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지은 Sep 26. 2023

7. 프라하를 떠나며

드디어 바이킹 호에 승선하다

드디어 바이킹호에 승선하는 날이다. 우리들을 태우러 올 버스는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다. 오전 10시까지, 짐을 싸서 색깔로 구분된 태그를 달아 문밖에 내놓으라는 설명. 든든하게 조식도 먹었고 짐도 내놓고 나니, 버스가 출발하기로 되어 있는 시간까지는 꽤 넉넉히 시간이 남아있었다. 바이킹 직원에게 물어보니 트램을 타고 시내 한 바퀴 돌고 와도 시간이 충분할 거라며, 타는 방법과 번호를 알려준다. 여행 첫날부터 내리던 비도 그쳤다. 그리고 65세 이상이면 무료 승차할 수 있단다. '도전!' 호텔 건너편 건물을 지나자 정류장이었다. 22번이나 8번을 타라고 알려 주었다. 8번, 빨간 트램이 도착했다. 그걸 모르고 지난 이틀은 시내에서 호텔까지 꽤 걸었었는데… 트램이 도착하자 우린 잽싸게 올랐다. 한 10여분 갔을까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시내 광장, ‘내립시다’ 내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돌아갈 때 다시 타야 할 곳을 기억해야 하기에 바로 앞 상징적인 건물 표시판 하나 찰칵.


눈에 익은 공산당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입장권을 사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궁금증은 건물 밖에서 기념사진 몇 컷을 건지는 것으로 대신했다. 돌아 나와 다시 시내 골목을 기웃 거였다. 이른 시간 탓인지, 거리는 조용했고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비둘기들만 가득 찬 광장에서 프라하와 이별이다. 그 옛날의 드라마와는 달리.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들의 마지막 장면은 “둘은 잘 먹고 잘 살았대요.”라는 다소 코믹한 스틸 컷이었다.  2005년 SBS에서 30% 이상의 시청률을 냈던 김은숙 작가의 전도연과 김주혁 주연의 사랑이야기. 작가의 사랑 시리즈 중 대표작이라고 꼽히는 드라마의 배경은 프라하 곳곳의 우아함과 중세의 고고함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드라마를 보며, 프라하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비록 나뿐만이었을까? 시청자의 대부분이, 사랑이 현재 진행형이던 커플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드라마의 배경인 곳에 우리들이 걷고, 느끼고, 주인공들이 탔던 트램도 탔다. 청춘의 그 시절로 돌아가 아련한 기억을 불러온다.

중세 유럽의 시간으로 들어가 한 시간 쫌 거리를 걷다가, 다시 하차했던 지점을 찾아서 트램을 타고 돌아왔다. 호텔 건너편 건물 안에는 슈퍼 마켓과 서점과 카페등 작은 가게들이 쭈욱 있었다. 그걸 모르고 전 날 저녁에는 건너편으로 나가 길을 헤매었구나 싶다. 여행 중 만나게 되는 새로운 곳은 알만하면 떠나게 된다던 말을 기억하며 또 다음을 약속할 수밖에.


바이킹호에서 제공한 버스에 오른다. 한 3시간쯤 가야 한단다. 프로그램 디렉터, 사비인은 생글생글 미소를 띠며 자신을 소개한다. 하선할 때까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책임지는 인솔자인 거다. 버스에 가득 탄 승객들이 어디서 왔는지 소개한다. 대부분은 미국이었고 영국, 벨기에라는 소리도 들렸다. 참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모였다.


도심을 벗어나자 풍경들이 너무도 평화롭다. 그림엽서와 달력에서 보았던 맑은 수채화와 색감 좋은 유화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가 그친 때문일까 언덕은 초록 초록하고 붉은 지붕들과 어울려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몇 컷 찍으며 마음에도 함께 담아둔다.


버스가 멈추었다. 잠시 화장실 갈 수 있는 시간이란다. 화장실은 코인을 넣거나 크레팃 카드를 대야만 문이 열렸다. 한번 들어가는데 2유로. 대한민국의 휴게소 화장실은 무료이고 실내에는 방향제에 음악까지 흐르는 것과는 사뭇 대조가 되었다. 미국엔 아예 이런 컨셥의 휴게소는 없다. 간이 화장실과 졸음을 쫓을 수 있는 벤치 같은 것이 전부인 곳. 그래도 화장실 사용료는 받지 않는다. 뭐 주전부리라도 살까 싶어 둘러보았지만 엄청 비싸다. 그냥 다시 버스에 오르며 ‘와, 이게 유럽의 화장실 문화구나’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브레이크가 끝나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목가적인 풍경을 제대로 즐기며 간다. 강을 찾아가는 길은 이어지는 옥수수밭과 소들이 방목된 목장들이다. 가이드는 1985년에 유럽의 경계가 거의 사라지며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 쉬워졌다고 알려준다. 표시판 하나로 국경을 통과하고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는 공동화폐인 유로를 쓰고 차의 표지판조차 통일해 쓴다. 표지판의 앞 알파벳이 각 나라를 알려주고 있을 뿐. 이 거대한 대륙이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바이킹호 승선을 하는 곳은 세 강이 만나는 독일의 파사우(Passau)라는 작은 도시이다. 모든 River Cruise의 승선과 하선을 하는 도시. 그런데 우리가 승선할 장소가 바뀌었단다. 며칠 동안 내린 폭우로 파사우 승선 장 주변 대부분이 침수되었고 강의 수위가 너무 높아 그곳에 배를 댈 수가 없단다. 혹시 배를 못 타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파사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를 정박을 시켜 놓아서 그곳에서 승선해야 한단다. 내일 파사우 시내 관광 일정은 변함이 없고 예정에 없던 이 작은 도시, 잉글하트젤(Engelhartszell)까지 보게 됐으니 덤 아니냐는 설명이다.


버스가 도착하고 승선 절차를 밟으며 배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번 탔던 Ocean Cruise는 3000여 명의 승객을 태운다. 그런데 River Cruise는 그의 1/10도 안 되는 198명이 승선했단다. 객실 서비스를 위한 종업원들을 합쳐도 겨우 250여 명. 어쩌면 더 가족 같은 분위기일까? 기대를 하면서 내 버켓 리스트 중의 하나를 시행하고 있음에 기분은 들떠 있었다.

도착한 방에서는 멀리 푸른 언덕이 보이고 작은 동네가 그림처럼 보인다. 웰컴 뉴스레터가 침대 위에 놓여있다. 오후에는 승선 중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시간과 바이킹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시간도 있다. 꼭 참석해야 하는 것들이다.  저녁 식사는 7시 반이란다. 약간 시장기가 돌았지만 배 안에서의 첫날 근사한 디너를 기다리며 썬덱에 올라가 걷기도 하고 라이브 피아노를 들으며 오랫만에 느긋한 여유를 부린다.


‘푸른 다뉴브강’이라는 음악가들의 표현은 너무 과장되 있었다. 며칠의 폭우와 범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뉴브 강은 흙탕물 정도의 흙빛이었다. 빠른 웨이브를 만들며 호수많큼 넓은 강폭을 자랑한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강 위에 떠있다. 인생은 여행과 비슷한 것 같다. 모르는 곳을 향해 떠나고 낯선 곳을 만나면 불안해하고 익숙해질 만하면 또 떠난다. 미래를 보는 재주가 있다면 사는 일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꽤 쏠쏠한 것이 여행이고 현재를 살아 냄으로써 평온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이만큼 살아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 남은 인생도 넓고 깊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다뉴브 강이 흑해로 흘러가듯 내 인생도 넓은 바다로 흘러갔으면…

이전 06화 6.프라하의 둘째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