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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Sep 23. 2023

5. 파노라믹, 프라하

마음을 다독여야 했던 하루

도착한 어젯밤부터 바이킹 호의 일정이다. 힐튼 호텔에 도착했고 우리들을 1006호 방을 배정받았다. '앗싸~ 10층이네, 제법 뷰가 있지 않을까?' 하며,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아무리 눌러도 10층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같이 탔던 6층에서 내렸던 손님이 알려준다. '아마 저쪽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걸요.' '그런가?' 짐을 끌고 내려 다시 건너편에 있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역시 10층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짐을 들고 실랑이를 하며 4곳에 옮겨 타 보았지만 10층은 눌러지지 않았다. 겨우 겨우 다시 호텔 로비로 돌아왔다. 그리고 10층이 안 눌러진다고, 불평을 했다. 방 키를 보더니 1층의 006호 란다. '오메~ 또 당했네.' 하는 기분이었다. 취리히 호텔에서는 후배님이 1층을 못 찾아 헤맸고 우린 프라하에서 1층을 10층으로 알고... 1층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만 올라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제야 제대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미리 좀 알려 주지 하는 마음. 역시 이곳도 <친절>과는 상관이 없구나 싶었다. 짐 끌고 왔다 갔다 하며 짜증은 머리끝까지. 이번 여행이 쉽지는 안겠구나 하는 생각이 휙 지나갔다.


호텔 방에는 바이킹에서 제공하는 프라하의 일정이 놓여있었다.  스케줄의 Day2가 우리들에겐 1인 셈이다. Welcome walk 하지도 않았고, 선택이었던 프라하(Prague)의 밤을 구경하지도 않았으니.

아침 이른 출발이다. 비는 여기서도 이어진다. 우비를 챙기며 버스에 오른다. 날씨가 우리들의 여행을 시샘하고 있나? 생각이 든다. 자리에 앉으며 둘러보니 우리 6명이 가장 젊은것 같다. 너무 쉬운 코스를 택했나 싶었지만 바이킹에서 제공하는 일정이니 도시의 중요한 부분들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프라하의 올드 타운. 다시 우리들을 태우러 올 시간은 5시간 후. 그동안 걸어서 시내 관광을 한다. 비가 내리는 프라하. 바닥은 비에 젖어 검은빛이지만 건물 지붕들은 주황색으로, 물기를 품어 붉은 주황색이 진해지며 더욱 아름다웠다. 시가지 어디에서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프라하 성을 바라보며 가이드를 따라 걷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이드의 설명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며 인구가 130만 명이 좀 넘는단다. 중 유럽의 중요 관광도시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9세기에 창건되어,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를 걸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도시였다가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후 민주화 운동이었던 1968년 프라하의 봄 사태로 유명하며, 1993년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메모를 보며 기억을 되살렸고 위키피디아를 찾아 확인하였다.


도착한 곳은 카를교( Karluv Most). 올드 타운과 프라하 성을 연결하는 다리 아래로는  어두운 녹색의 블타바강( Vltava River)이 흐른다. 비를 맞으며 다리 위에서 여러 개의 조각 상들을 구경한다. 가이드는 조각 하나하나가 누구인지 설명한다. 성경에 나오는 체코를 지킨 성인들이다. 그중 한 곳에서 발을 멈춘다. 지나다니던 많은 길손이 만졌던 곳은 반들 반들하게 윤을 내며 달아 있다. 나도 그 조각 상에 손을 문지르며 마음속의 바램을 속으로 말했다. 다리는 생각보다 꽤 넓었다. 프라하는 2차 세계 대전 중에도 비교적 도심 파괴가 적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많은 건축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도시 중심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많은 건축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유럽의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세계인들에게 자랑한다.


비 속을 걸어 시계탑(Prague Astronomical clock)까지 왔다. 오는 동안 길에서 만났던 프라하 시가지 풍경들을 눈에 담아 둔다. 이 시계는 1410년 처음 설치되어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시계이며 여전히 작동하는 천문시계이다. 시계 장치는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천문 눈금으로, 하늘의 해와 달의 위치를 설명한다. 2번째는 원형 판 위의 창문이 열리며 사도들의 행진이 있다. 매 시간마다 12 사도의 모형과 죽음을 형상화한 해골 모형들이 움직인다. 3번째는 달력의 눈금판이다. 정시에 맞추어 시계소리를 듣는다. 


이어 가이드는 점심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버스에 탔던 일행들은 한 시간 후 다시 만나기로 한다. 비를 맞으며 구시가 광장(Old town square)을 기웃거리다가 거리의 음식점을 찾았다. 체코음식인 통돼지 구이, 꼴레뇨(koleno)와 설탕을 잔뜩 묻힌 꽈배기 맛인  굴뚝같은 모양의 체코 과자, 뜨르들로(Trdlo)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흑맥주 코젤과 필스너 우르겔(Urquell)을 한잔씩 사서 손에 들고 다시 모이는 곳으로 돌아왔다.

다음 행선지는 타운 안에 있는 성니콜라스성당(St. Nicholas church). 바로크 건축의 대표 건축물이다. 13세기 고딕양식이었던 것이 1740년에서 1755년 사이에 다시 지어져 니콜라스 성인에게 헌정되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교회는 예수회에 넘겨지기도 했고 새로운 교회로 다시 지어지기도 했으며 체코의 유명한 백작인 벤처슬라우스는 전 재산을 털어 교회와 인근의 건물들을 건설했단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높은 교회의 첨탑이 미국과 유고슬라비아, 서독 대사관들의 접근 경로를 감시하는 국가 안보 타워로 쓰이기도 했단다. 오랜 역사만큼 아픈 역사도 함께하는 교회는 아직도 수리 중이고 공사 중이었다. 그렇게 역사는 만들어지고 고쳐지며 이어져 갈 것이다. 성당 내부의 위엄에 잠시 숙연해진다.

드디어 프라하 성에 입성했다. 성 안에 자리 잡은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 프라하의 대주교좌 성당으로 고딕 양식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이다. 이 대성당에는 여러 성자들, 영주, 귀족들,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고딕 양식을 띤 현재의 이성당은 1344년에 건축이 시작되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스테인드글라스. 빛을 받으며 색의 조화와 아름다움은 넋을 잃고 바라보게 한다.


프라하 성은 광장을 가운데 두고 지어진 건물들의 위용이 경이롭다. 현재도 체코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 이곳에 있다.  이 성은 길이 약 570미터, 폭은 약 13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이라고 기네스 북에 등재되어 있다.  해마다 약 18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프라하성의 역사는 870년 성모마리아 성당이 건설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프라하 성. 국빈이 올 때 아직도 사용한다는 건물의 한쪽을 올려다보며 유럽의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남겨준 어마 어마한 유산이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돌아 나오며 남편을 찾았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시선에서 또 사라졌다. 늘 찾아야 하고, 늘 뒤에 쳐지고, 톤을 높여 불러야만 행렬에 끼는 남편이 야속했다. 두 부부가 ‘형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잘하면서, 형수님께는 안 그러는 것 같네’라는 한마디에 나는 조금 민망했다. 나중에 들은 변명이지만 남편은 인증샷보다는 건물이나 풍경 사진을 좀 더 좋은 구도에서 찍으려고 그랬단다.


관광 코스는 끝났고, 몸이 좋지 않다는 후배님의 와이프를 남겨두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시가지로 다시 나왔다. 기웃거려서 찾은 곳은 1939년부터 그 장소에서 레스토랑을 했다는 맛집이었다. 오랜만에 친절한 종업원을 만나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

여행을 떠난 이틀 후, 남편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집에 가고 싶어'라고 했다. 일행들은 빵 터졌고,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하는 나의 표정에 머쓱했던  한 순간이 지나갔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여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프라하의 근사한 풍경, 장대한 역사와 고고한 문화를 기억 속에 가두며 와인 한잔 마신다.  아직 시작일 뿐이라고... 편해지자고... 스스로 민망했던 마음을 다독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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