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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Sep 19. 2023

1.설렘을 안고

유럽 여행을 준비하며


살얼음이 내렸던 지난해 초 겨울, 우리 집에 남편 모교인 대광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야기 끝에 유럽 여행 이야기가 나왔고 시간을 넉넉히 낼 수 있는 세부부가 함께 하기로 했다. 늘 만나는 이들이라 별 망설임이 없었다. 단지 우리들의 부모님이 연로하셨고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 질지 몰라 염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행을 약속했던 이유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또 그 상황에 맞추면 될 일이었다. 동창 모임  2주 후 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연말엔 유럽 여행의 리더를 맡은 남편 후배가 단톡 채팅방을 만들며 여행 계획을 진행시켰다. 이름도 아름다운 ‘다뉴브 월츠(Danube Waltz)’. 강을 따라 가는 크루즈의 여행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단톡방이 만들어지자 여행 계획은 가시화 되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신세계에 대한 기대로 약간은 들떴다.


남편과 함께 하는 여행의 대부분은 내가 계획하고 진행을 했었다. 이번 여행은 그냥 한 일원이 되어  따라만 다니면 되는 것 같아, 참 편하겠다 싶었다. 더구나 한국을 나가 있는 동안 엄마의 상태는 몰라보게 나빠져 남편도 2번이나 나와야 했고, 아이들도 와야 했고, 급기야 어머니를 천상에 모시는 일까지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여행 계획에 일일이 답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받아준 후배님의 마음이 고맙다.

3 부부 모두 유럽은 초행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적당히 흥분되어 있었고, 즐겁게 일정을 짜는 것 같았다. 미국에 있었더라면 나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한국에 머물면서는 한계가 있었다. 남편은 후배님이 결정하는 대로 모든 것을 오케이 했고, 한 달 이상은 너무 긴 것 같으니 며칠만이라도 줄이자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여행 중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는 리버크루즈(River Cruise)였다. Ocean Cruise는 몇 번 타 보았지만 강을 따라 도시를 여행하는 리버 크루즈는 내게는 버켓 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가격이 오션 크루즈와 비교해 꽤 비싼 편이었지만 한 번은 가보고 싶었고 함께 할 이들이 있어 결정을 했다. 독일 페소 출발, 헝가리 부다 페스트에서 하선하는 바이킹 호(Viking Cruise). 승선 전 3일간의 체코 프라하의 육지 여행을 포함한 11일간의 일정. 웹 사이트에 들어가 자세한 일정을 찾아보아야 했겠지만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후배님의 결정을 따른다고 답했다.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동유럽 어딘가를 다뉴브 강을 따라가겠구나 싶었다. 남편은 후배의 안내에 따라 여행 계획들을 하나 하나 예약했다. 동시에 한국에서 엄마의 상황은 업 앤 다운이 계속되었다. 엄마 옆에 있는 것만 할 수 있던 시간들이었다. 크루즈 예약을 마쳤고 유럽으로 행 할 비행기 예약을 마친 2월 말 남편은 급하게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엄마의 상태는 호전되었고 다시 미국으로 들어갔다. 4월 아이들이 할머니의 가시는 길에 작별인사를 하러 한국으로 왔다. 그 경황 중에 가을 유럽 여행을 할 수는 있을 것인지, 상황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미 많이 진행된 여행의 예약들. 여기서 되돌릴 수도 없었다. 단톡방에 새로운 예약과 일정들이 뜰 때마다 ‘그래, 안되면 하는 수 없고..’하는 심정이었다.

4월 말 어머니는 이승의 소풍을 끝냈고 많은 이들이 편안한 작별이라며 ‘호상(好喪)’이라고 말해 줬다. 나는 어머니를 보낸 슬픔을 간직한 채 7월 초 미국으로 돌아와서야 여행 계획이 눈에 들어왔다. 동유럽 쪽의 9개국. 긴 비행시간 후 도착 하는 곳에서 며칠 여행을 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2-3일에 한 번씩은 다른 장소로 옮기는 일정.

가는 곳들의 이름과 특성과 꼭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과 주변 환경 등이 눈에 들어왔다. 유럽 지도를 펴 놓고 지역을 찾아보고, 구글 서치를 하며 하고 싶은 것들은 알아보았다. 숙박하는 곳과 대중교통을 이용한 거리도 알아보았고.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도시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하고 백과사전에서 알려 주는 도시의 특성과 역사를 읽어보기도 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다 기억할 수가 없어, 간단히 메모를 하기도 하며 우리들의 일정을 미리 따라가 보았다. 한 포인트에서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대중교통 이용. 약간 두렵기도 했지만, 닥치면 되겠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남들도 다 했던 일이고, 예습의 효과도 기대하며…

드디어 여행 예비 미팅을 했다. 여행을 이끌어 갈 후배님 댁에서. 일정을 소개받으며 난 이미 백팩을 앞으로 맨 채 동유럽 어딘가에서 걷고 있었고, 트램을 타기 위한 표를 사고 있었다. 후배님은 남편에게는 도착부터 크루즈 동안 매일 할 일정을 짜라고 어싸인을 주었고, 막내 후배님께는 하선 후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각 도시에서 가 보고 싶은 곳과 어떻게 이동할지 등에 대한 것을 준비하라는 어싸인을 주었다. 여행의 큰 그림과 꽤 많은 매일의 일정은 이미 리더가 잘 알아서 준비해 주었기에 나머지 것들만 우리 두 부부가 하면 되었다.


남편은 어싸인을 받았지만 그냥 ‘모르쇠’ 모드였다. 성질 급한 내가 나서서 하는 수밖에. 구글 지도를 찾아 도착지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시간들과 심지어 동네의 현지 맛집까지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새삼 큰 그림을 그려준 리더의 수고가 느껴졌다. 떠나기 나흘 전 각자 맡았던 계획을 가지고 우리 집에서 다시 만났다. 피자 한쪽을 앞에 놓고 우리들은 진지하게 일정을 점검했다.


짐을 챙기며 날씨를 확인했다. 편안한 신발을 챙기고 에너지를 보충해 줄 비타민과 작은 포장의 인삼들을 넣으며 마음은 이미 하늘을 날고 초등학생 소풍 가듯 들떴다. 마음의 슬픔을 조금 내려놓고. 한 번도 발 디뎌 보지 못했던 곳을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곳은 우리를 기다리겠지. 가슴엔 설렘을 가득 안고 우리는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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