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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9. 2023

24. 에필로그

다음을 준비하며


짧지 않은 시간들을 계획하며 나의 무모함에 스스로 놀랐다. 엄마는 요양원에 계시고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여행에 동행하겠다고 답을 했다. 길을 떠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곳에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미룰수록 떠나기 어려워질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유럽 여행은 벌써 3번이나 미뤘다. 결혼 40주년에 가려고 했었던 것이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며, 절대로 길을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가지 못했다. 미국과 한국, 두 곳에서만 항상 대기상태라야 할 것 같았다. 일 년쯤 어쩔 줄 모르고 울며 지내자 아픔의 정도도 조금 가벼워졌다. 무남독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누군가 힐책을 한다면, 나도 사람인지라 무뎌져서라고 변명하고 싶다.


그다음 해는 코로나가 덮쳤다. 예방 주사를 제일 먼저 맞았고, 마스크를 10겹 쓰더라도 떠나볼 참이었다. 그러나 예약되었던 크루즈 회사에서 배를 띄우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환불을 받고 많이 허전했다. 그러면서 ‘유럽’이란 곳과의 인연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두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여행에 함께 한다는 답을 했고, 여행은 하나하나 준비 되었다. 준비 과정 중에 나는 한국에 있었다. 엄마의 상태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그렇다고 여행준비를 중간에서 그만둘 수도 없었다. 대금은 이미 반환이 되지 않는 것으로 지불이 된 상태. ‘못 가면 하는 수 없지’라며, 마음을 편하게 갖었다.

엄마는 그런 딸의 상황을 아셨는지 봄, 그 따뜻한 날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 세상 여행을 그렇게 끝내셨다. 여름, 난 미국에 돌아와 예정된 대로 좋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여행을 떠났다. 어쩌면 이 편안함은 엄마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편하게 다녀와라. 내 걱정하지 말고…’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여행 내내 엄마의 마음은 늘 함께 했다.

                                                                      


취리히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탑승구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작은 백팩과 손에는 가방 하나씩 들고 있다. 비행기에서 먹을 스낵과 추우면 입을 잠바 등이 들어 있다. 보안검사대를 통과하는데 후배님의 가방이 걸렸다. 열어 보자 그 안에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 와 휴대용 배터리가 들어있었다. 휴대용 배터리는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볼 용도였다. 나이프는 미처 생각을 못하고 넣어 온 것이었다. 시간이 충분했으므로 다시 카운터에 가서 부치고 오라고 했고 우린 먼저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들어간 바로 입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20분도 채 되지 않아 그 입구를 클로즈한단다. 거기에 서 있던 우리들을 모두 아래층으로 내려 보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여기인데, 낭패였다. 그동안 나와 남편은 남은 유로를 쓰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다. 다시 나가서 짐을 부치고 들어오기로 한 후배. 우리 둘. 남은 3명이 각각 흩어졌다. 각자 비행기 표과 여권을 갖고 있으니 탑승구 앞에 가면 만나기야 하겠지만 당황스러웠다.  서로 카톡 전화를 했지만 잘 터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겨우 탑승구 앞에서 다시 만나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탑승을 하고 4시간 여만에 아이스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도착했다. 출국수속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공항에서 머무는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되었다. 서둘러 줄을 섰지만 출국장의 줄은 짧아지지 않고 발만 동동 굴렀다. 겨우 차례가 되어 출국 스탬프를 받고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비행기표를 스캔하는데 내 것만 빨간 불이 들어오며 문이 열리지 않았다. 5명은 이미 통과하여 나를 기다리고.

당황하며 서 있는데 보안요원이 따라오란다. 이럴 땐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떨리는 건 왤까? 렌덤 체크에 걸렸단다. 번호표를 주며 앉아 기다리란다. 비행기표를 보여주며 시간이 없다고 읍소를 했다. 그러자 ‘걱정 마. 네가 탈 비행기에서 네가 여기 있다는 걸 다 알아. 너를 안태우고는 안 떠날 테니’란다. 황당했다. 다들 기다리는데. 그 순간 머릿속을 지나는 생각, 너무 많이 해외를 들락거렸나? 머릿속은 뒤죽박죽, 마음은 급하고. 이름이 불려서 들어간 방에서는 내가 메고 있던 작은 백팩 안의 것을 비우란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고, 몸수색을 한단다. 무조건’ 예스’ 그렇게 길었던 5분이 지나고 나오니 모두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뭐야?’하고 남편이 물었고 ‘나도 모르지’하고 답했다. 하도 왔다 갔다를 많이 하니 걸렸나 봐. 아직 시간이 15분쯤 남아 다행이었다. 지정된 탑승구를 찾아가는 동안 남자들은 화장실을 간다며 사라졌고 우린 탑승구로 갔다. 아뿔싸, 이번엔 버스를 타고 비행기 활주로까지 가야 하는 상황. 남자들은 안 오고 우리들은 카톡 전화로 빨리 오라고 소리 지르고. 뛰어 오는 손에 피자박스가 들려 있다. 겨우 버스에 오르자 버스가 바로 출발한다.

무사히 탑승. 7시간 반의 비행시간이 남았다. 졸다가 남자들이 건네주는 피자를 한쪽 씩 받으며, 소리 질러서 미안했다는 말을 건넨다. 너무 급해서. 사람은 안 오고 라는 변명을 섞어서.

무사히 덴버도착. 밤이 깊었다. 우린 또 한 시간을 가야 했으므로 짐이 나오자 바로 떠났다. 그런데 후배가 마지막 부친 짐은 도착이 안 됐고, 다음날 집으로 갔다 주기로 했단다. 허겁지겁 겨우 도착한 느낌.

                                                         


처음 만나는 풍경은 늘 새롭고 신선하고 흥미롭다. 유럽도 마찬가지. 우리 6명 모두 초행이어서 준비하는 마음은 기대가 많았다. 여행의 절반쯤에 다다르자, 고고한 성당, 웅장한 궁전, 엄청난 궁궐, 강물의 자유와 오랜 역사들의 되풀이였다. 역사를 잘 간직해 현재의 문화로 가꾼 후손들의 노력에 감탄했다. 솔직히 좀 부러웠다면 과장일까. 비교해서 보이는 한국과 미국의 현실 속에서 나는 나로, 우리는 우리로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본 유럽이었고 며칠 머무르다 떠날 여행객이었지만, 나의 시선 안의 유럽은 거대한 한 국가였다. 차 표지판을 같이 통일 시켜쓰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는 표지판 하나만 있고 거의 무사 통과이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로라는 통화를 쓰고,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뿌리가 거의 같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누구는 지배자였고 누구는 피 지배자였다. 거의 매일 가이드가 있는 여행을 했기에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억에 담아두기 위해 기록했다. 잊어버린 부분이 기억하고 있는 부분보다 훨씬 많고, 메모가 빠진 부분들도 많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며 다시 한번 우리들의 시간을 돌아본다. 여행을 정리하기 위해 펼쳐놓았던 책상 주위의 노트들, 사진들, 지도들, 연필들을 모아서 서랍에 잘 간직한다.

유럽의 다른 곳들을 보러 떠날 그날이 언제 일지 모르지만, 어느 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좀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겠다. 이번에는 처음이라 좀 서툴렀다.


그래도 그곳에 있는 동안에는 작은 속삭임에도 귀를 기울여 들었고,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하며 걸었다. 걷고 또 걸었던 우리들의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온다. 집은 내가 기댈 수 있어서 포근하다. 땅멀미가 시작되면 또 떠나겠지. 인생은 여행의 연속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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