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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Sep 22. 2023

4. 취리히를 떠나며

다음 도시를 향하여


다음 도시로 떠난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이다. 짐을 챙겨 프런트에 맡겨두고 다시 취리히 시내로 나가 볼거리들을 기웃거리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전날 빗속의 관광으로 많이 피곤해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올 때도 일박을 하는 곳이라서 그때 또 보기로 하고 느긋하고 편안한 조식을 즐겼다. 사실 우리의 계획은 공항에 일찍 나와 짐을 미리 부치고 트램을 타고 시내로 나가 좀 더 구경을 하고 점심을 먹고 비행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가보고 싶었던 곳은 2곳.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Zurich Opera House)는 1891년 개관되어 현재까지도 공연을 하고 있는 유럽 역사의 한 곳이란다. 뮤지컬, 독창회, 연주회 등의 공연을 즐기는 나의 호기심이 점찍었던 곳이다. 또 한 곳은 쿤스트 하우스(Kunsthaus Zurich). 미술에 전혀 문외한이기는 하지만 스위스에서 가장 크다는 미술관이고 모네의 작품들과 뭉크, 피카소의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나치의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들을 협박해 일부 작품들이 판매되었을 수 있다는 이유로 화제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경위를 밝히고자 하는 세계 아티스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미술관은 트램을 이용해 갈 수 있었고 정차 역도 쿤스트 하우스로 이름 붙여져 대중의 발걸음이 상당히 용이하게 되어 있었다. 이 또한 여행을 떠나기 전 알아보고 메모해 두었던 정보들이다.

아직 시작일 뿐인 우리들이 여행에서 에너지를 좀 축적해 두는 것도 남은 여행을 잘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기약이 없는 다음을 약속한다.


아쉬움이 가득한 채 짐을 챙겨 떠난다. 비행시간보다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부치고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동안 공항 근처라도 돌아보자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트램을 타고 멀리 가기에는 조심스러웠고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뭐가 없을까 살피던 중, 건너편에 ‘스위스 캡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입구는 카페이고 그 안쪽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는 캡슐형 호텔. 유럽에서 어느 도시를 가나 경유지로 환영을 받고 있는 취리히 공항의 빠질 수 없는 편의 시설인 것 같았다. 일단 커피 한잔 마시며 근처에 갈 곳이 있나 알아보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신라면과 튀김우동’을 만났다. 그야말로 ‘깜놀’이었다. ‘다른 곳 알아볼 필요도 없겠네. 여기서 라면 먹고 맥주 한잔 하면서 시간 때우자’라는 후배님 한마디에 모두 공감. 편안한 자세로 등을 기대고 앉았다.

세 남자가 라면과 우동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온다. 흑맥주와 쌉싸름한 IPA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근사한 점심식사가 만들어졌다.  어느 블로그에서 스위스 산악 열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면 그곳 카페에 신라면이 있다고, 그 뜨거운 국물과 꼬들한 면발이 이 세상 최고의 맛이라고 칭찬했던 기억이 났다. 그 말에 동감하며 젓가락이 있었더라면… 하며 웃는다.

멀리 가는 수고를 대신해 신라면과 튀김 우동을 즐기며 가지런히 꼽혀 있는 문고들을 꺼내 뒤척거린다. 독일어를 몰라 읽지는 못해도 책을 펼치며 느끼는 따스함은 무릎 담요처럼 포근하다.  취리히에서의 며칠, 유럽에서 처음 만난 도시였지만 회색빛 도시의 인상이 깊다. 아직도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이고 비 오는 날의 빈대떡과 막걸리를 찾는 후배님의 입담 안에서 한가한 오후가 지난다. 

그러다 문득 기억되었던 며칠 전의 에피소드. 호텔에 체크인을 하며 있었던 일이다. 1층으로 방 배정을 받은 후배님 부부는 로비와 식당에 연결되어 있던 복도란 복도는 다 기웃거렸단다. 그 커다란 짐들을 끌고. 아무리 찾아도 방 넘버는 보이지 않고, 당황해하며 프런트에 다시 물었더니, 로비가 있는 곳은 건물의 0층. 따라서 1층은 한 층 올라가야 있다는. '아~하~.'  문 이열리고 2명이 타면 딱 맞을 크기의 엘리베이터엔 0부터 시작되는 넘버가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며 '외국인 관광객이니까 체크인 할 때 좀 가르쳐 주었더라면...'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구동성 답했다. '그러면 유럽이 아니게? 그런 친절은 이제 기대할 수 없는 일... 우리끼리 생존해야지...' 하며 웃었다. <친절>이라는 것은 남의 이야기가 된 지 오래 인듯한 유럽의 첫 도시. 환영받지 못하는 관광객이 되었지만 다음 도시로 떠나며, 그곳은 좀 다를까 기대를 해본다.


시간이 되어 탑승을 했고, 체코 프라하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반.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고 겉옷의 최대한 눈에 잘 띄는 곳에 바이킹(Viking) 심벌 스티커를 붙였다. 바이킹 호에서 안내원이 나와 있을 거라는 이멜을 받았기에 아무 걱정을 안 하고  출구로 나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문의를 하자, 바이킹에서 사람이 왜 안 나왔지? 하는 표정이다. 공항을 아무리 둘러봐도 우릴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멜에 적혀 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쪽에서는 우리 비행기의 도착 시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못 나왔던 것.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면 그곳에 바이킹 직원이 있을 거고, 택시비를 환불해 줄 거란다.

서둘러 택시 라인을 찾고, 6명과 짐을 실을 수 있는 커다란 밴을 선택했다. 택시 기사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영수증을 출력해 달라고 하자 난감한 표정이다. 자신의 택시는 대형임으로 일반 택시의 1.5배를 받아야 하는데 영수증에는 거리미터로 환산되어 요금이 나올꺼라나. 그의 볼멘소리에 남편은 20불짜리 달러 한 장을 집어 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도착한 힐튼 호텔. 지하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바이킹호 테스크는 이미 불이 꺼졌고 상주 직원은 퇴근 후였다. 우리끼리 저녁도 해결해야 하고, 택시비 환불도 다음날로 미뤄야 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낯선 길이라 호텔 안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미리 찾아봤던 대로 꼴레뇨(Koleno)를 시켰다. 한국식 족발 같은 것. 채소와 곁들이면 근사한 한 끼가 된다. 힐튼 호텔 답지 않은 엉망인 서비스에 적지 않게 실망을 했지만 음식맛은 괜찮아 마음에 담아 두지 않기로 한다.

체코는 맥주가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일인당의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 특히 필스너 우르겔은 1842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황금빛 페일 라거이며 알코올 농도도 4.4% 밖에 안되어 물대신 마시기에 안성맞춤이다. 빙하가 녹은 강과 호수가 많은데도 물의 질이 좋지 않아, 14세가 되면 맥주를 마신다고 하니 참 모를 일이다. 필스너 우르겔(Pilsner Urquell)과 흑맥주 코젤(Kozel). 물보다 싸고 맛있다는 맥주는 다음날로 미루고 근사한 현지 와인 한 병을 주문해 나누어 마신다.  

“치얼스(Cheers)!”  아직 제대로 만나지 못한 프라하의 첫 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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