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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Sep 29. 2023

8. 세 개의 강이 만나는 곳, 파사우.

다뉴브 강을 만나며

차가운 강바람에 몸을 맡기고 유속을 느낀다. 뒤로 흘러가는 강줄기와 앞의 시선이 만나는 강의 길,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침 햇살은 눈 부시고 바람은 신선하고 어젯밤의 달빛은 고고하게 깊었다.


예정된 사우 워킹 투어는 8시 출발. 이른 조식을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선다. 떠나기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기침을 했던 후배님 부부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 후배님 요셉은 기침이 심해졌고 그의 와이프 젬마도 잔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더 나빠지지 않아야 할 텐데, 마음이 쓰인다.


파사우 시내는 며칠 전 홍수 범람의 흔적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시청 앞의 모래주머니와 피어에 인접해 있는 상가들은 침수 방지용 마루 판자들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고, 식당들의 내부도 아직 어두운 채였다. 강물이 범람하며 올라왔던 물의 흔적들이 외벽에 기다란 금을 내며 이어졌다. 3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니 도시 전체가 강에 둘러 쌓여있고 폭우가 내리면 걷잡을 수 없이 수위가 올라간단다. 상류의 땜들에 물을 가두는 것도 한계가 있어 며칠 전 같은 상황에는 범람을 막을 수 없었단다. 우리 바로 전에 파사우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유람선은 어쩔 수 없이 여기를 올라오지 못해서 중간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예측 불가하여 이런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빌딩들에 새겨 놓은 기록들로 꽤 여러 번 범람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시의 긴 역사 안에서 기록된 여러 번의 범람 그중 하나로 기억될 며칠 전의 상황.

일정을 알려주는 바이킹호의 뉴스레터에 따르면, 파사우는 3개의 강이 만나는 도시(City of Three Rivers)로 잘 알려져 있다. 도시는 인(Inn), 다뉴브(Danube), Ilz(이~츠) 강이 만난다. 켈트 부족 보이(Celtic Boii Tribe)가 원주민이었고, 739년경 영국의 켈트 수도사들이 정착하며 파사우 주교청이 만들어졌고, 이후 오랫동안 가톨릭 왕국으로 자리 잡혔다고 한다. 중세 이후, 강이 도시를 싸고 있었던 이유로 교역이 발달하였고 화이트 골드(White Gold)라고 불리는 소금이 주 교역물이었다.  르네상스 기간에는 고급 검이 발달하여 파사우 칼날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예술작품이 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지고 있단다. 17세기에 들어서며 도시의 건축물들이 바로코 양식으로 개축과 증축이 되었는데, 대표 건축물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갈 세인트 스테판 대성당(St. Stephen’s Cathedral)이다.

세인트 스테판 대성당은 소리의 음향의 효과를 최대로 살린 곳으로 유명하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올갠을 보유하고 있다. 파이프 올갠의 무게는 7,550 KG(16,645 파운드)이고, 17,974개의 올갠 파이프를 갖고 있으며, 233 스텝과 4개의 종을 갖고 있다. 5개의 파트로 나누어진 올갠은 메인 키보드를 통해 동시에 연주할 수 있어, 이 올갠 소리를 들은 방문객들은 숨이 멈춘다는 표현을 한다고 한다. 올갠은 현재 수리 중이다. 대성당은 소리뿐만 아니라 실내 벽화, 흰색 중심의 실내와 조화를 이루는 황금색, 원목 그대로 깎아 만든 조형물들이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천상을 그대로 옮겨 온 것 같다. 그 안에 포근히 안겨 있는 우리들. 머리를 숙여 감사하며 대성당을 나온다.


이어서 만나는 거리는 깨끗하고 아담한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유럽은 어딜 가더라도 광장을 중심으로 거리를 형성하는 것 같다. 여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광장을 중심으로 카페와 아트 갤러리와 성당들이 이어져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보존을 했고 지금도 이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는지 신기했다. 강바람이 제법 찼던 파사우. 물이 있어 도시가 번창할 수 있었지만, 물이 있어 자연재해를 늘 곁에 두고 살아야 했던 곳. 강을 닮은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 어느 곳에서 만나기도 하고 줄기를 만들어 헤어지기도 하면서 간다.

유속을 따라가는 물멍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기는 하지만 자칫 우울에 빠질 수 있게도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물결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 살면서 그런 일들이 언제였던가 돌아본다.


유람선은 오후 1시 15 분, 다음 도시 린츠(Linz)를 향해 떠난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떠나는 이유는 바이킹호가 홍수 때문에 좀 더 상류에 정박해 있었기 때문이다. 흐르는 강을 옆에 두고 점심 식사를 한다. 무한리필로 따라주는 와인과 음식들. 맛을 음미하고, 눈을 즐기고, 배는 부르고, 적당히 취기도 오르는 오후다.

단지 후배님 부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상비약을 계속 복용했었도 하루에 만 오천보 이상은 기본으로 걸어야 하는 걷기 위주의 관광에 힘이 많이 든 것 같다. 나처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적극 권장. 그러나 걷기를 무서워하는 이들에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조언을 감히 해본다. 매일 이어지는 강행군에 쉴 수가 없으니 감기가 떨어질 리가 없다. 비타민 C 가 많다는 오렌지 주스만 마시고 또 마시고, 분위기 메이커인 젬마가 조용해지자 수다를 잊어버렸다. 함께하는 재미가 순간에 사라졌다.

눈과 가슴에 자연을 담고, 바람을 맞으며, 혼자의 시간을 즐긴다. 열심히 풍경 사진을 찍는 남편.  혼자 유람선의 난간에 기대서서 다음 도시에 대한 기대로 조금은 들뜬다. 물 길 위에서 다뉴브 강의 소통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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