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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y 14. 2024

항구도시, 고베

일본 여행 1


고베(KOBE)는 1868년 개항 이후 1980년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항구였다. 봄비 내리는 풍경은 차창 너머로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지나가고 우측으로 롯코산(한국어로 육갑산)이라 불리는 산을 먼 시선으로 만나며 도착한 곳은 메모리얼 팍(Memorial Park). 1995년 1월 17일 새벽에 일어난 고베 대지진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기울어지고 녹슨 가로등. 주저앉은 시멘트 도로. 무너진 다리의 조각 등 지진 후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존하며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않게 하는 듯했다. 보존 경위와 과정, 부두의 역사를 설명해 놓은 안내판은 한글도 있어 이해가 편했다. 영어와 일어로 되어 있는 기념비. 그날의 상흔은 세월 속에서 아물어 가고,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고가 다리와 새로운 건물들은 지진 이후 개 보수된 것들이다. 남아 있는 지진의 흔적들과 오늘의 모습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봄비에 졌고 있었다. 공원에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었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아 아쉬웠다. 멀리 보이는 긴 컵 모양의 빨간색 고베 포트 타워. 늦은 저녁이면 ‘루미나리’라는 빛의 축제로 도시를 황홀경에 이르게 하고 여행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어 가까운 곳에 있는 모자이크(Mosaic) 쇼핑센터. 바닷가에 위치한 종합 쇼핑센터 중 하나의 건물. 아기자기한 선물 가게와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곳. 쇼핑센터 아래쪽으로는 고베 하버랜드라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연결되어 있어 고베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곳. 인증샷 몇 개와 아이스크림으로 쇼핑을 대신했다.


다시 봄비 내리는 풍경을 지나 다음 도착한 곳은 기쿠마사무네 주조 기념관(Kiku-Masamune Sake Brewery & Museum). 기념관에서는 ‘술 빚기의 유래를 아는 것’과 술 빚는 과정 등 사케 문화를 알려주었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중년 여인의 설명을 듣고 역사의 짧은 필름을 본 후 시음. 딱 한 모금 사이즈로 준비해 준 전통 사케와 매실주가 한 모금씩. 술 좋아하는 절친의 남편과 나는 술을 고르며 신났다. 면세를 받을 수 있는 5병을 골라 담고, 저녁 식사에 좋은 반주가 있을 걸 미리 알았다. 이 기념관은 1659년 술 빚는 사람, 혼카노야 본택 저택 내에서 세워진 양조장에서 시작이었다. 1995년 고베 대 지진으로 손상된 기념관은 1999년 재 개관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50년이 넘는 전통으로 빚는 술에 대한 자부심과 맛을 배우며 술 향 가득한 일본 식 고택을 나온다. 정원에는 버드나무처럼 휘어 내려오며 피어 있는 겹 벚나무. 오가는 길손에게 사케 한잔 청하며 조용조용 봄비 내리는 선율을 흩뿌린다.


다음 행선지는 오사카성 공원(Osaka Castle Park). 탄성이 나오도록 만개한 벚꽃 터널 안에서 하얗게 내리는 꽃 비를 맞으며 걷는 공원 길. 옆으로 이어지는 물길과 어우러지며 많은 여행객들을 환영한다. 일본 내에서도 4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고 하니 꽃 반 사람만. 모두들 봄날의 주인공이 되어 인생 샷 건지기에 여념이 없다. 벚꽃 시즌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갔던 오사카인데. 운 좋게 만개한 벚꽃 숲을 만날 수 있었다. 황홀한 벚꽃 터널로 밀려 들어가며 이 봄비가 그치고 나면 꽃잎은 모두 낙화가 되어 길에 쌓일 것 같았다. 꽃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쌓이기 시작한 벚꽃 카펫을 밟으며 성을 나온다.

오사카성은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하였다. 커다란 돌들을 쌓아 성을 만들고 성 주위로 물이 흐르게 하여 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게 설계된 구조물. 1585년, 금박 기와와 옻칠을 한 판자 금장식 등으로 호화로운 망루형 천수각을 완성하여 천하 권력자의 권위를 마음껏 과시한 곳. 임진왜란의 역사가 기억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성을 바라보아야 했지만 지난 역사는 지나간 사실로만 그 자리에 둔다. 커다란 돌로 만들어진 성벽은 우리나라의 성벽과는 달리 비스듬하게 서로를 기대며 쌓아져 있다. 구조에 다름을 배우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저녁엔 다시 비가 내렸다. 오사카의 명동이라고 하는 도톤보리(Dotonbori). 오사카 대표 번화가. 에도 시대에 가부키를 공연하는 연극 거리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먹거리와 기념 품 가게, 음식점, 술집들이 즐비한 상권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파는 길거리의 음식을 먹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가이드 말에 우린 빗속에서 <금룡>이라는 라멘 집에 줄을 섰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라멘의 맛은 낮 설었다. 시끄러운 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절감했던 시간. 휘황찬란하고, 시끄럽고, 어수선했던 도심의 거리 풍경은 밤의 네온 빛 사이로 사라지고 드디어 몸을 쉴 수 있는 숙소.


다음날 일정은 느긋하게 10시 정도 출발이다. 새벽 한국 출발부터 종일 강행군을 했으니 넉넉히 쉬고 느긋하게 출발한다. 다행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절친의 방에서 이어졌던 사케 파티. 두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방에 4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케를 마시며 치얼스 하며 외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선과 새로운 느낌을 공유하며 일본의 첫 날밤은 봄 꽃비 속에서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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