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는 말에 무척 공감한다. 여행도 독서도 좋아하는 할머니라서 어디든 길 떠나는 일은 적당히 들뜨며 부푼 가슴이 된다.
이번도 마찬가지. 한국을 자주 왔지만 일본 여행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주어진 조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 4년 엄마는 요양원에 계셨고, 이젠 대기상황이 종료되었다.
늘 그런 것처럼, 절친에게 동행이 가능한지 타진해 보았다. 절친도 그녀의 남편도 이미 일본 여행을 두어 번씩 가봤었지만 오래된 추억이니 이쯤에서 한번 더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동의.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 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기억하며 절친부부에게 고마웠다.
남편이 한국에 도착했고 강릉에서 며칠을 지냈다. 떠나기로 한 날짜의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전 8시. 그 시간에 맞추어 인천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전 날 상경하여 공항 근처에서 일박을 해야 비행기 출발 시간을 맞출 수가 있었다. 공항 근처의 호텔 중 터미널까지의 셔틀이 있는지 확인하고 전철역에서 가까운 곳을 택해 예약 완료.
우리가 호텔에 체크인하는 시간에 맞추어 외사촌 동생 부부가 호텔 근처로 오기로 하였다. 절친 부부와 외사촌 동생부부는 나와의 인연을 통해 잘 아는 사이였다. 6명이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맥을 곁들인 근사한 저녁 식사를 했다. 호텔로 돌아와 차를 마시며 저녁은 깊어 갔다.
다음날 새벽, 셔틀 운행이 시작되기 전에 출발해야 했던 우리는 택시를 탔다. 어둠을 헤치며 질주하는 젊은 기사님. 무사히 도착할까 걱정했지만, 덕택에 일찍 도착한 공항. 새벽 시간이었음에도 인천 공항은 많이 복잡했다.
<00 여행사> 카운터 앞. 함께 여행할 여행객들이 속속 모이고 인솔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가보는 일본’이었기에 여행사에서 보내준 여행 일정을 보고 예습을 좀 했다. 우리가 방문할 곳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 지의 키 포인트를 미리 숙지하고 노트에 메모도 해서 길을 떠났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내심 속으로 바라며.
길지 않은 1시간 50분의 비행. 비행시간에 비해 출입국을 통과하는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졌다. 꼬불꼬불 길게 줄을 늘어선 입국자들.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엔화가치 하락으로 일본으로 몰리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번역 기능이 있는 전화기 한 대 믿고 도착한 일본. 입국절차의 긴 줄로 인해 기대는 점점 짜증이 되려는 시간. 입국이 되었고, 일본에서의 첫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모두들 미리 준비해 갔던 우산을 꺼냈다. 난 짐의 무게를 줄인다며 우산을 안 가져왔는데… 버스에 탑승만 하면 되니까, 일본의 비를 한번 맞아볼 모양이었다.
일행은 총 13명. 모두 커플이었고, 한 젊은 여대생이 혼자 하는 여행이었고 가이드도 여자분이었다. 여행객 수에 비해 턱없이 컸던 버스. 한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도 충분했다.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긴 줄의 짜증은 잠시 잊어버리고 새로운 곳을 향한 발걸음 하나씩 떼어 놓는다. 봄비가 촉촉이 내라는 일본의 첫 풍경은 고즈넉하고 깨끗하다. 낮은 회색 지붕들은 낯선 여행자들을 수선스럽지 않은 시선으로 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