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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Sep 21. 2023

3.취리히에서 둘째 날

비는 계속 내리고


서양식 조식은 늘 비슷하다. 삶은 달걀과 베이컨, 시리얼과 떠먹는 요구르트, 과일과 빵, 스위스의 각종 치즈가 진열돼 있었다. 진한 커피와 과일을 담아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번 오늘의 일정에 대한 설명. 제일 걱정되는 것은 기차를 타는 일이었다. 예습은 돼 있었지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우비를 넣은 백팩을 메고 길을 나섰다. 구글 맵을 켜고 따라 걷는 길.  작은 편의점도 보이고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어린이집을 지나며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

도착한 기차역에서 자동판매기를 통해 표를 사려고 애썼지만 생각처럼 잘 안되었다. 영어 안내가 있었지만. 남편은 옆에 있던 현지인에게 도움을 부탁했고, 표는 한 장씩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줬다. 한 장씩 구매를 6번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경로 우대권을 구입하는 기지도 발휘했다.  S15번 기차에 올랐다. 표를 스켄하는 곳도, 보자는 사람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취리히 공항과 기차역 근처의 풍경들을 눈에 담아둔다. 한 20여분 후 기차는 중앙역(Zurich HB)에 도착했다. 하차를 하는데도 표를 검사하는 사람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모두 편안하게 그냥 내린다.


일단 오후에 모이는 장소를 확인하기로 했다. 다시 구글 맵을 켜고 걸었다. 왼쪽, 오른쪽을 정확하게 알려주며 정확히 목적지를 찾아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주위는 온통 공사 중이어서 번거로웠다. 모일 장소를 확인했으니 오전에 가보기로 했던 곳들로 발길을 돌린다.

첫 번째 갈 장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스위스 국립 박물관(Swiss National Museum), 중후한 유럽 풍의 건물을 만났다. 일단 인증샷을 몇 개 찍고 입장권을 구매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도 공사 중.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을 약속하며.


이어서 쇼핑가로 알려진 반호프 거리(Bahnhofstrasse)를 걷는다. 1.5Km 이상 이어진 길. 그 옆으로는 취리히 중심부를 관통하는 리마트 강(Limmat River)이 흐른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은 취리히 호수(Lake Zurich)로 이어진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건물들. 유럽의 한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다시 인증샷.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든 모습이지만 나중에 보면 좋은 추억 거리가 될 수 있을 거라며 함께 웃었다.  뮌스터 브리지(Munster Bridge)에서 바라보는 건물들 모습이 압권이다. 비 오는 날 특유의 잿빛 스산함도 중세 유럽의 빌딩사이에선 나름의 멋이 되어 다가왔다.

다음은 그로스뮌스터 교회(Grossmunster Church)로 향했다. 1100년-1200년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로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 서원으로 칼 대제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 울리츠츠빙글리가 임종 때까지 이곳에서 설교를 하였다고 하여, 종교 개혁의 어머니 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2개의  상징적인 탑을 자랑하는 교회는 종교개혁의 발상지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고 위키백과가 전한다.      

재미있었던 것은 교회 앞 광장에서 반가운 한국 포장마차를 만날 줄이야. 아쉽게도 오전이라 아직 열기 전이다.

이어지는 곳은 피터 교회(Peter Church).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가 있는 최초의 개신교 교회. 피터 교회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규모는 동네 교회같이 작고 아담했다.  마침 그 안에서는 연주회 연습을 하고 있었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감상을 하며 종교와 음악이 주는 조화로움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앞마당에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마주 보는 의자가 놓여 있다. 한컷 찰칵.


다시 강을 따라 걷고 반호프와 니더도로프(Niederdorf) 거리를 지나 오후 모임장소에 도착했다. 비는 여전히 내렸고 가끔 소나기를 동반했다. 관광버스에 오르며 궂은 날씨 덕택에 일정이 녹록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오후, 단체 관광의 첫 번째 방문지는 프라우뮌스터 성당(Fraumuster Church). 9세기 수도원으로 지어진 오래된 성당의 청록색 첨탑은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띈다. 리마트 강을 사이에 두고 그로스뮌스터와 마주 보고 있다. 특히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는 성당의 명물이다. 북쪽 긴 창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1945년 제작한 자코메티의 작품인 <천상의 낙원, The Heavenly Paradise>이며, 남쪽의 장미창과 성가대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이 1960년대 후반부터 제작한 작품이라고  위키백과가 전한다.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문외한도 샤갈이 쓴 푸른 색감을 바라보고 있으면, 색의 풍미와 마력에 빠지게 된다.


다음은 펠젠엑(Felsenegg), 취리히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갖고 있다는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전망대와 그 옆의 숲엔 안개만 자욱했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우비를 입은 채로 숲 속의 작은 언덕을 오른다. 그곳에서 많은 송수신기를 발견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펠젠엑 산 역 근처의 TV 타워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호수를 따라 한참을 드라이브하며 여러 곳들을 설명했다. 그러나 빗속에서 만나는 건물들은 그냥 스쳐갈 뿐, 한컷도 건지지 못했다. 호수에는 포구와 포구를 연결하는 페리가 운행되고 있었다. 버스가 통째로 배로 올라간다. 멀리 보이는 호숫가의 집들은 그림엽서에 나오는 풍경들이다. 얼마나 정돈이 잘되고 깨끗하고 푸른지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진은 잘 찍히지 않았다. 역시 비 때문에.


취리히 시내를 관광하는 3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가이드의 설명으로 유럽의 역사와 지형에 대한 공부를 많아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들을 때뿐이지 지금은 까맣게 잊어버렸고, 이 글은 쓰는 이 시간에도 위키 백과를 찾아보고, 지난 시간의 사진들에서 위치를 찾아 보고야 ‘아~하~~’하며 글을 이어 갈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을 바라보며 먹는 근사한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스위스의 대표 음식은 빵을 치즈에 찍어 먹는 퐁듀(fondue), 감자를 얇게 채쳐서 전처럼 부친 뢰스티(Rocti), 송아지 고기로 만든 소시지(Bratwurst), 소젖 치즈인 라크렛(Raclette) 등이 있다고 미리 찾아보고 갔으니 호기롭게 퐁듀를 주문했다. 잘게 자른 네모난 빵뿐만 아니라 버섯, 감자, 양파 등 야채들도 찍어 먹을 수 있게 함께 나왔다. 현지에서 유명하다는 맥주도 곁들여 시켰다. 배 부르게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음식값 300 프랑 이상을 결제하며 이러면 예산 초과가 꽤 되겠구나 싶었다. 저녁시간 동안에는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물멍을 때리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올 것을 생각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렀다.

종일 비가 왔던 취리히의 거리는 회색이지만 정결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스위스 경제의 중심이라지만 그리 복잡하지 않았고, 옛 모습을 잘 간직하며 현대의 모습도 간간히 섞어 놓아 조화를 이룬 도시. 좁은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스위스 국기.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잘 나타내는 는 곳 같은 인상을 받았다.


유럽에서 만났던 첫 도시에서 밤은 다시 또 빗속에서 깊어간다. 비에 젖은 마음이 조금은 무겁다. 오랜 역사와 문화, 그것을 잘 지키는 후손들의 모습이 무게가 되어 내 가슴에 내린다. 내일 방긋 해가 나며 이 무거움을 좀 덜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도 하는 마음이 되어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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