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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Nov 08. 2024

나의 팀, 브롱코스

아직 괜찮아!


질 거라 예상했다. 올 시즌, 수비를 잘하는 팀, 레이븐스(Ravens)와의 대결이다. 나의 팀, 우리 팀이라 부르는 브롱코스(Broncos), 가을에 시작한 이번 시즌 예비 게임에서 3번 연속 이겼다. 그 기세를 모아 승승 장구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을 완전히 꺾어 버린 것은 본게임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전력을 가다듬고 5번의 연속 승리를 기록하더니, 지난 일요일에는 완패했다. 질 것을 예상했지만 새벽 3시 게임(미국 시간 일요일 오후) 시간에 맞추어 눈이 떠졌다. 나의 생체시계는 게임이 있는 날이면 정확하게 그 시간에 깬다.


실시간으로 게임을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한국에 있지만 나의 팀 브롱코스를 실시간 시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임이 끝난 뒤 하이라이트만 유튜브로 보는 것은 성이 차지 않았다. 게임 내내 이어지는 에피소드를 실시간 봐야 게임을 같이 뛴 것 같은 느낌. 그야말로 선수와 팬이 일심동체가 되는 것 같다. 지난 일요일 게임만 하더라도 브롱코스의 쿼터백인 보 닉스(Bo Nix)가 뛰어가 엔드 존(End Zone)에서 공을 받아 터치다운(Touch Down). 그 순간을 실시간 보는 것은 엔돌핀이 확 돌게 하는 일이다. 쿼터백은 공을 던지기만 한다는 상식을 깨고 허를 찌르는 작전. 찐 팬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박수도 잠시. 브롱코스는 게임을 힘겹게 따라갔다. 리그의 모든 팀 중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진 선수가 있고 유능한 쿼터백이 있는 팀, 레이븐스. 상대팀은 명성에 걸맞게 공을 받자 말자 빛의 속도로 달려 터치다운을 여러 번. 겨우겨우 끌려가는 우리 팀. 홈 그라운드였던 볼티모어 구장의 응원 함성은 컴퓨터 화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컸다. 의기 소침해진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괜히 기지개를 켠다. 어깨를 펴며 혼자 큰 소리로 ‘잘하자! 힘내!’라고 소리 지른다. 새벽, 위 층에서 소음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을지, 잠시 걱정하며.


버둥거려도 딛고 올라올 작은 턱조차 허락하지 않고 상대는 밀어붙인다. 브롱코스는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깊이 빠져 버려 안타깝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이어지는 한숨.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 동이 트는 여명의 바닷가를 내다본다. 아직은 어둠인 수평선. 창을 열었더니 찬 바람이 훅, 밀려들며 가슴이 시원하다.

창을 닫고 다시 들어오자. 이미 다음 쿼터로 가고 있고 패색이 완연한 게임을 보며 한숨만 들었다 놨다 한다. 상대방은 최고의 방어를 하는 팀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점수 차이로 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터치 다운을 못한 채 3 쿼터가 지났다. 상대방 팀은 그야말로 홈구장에서 펄펄 날았다.

엄청 지고 있는 브롱코스


미국에서 게임을 보고 있었더라면 벌써 몇 번이나 F 음을 섞어가며 소리를 질렀을 수도 있다. 그런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남편과 아들. 나의 모습을 못 본 척 그 자리를 피한다. ‘감정에 솔직해 야지’하며 나는 끝까지 시청하며 선수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토를 단다. ‘아 휴, 그걸 왜 못 받아? 먹고 그것만 하면서. 내가 해도 그보다 낫겠다. 야, 야, 야, 그게 아니고 저쪽이라고. 받는 돈이 얼만 데, 그렇게 밖에 못하냐? 나 심장 마비 걸리면 책임져… 이어지는 할머니의 지청구는 화면을 향해 이어지고, 이기면 그 반대로 칭찬의 소리들이 어어 진다.


내가 생각해도 무엇에 이렇게 진심이었던 적이 있던가 싶게 몰입하며 게임을 시청한다. 어쩌면 게임을 보며 내 감정을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감정들을 게임을 통해 풀어내면 참 시원하다. 게임에 이기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시청을 하다 보면 조금 잘하는 것도 커 보이고, 좀 못해도 그런대로 봐 줄만 하다. 매사가 그렇지만 어떤 시선으로 상황을 보는가에 따라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다음 주말의 게임도, 지는 게임이다. 이번 시즌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작년 슈퍼볼의 우승 팀이며 브롱코스와의 게임 전력은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빼고 이겼다. 2주 연속 패배를 하게 되면 우리 팀의 기운은 의기소침해지겠지만 그 또한 피 할 수 없는 게임이다.


브롱코스의 쿼터백은 올해 새로 영입된,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선수이다. 프로팀에서 첫해인 그는 아직 좀 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고,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 필요하다. 장은 이미 펼쳐졌고, 시작을 했으니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


게임이 끝나고 코치의 브리핑이 있었다. 공격도, 방어도, 작전까지 완벽한 실패. 그러나 또 다음 주의 게임이 있고 그 게임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일갈. 실패를 인정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그의 자세가 당당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기지 못한 것은 어쩌면 최선의 승리 일수 도 있다.

브롱코스의 쿼터백과 코치


최고 수비력 볼티모어(Baltimore)의 레이븐스(Ravens)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완벽하게 패배한 브롱코스(Broncos)에게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다음 주말 경기에도, 나의 박수와 응원은 깊어 가는 계절 속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직 괜찮아! 브롱코스!!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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