니(ARMANI) 매장이 서로 마주 보며 코너를 지키고 있다. 화려한 불빛으로 세련된 디스플레이로  최신모델을 진열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리고 우린 진열대만 들여다보며 윈도쇼핑을 했다. 그러다 100가지 중국요리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구경만 하자는 남편과 후배를 따라갔다. 그때 후배님의 뒤로 세 여자가 바짝 다가섰다. 나도 그들 뒤를 바짝 쫓았다. 후배님은 가방을 뒤로 메고 있었지만 그 안에 우비만 들었을 뿐, 현금과 카드가 든 지갑은 앞 쪽의 조끼 주머니에 있었다. 그들 뒤를 나도 바짝 쫓자 어느 순간 그들이 사라졌다. 빨리 골목을 벗어나자고 재촉을 했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비가 다시 내린다.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곳. 점심을  주문해야 했다. 샐러드와 수프와 간단한 것들을 시키고 비를 비한다.

유럽의 도시들은 어딜 가도 노천에 카페가 있다. 음식을 파는 곳도 있고 음료만 파는 곳도 있다. 보행자 도로까지 두꺼운 비닐로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테이블이 놓여 있어, 바깥 구경을 하며 식사를 하기도 좋고, 공간 확보도 되어 좋겠지만 보행자들에겐 불편을 많이 주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거나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걸어서 만남의 장소로 가면 될 것 같았다.


밀라노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거리를 걸으며 윈도쇼핑을 한다. 대부분의 것에 가격이 붙어 있지 않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이지만, 가격표가 붙어 있으면 지나던 사람들이 가격에 놀라 절대 들어오지 않는단다. 그래서 디스플레이만 예쁘게 해 두어 손님의 눈길을 끌고, 안으로 들어오게 해 값을 알려주는 상술이란다. 모든 상품이 얼마나 고가면 그럴까, 안 들어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후의 미팅 장소까지 찾아가며 만나던 밀라노의 중심가는 화려했고 많은 인파들로 꽉 차 있었다. 역시 이태리의 최대 도시인 것 같았다. 오후 일정에는 30여 명이 모였다. 이어폰을 꽂고 일정이 시작된다. 도심의 곳곳을 걸으며 설명을 이어간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증권 거래소까지 도심에 있다. 보행자들만 다닐 수 있는 거리임에도 많은 공공기관이 있다는 건 걷는 불편을 감수하라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중심지에 단테의 거리(Via Dante)가  있다. 여긴 단테의 신곡 중, 천국일까? 지옥일까? 연옥일까? 연인 베아트리체가 안내하던 천국의 모습이 잠시 지나간다. 하늘을 싸고 있던 포근한 막 속의 어느 점. 일성, 화성, 수성 등 어느 곳이었을까? 혼자 웃는다. 가이드를 따라 다시 쇼핑몰 안으로 들어간다. 돔은 더 높아 보이고 설명을 들으며 올려다보니 돔의 가운데에도 성인들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예술이 일상이 된 이태리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듀오모 광장(duomo Di Milano)으로 나왔다. 비가 그친 광장엔 사람 반 비둘기 반이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을 줄이야. 우리들에게 기다리라고 한 가이드는 입장권을 가지러 갔고 그동안 인증샷 몇 장. 그동안 많은 성당을 만났지만 그렇게 큰 규모는 처음이다. 그 디테일에 말문이 막혔다. 아직도 한쪽에는 철근 구조물 안으로 개방형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오르내린다. 아마도 또 다른 조각품들을 새겨 넣고 있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입장.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성당, 이태리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란다. 밀라노 대교구의 대성당. 5세기 초부터 성당이 있었던 자리. 원래 있던 성당은 1075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 자리에 1386년부터 새로 지어졌다. 대성당 전체가 대리석으로 600여 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가톨릭의 살아 있는 역사다. 고딕 건축물의 걸작인 대성당은 각 첨탑과 벽면에 세워진 조각물만 3000천여 개.  조각물은 손으로만 한단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정으로 조각을 하고 실내의 모자이크도 하나씩 손으로 붙였다는 성당. 오랜 세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에 대한 존경심에 내 마음도 숙연해진다. 바닥은 대리석을 잘 끼워 맞춘 문양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되 있다. 굵은 기둥이 받치고 있는 돔은 성당의 장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테인드 글라스 속의 성인들과 성서에 관한 이야기들을 가이드는 깊이 있게 설명한다. 누구는 고딕 건물의 꽃이라고 표현했고 또 누구는 이태리의 어느 숲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고 했다. 어떤 표현으로도 부족한 장엄함.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모여 있는 촛대 앞에서 나도 간절한 마음의 기도 올려본다. 중앙 제대는 위엄이 있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압도당하고 만다. 당신의 생명을 바치며, 우리 죄를 대신한 그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넋을 놓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다시 도심의 거리를 걷고, 이번엔 이태리가 최고로 자랑하는 오페라 하우스인 스칼라극장(Teatro alla Scala)에 도착했다. 원래 있었던 궁정 극장의 자리. 1776년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어, 전쟁 후 최고의 시설로 보수를 하여 다시 개관했다. 극장은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오페라 극장이다. 이태리어로 하는 오페라. 옛 모습 그대로 복구된 극장은 3200여 개의 객석에 최고의 음향장비가 갖추어진 곳이다. 공연이 없는 시간엔 이렇게 무리를 지어 입장해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을 통해 돈을 벌고, 저녁이면 오페라 공연으로 돈을 버는 일석이조의 극장. 입장료가 만만치 않지만 주민들을 위해서는 매년 초에 일정 기간, 주민들 전용의 좌석에 한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있단다.  물론 전매가 금지돼있다는 한마디도 덧붙인다. 밀라노의 주민으로 사는 특혜를 톡톡히 받을 수 있구나 싶었다. 오페라는 일 년 이상 예매가 끝나 있단다. 이어 오페라 박물관. 그곳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초상화를 만났다.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결혼을 약속하고 있었던 마리아 칼라스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였다. 그리스계 미국인이면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여인. 오나시스가 자신을 버리고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을 하자, 그녀는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했고 파리의 어느 아파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가이드의 설명. 초상화에서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당당한 미소가 그대로 드러난다. 마리아 칼라스의 미소를 뒤로하고 다시 광장의 끝에서 마을을 도는 관광버스를 탔다.


한 15분쯤 갔을까.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는 작은 광장 앞에서 내린다. 광장은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Santa Maris Delle Grazie)과 도미니칸 수도사들의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예매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매 30분마다 문이 열리고 한 그룹씩 들어간다.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가자 백팩과 음료는 안으로 반입이 안된단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리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가로 880cm, 세로 470cm의 대형작품이다. 1495년부터 작품에 착수하여 1498년에 완성했다. 세월을 따라 색은 많이 바랬어도 그림이 주는 감동은 대단했다. 가이드의 설명도 최고이다. 남편이 한마디 한다. 저 가이드는 종교학자 이거나 서양사 교수인 것 같다고. 어떻게 저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지,라며.  피터의 손모양. 시몬의 표정. 테이블 아래의 발모양까지 설명이 이어진다. 잠시 자리에 앉아,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의 마지막 식사를 생각한다.

시간이 되어 나오는 길. 건축물 최고 명작을 만났고,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만났다. 인간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은 젊은 예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난다.


돌아가는 길, 다시 전철을 타야 한다. 가이드가 알려준 데로 정류장을 향한다. 지하로 내려가 자동판매기 앞에서 한국말로, 여기?  누를까? 하고 있는데, 잘생긴 청년이 다가오며 내게 말을 건다. 한국말로 ‘한국분들이세요? 도와드릴까요?’한다. 반갑고 또 반갑다. 우리의 행선지를 알려주자, 표를 사는 것을 도와주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자기도 거기까지 간다며. 서른쯤 돼 보이는 청년, 유럽 생활이 꽤 되었단다. 디자인 공부를 한다는 청년이니 이태리에 유학 와 있는 것은 어쩌면 최고의 선택일 수도 있겠다. 전철 안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도 저녁 전이었고 우리도 저녁을 먹어야 하니 함께 하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응했다. 편하게 차이나 타운을 가기로 한다. 어디선가 내렸고 지하통로를 지나 다음 열차로 갈아탔다. 내리라는 곳에서 하차해  어두운 골목을 몇 개 지나자 작은 중국집이 나왔다. 비는 다시 뿌리고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고 그를 따라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를 이어가며 열심히 사는 젊은 유학생을 만난 것 같아 흐뭇했다.


중국집. 다행히 좌석이 있다. 7명이 자리를 잡았고 그가 알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차례로 나온다. 중국집이니 고량주도 한잔하자며 주문을 한다. 고량주와 맥주와 함께하는 중국음식과 청년의 이야기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인증샷도 남기고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내 아들 같고 내 조카 같고 젊은 시절의 우리 같은 모습. 이렇게 따뜻한 손 잡아주고 저녁도 사주고, 청년에게 작은 용기라도 되었다면 좋겠다. 차이나 타운에서 우리 숙소까지는 걸어갈 수 있고 청년은 지하도를 내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보슬비가 내리는 밀라노의 밤. 이름 모를 거리에 서서 청년과 긴 이별을 한다. 그가 보는 우리들의 모습이 자신의 부모 같고 따뜻했고 푸근했다면 여행의 말미에서 만난 좋은 인연일 것 같다.


내일은 밀라노를 떠나는 날이다. 이제 길 위의 날들의 끝자락이다. 추억은 켜켜이  쌓이고 한 장씩 추억을 들추어 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의 뜻을 기억해 낸다. 인연이 만들어지고, 생각이 다듬어지고, 새로운 것들을 만났다. 마음에 남아 있던 흥분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최후의 만찬'을 보고 쉴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청년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고, 편안한 우리들의 모습이 함께 했고, 서로의 배려에 감사한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밀라노 어느 한 곳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기를 기도하며 굵어지는 빗줄기와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돌아가면 또 떠날 준비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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