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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5시간전

브롱코스, 계속 이렇게!

Welcome home victory


포근한 가을 날씨를 두고 떠났다.  26시간 만에 도착한 집. 멀리 실루엣만 보이는 로키산맥 산정은 흰 눈이 쌓여 어두운 하늘과 맞닿아 잿빛이다. 지난주 3일 동안 폭설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집에 도착해 첫눈에 들어온 건 그동안 쌓인 집안일들. 긴 비행시간 동안 피로에 더한 일들이었다.

‘그래, 어쩌겠어. 2달이나 나갔다 온 탓이지’ 하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전투에 나가듯 마음을 먹었다. 나를 픽업하러 오기 전에 샀다는 육개장이 레인지 위에서 끓으며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일단 허기를 면해야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탁에 앉아 뜨거운 당면과 고기를 허겁지겁 먹었다. 꿀맛 같은 육개장과 흰밥, 김치와 깍두기. 배가 부르자 피곤은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고 온몸까지 퍼지며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가방은 차고 입구에 둔 채로, 쓰러져 잠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깨어 보니 새벽이다.


커피를 마시고 일을 시작했다. 꼬박 12시간. 쉬지 않고 정리하고, 쓸고 닦았더니 그제야 부엌과 거실의  제모습이 나타났다. 여행 가방도 풀었고 빨래도  2통이나 돌렸다. 몸은 천근만근인 늦은 저녁 시간, 다음날 있을 브롱코스의 게임 시간을 체크했다.  일요일 오후 2시 15분부터.


성당을 다녀온 후 집에서 여유 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 팀은 조지아 아틀랜타의 펠콘스(Atlanta Falcons). 우리에겐 한국계 구영회 선수로 더 잘 알려진 팀이다. 잠시, 마음속 갈등. 나의 팀이라 부르는 브롱코스(Broncos)를 응원할 것인지, 유일한 한국 선수가 있는 펠콘스를 응원할 것인지. 그러다 일찍 잠이 들었다. 종일 일을 한 덕택에 몸이 피곤했던 탓에.


일요일 아침, 알람에 잠이 깼다. 숙면 덕택에 몸은 가벼웠다.  성당을 다녀오며 마음을 정했다. 나의 팀인 브롱코스를 응원하기로. 지난 2게임 연속 졌던 브롱코스. 미미한 마음의 응원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과일과 새우깡, 막걸리 한 캔을 옆에 놓고 경기를 시청한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졸며 게임을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게임 시작 5분, 브롱코스의 터치 다운(Touch down), 눈이 번쩍 떠지며 졸음이 싹 달아났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 잘 던지네, 와~ 잘 받고’.  이어 펠콘스의 반격. 그러나 번번이 브롱코스의 방어에 밀리며 전진을 하지 못했다. 겨우 구영회의 필드 킥으로 3점을 가져갔다. 구영회는 지난 주말 게임에서 3번 연속 필드 킥을 실패하며 팀을 지게 만들었다. 그때의 안타까웠던 마음을 기억하며, 3점쯤 내주어도 되니, 그가 공을 잘 차서 넣었으면 싶었다. 브롱코스를 응원하지만, 상대방 팀 소속인 구영회에게 동시에 응원을 보냈다. 나의 팀이 잘하면 좋겠지만 한국 선수가 잘했으면 좋겠다는 내 감정. 나는 미국인일까? 한국인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국적 회복을 하며 한국 주민등록증이 나왔고,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이중 국적자의 모습이 게임을 보면 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혼자 웃는다.


브롱코스의 선전은 이어졌다. 우리 팀의 완벽한 방어 앞에서 상대 팀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완벽하게 던지는 쿼터백. 누구에게 던져도 잘 받아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브롱코스 선수들. 매 쿼터마다 나오는 터치 다운. 공을 받은 선수를 다른 선수들이 힘을 합하여 엔드 존(End Zone)으로 떠밀어 터치 다운(Touch down)을 만들었다. 공을 받고 41야드를 뛰어 터치 다운. 점수는 계속 올라갔다. 200킬로의 거구 선수가 상대 방 선수의 머리를 훌쩍  타고 넘는, 말타기 기술로 전진을 했다. 내가 타고 넘는 듯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와우~ 어떻게 저렇게 뛰어넘지? 그 경기장에 같이 있었더라면 목이 아프도록 소리를  지르고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을 것 같다. ESPN이 뽑은 최고의 명장면이 되었다.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만났던 허들을 그렇게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면…


이 나이가 되면 모든 것들에 관심과 흥미가 줄어든다. 살면서 운동 경기를 보며 이렇게 흥분하고 들떴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중학교 때 엄마와 함께 보았던 야구 이후에는 없는 것 같다. 아들이 오랫동안 했던 야구는 마음 졸이는 팀의 엄마였을 뿐, 경기를 즐기지는 못했다.


그러다 지난 10여 년 간 즐겨보는 풋볼에는 진심이다. 브롱코스 티셔츠, 장갑, 목도리, 모자, 후디까지 갖추었다. 직접 경기장을 갈 때는 응원도구까지 챙겨 손에 들고 설렘으로 들뜨며 나선다. 이렇게 경기가 있는 일요일이면 브롱코스 기어 중 하나를 입고 있거나 들고 있다. 가을에 시작해 겨울로 이어지는 작은 흥분들은 마음을 젊게 하고 앤돌핀을 돌게 하는 동력이라면 과장이 너무 심한가.


경기는 잘 풀렸다. 완승에 가까운 38:6. 이런 스코어를 근래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초 남겨 놓고 너무 아깝게 졌던 지난 주일의 게임 이후, 심기 일전 하여 팀의 전력을 보강했다는 감독의 일갈. 햇빛 반사를 방지하기 위해 얼굴에 바른 검댕이가 흘러내린 채 인터뷰에 응하는 브롱코스의 쿼터백 보 닉스(Bo Nix). 환하게 웃으며 다른 선수들이 공을 잘 받아 주어 이길 수 있었다며 승리의 공을 팀 멤버들에게 돌린다. 보 닉스(Bo Nix)가 어쩌면 이번 시즌의 기량이 제일 뛰어난 신인 쿼터백이 될 수 있겠다는 유투버들의 리뷰를 보며 나도 엄지 척을 해 보인다.


경기는 항상 이기는 팀이 있으면 지는 팀도 있다. 내가 응원하는 나의 팀이 졌다고 해서 화 내기보다는 응원을 보태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기면 화면 이쪽에서나마 선수들의 어깨를 하나하나 두드려 주고 싶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웠을 올라가면 내려 오게 되는 시간들. 누구에게도 다 그런 시간이 있지 않았겠느냐며. 성장통이 없는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시즌이 가면 갈수록 브롱코스의 기량이 나아지고 던지는 쿼터 백이나 받는 리비서들도 다양해졌고 정확도도 높아졌다. 방어력도, 공격력도 장난이 아니다. 나의 팀, 브롱코스. 이번 경기처럼만 하자!  잠은 싹 달아났다. 터치 다운! 소리에 아래층에 있던 남편은 무슨 일인가 싶어 뛰어 올라왔다. 엄청 잘하네…둘이 쳐다보며 큰소리로 웃는다.


어느 날, 나의 버켓 리스트의 하나인, 슈퍼 볼(Super Bowl)을 정말 가게 된다면, 그날은 가을이 온통 환한 색으로 물든 그런 날 일께다. 내 인생의 가을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좀 더 짙고 깊게 물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온 것을 반갑게 승리로 맞아 준 나의 팀, 브롱코스.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내며...


게임 덕택에 시차 적응은 이틀 만에 완료. 이렇게 감사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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