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지은 Sep 20. 2023

2.첫 도착지. Zurich, Switzerland

부슬비 속에서 만난 유럽의 첫 도시, 취리히.


덴버 출발 13시간쯤 후 유럽에 발을 디뎠다. 경유지는 북극에서 가까운 아이스랜드(Iceland)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 비행기의 창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선 잠시 만년설이 보이는가 싶더니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이 바로 착륙. 늦가을 비가 내리는 음습한 공항. 버스를 타고 메인 빌딩까지 이동을 해야 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이동 수단이었지만 무리들을 따라 함께 움직였다. 입국심사대에서 유럽에 무슨 이유로 왔냐며, 얼마나 머물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 달여. 순수한 여행 목적이라고 답하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미소를 지으며’ 땡큐’라고 말했지만 답이 없다. 무표정의 사무적인 공항 직원에 당황. 커피를 한잔 마시며 취리히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커피 한잔을 사는데도 보딩 패스가 필요했고 물 한병이 6유로라고 붙어 있어 다시 또 한 번 당황.


취리히행 게이트를 찾아가는 것부터 나의 몫이다. 도착해 보니 뮌헨 가는 비행기가 서 있다. 그새 이트 넘버가 바뀌었던건지 내가 잘못 보았던건지… 혼자 웃는다. ‘이제 실전이다. 찾고, 물어보고, 확인하는 일들의 연속이겠다’는 생각. 취리히에 도착하자 비는 그쳤다. 생각보다 훨씬 쌀쌀한 날씨에 얇은 잠바를 꺼내 입으며 택시를 잡았다. 짐도 많았고 인원도 6명이다 보니 커다란 이 필요했다. 주소를 주고 도착한 호텔. 예약자 성명을 주었는데 그런 예약은 없단다. 이어지는 당황… 새로운 경험을 위한 시행착오 같은 것이기만 바랄 뿐이었다. 같은 이름의 호텔이 공항 근처에도 있다며 그곳을 찾아봐 주었다. 다행히 그곳에 우리들의 예약이 있었다. 50 프랑이나 주고 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그 주소가 어떻게 우리들의 일정표에 적혀 있는지는 우리 남편이 대답해야 할 일이다. 그가 만든 일정표에 이 주소가 적혀 있었으니… 다행히 그 호텔에서 다시 을 불러 주었고 또다시 50프랑을 내고 예약이 되어 있던 호텔로 갈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는 프랑만 쓴다. 미리 준비해 가져 갔던 현금이 있어 다행이었다.


체크인을 한 시간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늦은 오후. 여행 중에는 현지식을 먹어야 한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내가 찾아 두었던 맛집은 처음에 도착했던 호텔의 근교라 갈 수가 없었고, 호텔 로비에서 물어보았더니 동네의 맛집을 알려 주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이웃들 속에 자리 잡은 아담한 식당. 영어도 그림도 없는 메뉴판을 보며 고전하다가 주인에게 물어서야 겨우 음식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지역의 맥주를 곁들인. 느긋하게 도착의 기쁨을 즐겼다. 식사가 끝날 무렵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처음 만나는 유럽의 동네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 골목에서 만났던 분홍색 무궁화. 우리나라 꽃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피어 있다니, 새삼 반가웠다. 누구라도 해외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또 혼자 웃었다.


걸음도 빠르고 며칠 동안은 남편을 대신해 내가 준비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명감을 갖고 앞서 걸었다. ‘형수, 다 좋은데, 조금만 천천히 걸어요.’라며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 나처럼 빨리 걷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왜 못했던 것일까. 보폭을 줄이고 속도를 늦추었다. 함께 하는 여행은 누구나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를 살피는 배려심을 갖게한다.

저녁을 먹으며 다음날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오전에는 취리히 올드 타운을 보고 오후에는 예정되어 있던 <Best of Zurich>  3시간짜리 단체 관광이 있다는.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탄다는 이야기도 함께. 기차 노선은 S 15 인 것 같고 한 15분쯤 타야 할 것 같다는 것도. 구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이 모든 일정을 계획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아침은 8시에 만나서 먹기로 하고 각자의 방으로 올라갔다. 호텔 카운터에서 다시 한번 기차 타는 방법을 확인하고 우리도 방으로 올라갔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 밤. 들고 갔던 책을 꺼내서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독서처럼 좋은 수면제가 또 어디 있을까. 슬픔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 떠난 낯선 곳에서의 밤은 깊어만 갔다.

이전 01화 1.설렘을 안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