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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Feb 28. 2024

주문진에 가면

다시 강릉 6


강릉의 대표 어시장, 주문진으로 향한다. 절친과 둘이. 가기 싫은 겨울의 끝자락이 봄 햇살 사이로 찬바람을 밀어내며 억지로 버티던 날. 우린 봄내음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안목에서 40분쯤 북쪽으로 가면 만나게 되는 곳. 해안도로의 구비 구비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우리들의 시선 안에 머물고,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서행을 하는 차들만 몇 대 천천히 움직인다. 작년에 화마가 지나간 해변 마을은 이미 많이 정리가 되었고 사천을 지나자 거리엔 우리 차 밖에 없는 듯 조용했다. 주문진 해변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인적이 없는 텅 빈 겨울 바다. 파도는 잔잔하고 갈매기들만 백사장에 한가로이 모여 있다. 해송들이 이어진 해변 숲길은 간밤 비를 맞아 나무 등걸은 검고 떨어진 솔잎들은 붉었다. 습기를 머금은 해안 숲 속의 솔 향. 언제 만나도 신선하고 향기롭다. 천천히 걷는다.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동해안 종주 자전거 길. 언젠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이 길을 따라 고성까지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 길에는 중간에 스탬프를 받는 곳이 있다. 옛날의 빨간 공중전화 부스 같이 생겼고 그 안에는 스탬프와 잉크가 준비돼 있다. 이곳을 지나며 셀프 스탬프를 찍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페달을 밟는 나를 상상해 본다. 지경리 언덕을 돌아 차를 세웠던 곳으로 돌아오며 동해안을 마음껏 바라보며 지낼 수 있는 요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생각이 휙 지난다. 김형석 교수님이 어느 신문 칼럼에서 ‘100년이 넘는 생을 살아 보니 65-75세 사이가 가장 편했고 행복했다’고 했다. 그 말에 다시 한번 공감하지 않느냐고 친구에게 묻는다. 그녀도 마찬가지. 우린 아직 100세까지 살아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어가며 차로 돌아왔다.

주문진은 바다가 내어주는 각 종 수산물들이 늘 풍성한 곳. 건어물 천국. 비릿한 생선냄새 가득한 어항. 살아있는 생선처럼 사람들도 시끌벅적 어우러지며 활기찬 곳. 그 활력소인 시장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철인 양미리와 도루묵 구이를 먹기 위해. 생선이 구워지는 동안 미역국과 잡곡밥이 먼저 나왔다. 한참을 걸어서 시장기가 돌았고 미역국이 꽤 맛있었다. 구운 생선을 맨손으로 뜯으며 이런 맛에 주문진에 오는 게 아닐까 싶다.

호객을 하며 바구니 가득 담아 펄떡거리는 생선에 덤을 주고, 빛의 속도로 생선을 손질하여 주는 곳. 골목 가득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게와 문어를 찌고, 생선을 굽는 고소한 냄새 가득한 곳. 가끔 우울감이 깊어지고 기운이 빠지면 주문진 어시장의 활력을 기억하며 마음을 끌어올리려 한다. 동해의 푸르름 속에서 만나는 삶의 냄새, 나의 활력소 주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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