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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8. 2023

23.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걸어보고 싶은 곳


전날 중국집에서 과식을 했고 고량주에 맥주까지 마셨으니 숙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잠에서 깨니 날씨는 맑고 몸도 개운하다.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출발한다. 9시 10분에 출발하는 고속기차, 알프스 산맥을 넘어 취리히까지 간다. 취리히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취리히 <-> 덴버의 왕복 비행기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밀라노 기차역은 벌써 3번째. 풍경도 길도 익숙하다. 짐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익숙한 모습의 현지인 같았을까? 취리히행 기차는 고속열차에 일등석이다. 미리 예매를 한 후배님은 여행의 끝이라 지쳤을 것 같아 조금 편한 자리로 구매했다는 이야기다. 자리를 잡고 편하게 가기만 하면 되는 기차. 졸음을 친구 삼으면 될 일이다.

한 시간쯤 갔을까 눈에 들어오는 호수, 코모 호수이다. 알프스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났다. 이어 기차는 계속 오르막 길이다. 옆으로는 잘 정돈된 초록의 언덕이 이어진다. 기차는 몇 군데서 정차를 했다. 특히 루가노 호수(Lake Lugano)에서는 내려서 걷고 싶을 만큼 풍경이 아름다웠다. 푸른 호수와 이어지는 초록의 언덕들이 그림 같다. 풍경에 매료되어 잠은 싹 달아나 버렸다. 작은 폭포들과 소들이 쉬고 있는 초록의 평원, 이어지는  터널. 멀리 알프스의 만년설이 보이고 기차는 계속 오른다. 창밖 아래로 보이는 철로도 있고 마을도 있다. 열심히 셔터를 눌렀지만 창을 통해 빛이 반사되는 풍경은 늘 흔들렸다. 아쉬워하며, 기회가 된다면 이런 도시에는 내려서 산행을 조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산이면 바위를 타고, 초록의 산이면 숲을 따라, 동네의 좁은 길이면 그 마을의 풍경을 따라, 걷는 상상을 한다. 얼마를 올랐을까 이번엔 서서히 내려간다. 아마 알프스를 다 넘어왔나 보다. 남자들은 식당 칸에 가서 스낵을 사 오고, 간단히 요기를 한다.

도착한 취리히. 3주 이상을 돌고 다시 돌아왔다. 익숙하게 숙소를 찾아간다. 바로 취리히 강 부근이다. 여행 중 처음으로 물을 무료로 주는 숙소. 아이스크림도 무료. 방 안의 냉장고 안에 있는 것은 다 무료란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체크인을 한다. 언제 지은 건물인지 엘리베이터가 반수 동이다. 문을 열고 철장 같은 것을 열고 들어가 다시 닫고 버튼을 누른다. 1층에 있었던 우리는 계단을 이용한다. 그게 훨씬 더 편했다.

짐을 놓고 다시 나왔다. 처음 취리히에 도착했을 때는 3일 내내 비가 왔었다. 모든 사진들이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찍었다. 이번엔 우비가 없는 모습으로 길을 나선다. 다시 보는 취리히 강도 반갑고, 다리도 반갑고, 멀리 보이는 성당의 첨탑도, 도시의 풍경도 반갑다. 골목길에서 취리히 프라이 치킨을 만났다. 미국의 켄터키 프라이 치킨과 너무 흡사하다. 상품권 문제가 없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닭튀김을 한 통 사들고 맥주를 시키고 노천카페에 앉는다. 내일 유럽을 떠나며, 지난 시간들의 이야기 두런두런 이어간다.


마지막 날이라는 기분, 참 묘하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감정. 다시 또 올 거냐고 누군가 물었다. 글쎄, 생각을 좀 해 봐야야겠네,라는 답을 했다. 다음 날은 오후 2시 출발 비행기. 여유가 있을 것 같다.

강가를 다시 걷고 선물가게도 기웃거리고 마지막 장소에서 포즈도 취해보고, 방으로 돌아온 시간은 꽤 늦었다. 짐 정리를 하고 잠을 청하는데 더워서 잘 수가 없다. 에어컨을 찾았지만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창을 열었다. 시원한 강바람이 들어온다. 그러나 문제는 소음. 고성방가가 밤새 이어진다. 관광지의 강가. 파티가 이어지는 듯했고 새벽까지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여행의 끝이라는 기분 때문이었을까, 소음 때문이었을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체크 아웃을 하며 에어컨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어콘이 없는 빌딩이란다. 예약 사이트에도 에어컨이 없다고 공지가 되어 있단다. 아~ 몰랐네. 시간이 충분했기에 다시 한번 취리히 강가를 걷고 들어왔다. 언제 또 올지 알 수 없는 길을 눈에 담고 기억에 매어 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짐을 부치고 공항로비에 앉아 시간이 이렇게 훌쩍 갔네, 같은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또 다른 떠남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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