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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May 17. 2024

사슴의 도시, 나라(Nara)

일본여행 2


봄비 그친 거리. 연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도다이지(Todaiji 동대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목조사찰. 1203년 처음 건축되어 1709년에 재건하였다. 대웅전 안의 불상은 얼굴의 길이만 5미터라고 하니 그 규모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코너 코너를 돌 때마다 불전함이 있었는데 그곳에 동전을 던져 넣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언. 사찰 안을 돌다 보니 커다란 나무 기둥 가운데에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고, 그걸 통과하면 10년 액운을 막아 준 단다. 호기심에 나도 해볼까?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었다. 대웅전 밖에는 병자들을 위한 불상이 하나 있었고 자신이 아픈 곳이 있으면 그 불상의 그곳을 만지면 낫는다고 한다. 딱히 아픈 데는 없지만 머리가 맑아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에 머리를 만지고 싶었지만 손이 가는 곳은 무릎 정도. 무릎을 한번 만지고 돌아 나온다. 대웅전 앞 광장의 정원들은 한참 단장 중이었고, 단풍철에 오면 장관을 이룬다는 한마디 귀동냥으로 듣는다.

사찰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에 무수히 만났던 사슴들의 정원으로 돌아온다. 사슴과자도 몇 봉 사서 들었다. 천마리의 사슴이 뛰어노는 곳. 1880년에 조성된 공원, 사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사슴들은 과자 봉지가 든 손으로 몰려들어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사슴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열심히 사진도 찍고 과자도 주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갔다. 곳곳에 사슴의 배설물이 즐비했지만 즐거운 시간의 애교로 봐준다.

이어 도착한 곳은 가스가타이샤 신사(Kasuga-Taisha Shrine). 768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그 역사가 매우 길다. 일본의 3대 신사 중 하나. 일본의 명문가인 후지와라 가문에 의해 처음 세워졌으며 전통에 따라 19세기말까지 20년마다 증 개축을 하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이끼가 두껍게 낀 이천여 개 석등. 주홍색 건축물과 어우러지며 일본풍의 그림 한 폭이 만들어진다. 일본은 토속신앙이 많은 나라.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인들은 천재지변을 잘 넘기기 위한 방법이 바로 토착신앙으로 이어졌다. 석등은 동네 유지들이나 사회에 공헌이 많은 사람들이 세울 수 있는데, 석등의 크기와 모양은 다양했다. 건축물 안에는 일렬로 녹등들이 달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하나씩 불을 밝히며 자신들의 안위를 기도하고, 후손들에게는 이름을 알리기 위한 등들. 세월을 알려주는 석등에 낀 이끼들은 그 많은 사연들을 벨벳 같은 부드러움으로 덮어주고 있다.

이어져 있는 식물원에는 2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일 년 내내 방문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숲길은 운치 있는 초록 물결로 마음의 평화를 선사하고 방문객들은 신사의 숲길에서 만나는 안온함을 뒤로하고 떠난다.


여행사에서 미리 예약해 둔 일식당. 토리나베(Torinabe)라고 불리는 닭 국물 요리 한상. 앙증맞은 그릇에 알록달록 담겨 있는 음식들. 대식가가 아니더라도 이걸 먹고 어떻게 배가 부르지 싶지만 먹고 나면 풍만 감도 충분하고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한상차림.


점심 식사 후 다시 오사카(Osaka)로 향한다. 차창 밖 거리 풍경은 말 그대로 정결했다.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도로. 한 시간쯤 달려서 도착 한 곳은 기타하마 카페 거리. 맑은 날이면 강변 카페에 앉아 물의 도시 오사카의 매력을 즐겨볼 수도 있었겠지만 오후엔 갑자기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며 비도 다시 왔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전날 오사카 성을 보지 않았더라면 만개했던 벚꽃은 모두 바람에 떨어진 길을 걷고 있었을 것 같아,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 가이드가 고마웠다,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엔 야키니쿠(Yakiniku). 일본식 고기구이. 뷔페라고 했지만 고기를 주는 양은 정해져 있었고 곁들여 먹는 야채만 무제한이었다. 김치도 나왔지만 딱 한 젓가락 정도의 양. 2개를 더 오더 해 나누어 먹었다. 그래야 일본에서 먹는 김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고기를 먹으며 사케를 곁들인다. 고기 맛도 술맛도 일품인 일본의 2번째 날의 밤이 저문다.


다음날은 아침 7시 반에 모인다.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바램, 일본의 어떤 신에게 기도를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며 잠자리에 든다. 더 굵어지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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