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휴양지’라 불리는, 안탈리아(Antalya)
걸어서 일정을 시작한다. 숙소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작은 광장이 있고, 그 앞이 지중해로 해가 지는 노을의 명소. 일몰 시간을 확인하며 걸어간다. 첫 방문지는 하드리안 문(Hadrian’s Gate),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방문을 기념해 세워진 웅장한 석조문으로 안탈리아 구 시가지의 상징적인 유적이다. 2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이 문을 통과해야 구 시가지로 갈 수 있다. 옛 건축이라 바닥은 대리석이고, 미끄럽다. 구 시가지는 미로처럼 얽혀 있지만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기웃거리게 만드는 선물 가게들. 좁은 골목들. 이른 시간인데도 여행객들이 많다. 가이드가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저 집의 이층이 좀 튀어나왔잖아요? 왜 그렇게 지었을까요?’ 당시의 건축 양식이 그랬다. 통풍이 잘되게 하기 위해 그랬다. 공간을 좀 넓이기 위해 그랬다 등등의 답이 나왔지만 모두 땡~ 그때 누군가가 ‘세금 때문에’라고 답한다. 딩동댕~ 건축물 전체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건축물이 골목의 땅과 만나는 면적으로만 세금을 매겼기에 세금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땅과 다은 일층은 적게 짓고 위층은 더 내어서 지었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누구나 세금을 더 많이 내기를 싫어 하나보다, 하며 웃는다. 사진 몇 장 찍으며 자리를 이동한다.
메블라나 박물관(Museum of Mevlana). 메블라나, 본명은 잘란루딘 루미. 13세기 이슬람 영적 신비주의자, 시인이며 철학자인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다. 메블라나는 튀르키예어로 ‘우리의 스승’,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루미를 존경하면서 만든 공간. 이슬람 신비주의는 춤을 종교로 승화시켰는데, 춤은 ‘세마’라고 불린다. 오른손을 위로(하늘로), 왼손은 아래로(땅으로) 한 채 계속 한 방향으로 도는 춤. 그렇게 계속 돌다 보면 어느 한순간 신과 만나게 된다는 춤이다. 우리도 한 방향으로 계속 돌다 보면 어지럽지 않은가? 그런 느낌을 접신하다고 믿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훅 지나갔다. 박물관 한쪽의 화면에서는 무용수들이 계속 돌고 있다. 박물관은 소규모였지만 루미가 1273년 죽은 후,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점점 더 많은 추종자들이 이곳에 모이게 되었고 1926년부터 공식적으로 박물관이 되었단다. 박물관은 현재까지도 중요한 이슬람 성지로 꼽힌다. 안으로 들어가 방석 같은 데 앉아 역사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있었는데, 이슬람 사원의 분위기가 무척 인상 적이었다. 안에는 최초의 코란이 백향목이라는 나무로 만든 통 속에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 내부는 이슬람 사원의 전통 문향들로 잘 가꾸어져 아름답다.
박물관을 나와 가까이 있는 이블리 모스크로 향했다. 불행하게도 그날은 휴관이었다. 아마도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오전 일정은 그렇게 끝나고, 오후는 자유 시간이었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이른 저녁을 먹는다.
해가 진다는 시간에 맞추어 길 건너 광장에 나갔지만 하늘은 잔뜩 흐렸고 노을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꼭 지는 해가 아니더라도 분홍 하늘만이라도 기대를 했었는데 아쉽다.
다음날 체크 아웃을 하고 가까이 있는 폭포, 듀겐 폭포(Dugen Falls)로 향한다. 지중해로 떨어지는 물줄기, 시원하다. 오늘의 일정은 버스에서 흔들리는 시간이 좀 길다. 저녁에 카파토키아에 도착해야 하므로.
튀르키예식 수제 피자, 피디( Pide)가 점심식사이다. 4가지 종류의 치즈를 섞어서 만들었다는 피자. 도우는 얇고 빠삭하게 화덕에 구워준다. 샐러드를 올려 싸서 먹는다. 불맛이 나며 바싹 씹히는 맛도 있다. 곁들여 주는 가지만 한 고추가 아삭하고 상큼하다.
식사를 마치고 그야말로 허허벌판,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스펜도스 원형극장(Aspendos Theater). 가는 곳마다 보았던 어느 원형 극장보다 크고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다. 어디서 찍어도 인생샷이 될 만큼 근사한 곳. 튀르키예에 남아 있는 원형 극장 중 가장 오래되었단다. 이 극장은 마이크 같은 현대 음향 시설이 없이도 무대의 목소리가 객석 끝까지 골고루 전달되는 독보적인 음향 구조로 되어 있단다. 세계의 성악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대 중 하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소리의 울림이 객석 전체로 퍼진단다. 그 넓고 높은 곳의 구석까지 퍼지는 음향효과. 고대인들의 비밀스러운 음향 기술에 감탄하며 어떻게 이런 건물들이 1900년 간이나 보존되었을까?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고, 로마제국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루렐리우스를 위해 이 지역 출신 건축가인 제논이 설계했단다.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과 음향 기술이 경이롭기만 하다.
매년 여름 국제 오페라, 발레 페스티벌이 현재까지도 열리고 있는 극장. 푸른 지중해와 검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과 만나는 그들의 향연에 한 번쯤 와 본다면 얼마나 근사할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지나간다. 고대인들은 도시가 만들어지면 그 규모에 걸맞은 원형극장을 도시마다 하나씩 만들었던 것 같다. 권력의 상징과 문화의 보급이기도 한 원형 극장. 머리 숙여 옛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갈 길이 멀다. 5-6시간 달려가야 한단다. 창 밖의 풍경이 바뀐다. 바다였다가, 돌산이었다가, 푸른 숲이었다가, 낮은 언덕이었다가 갑자기 높아지기도 한다. 동네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잘 정비된 넓은 길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신들은 왜 이곳에 와서 휴양을 하였을까?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지중해와 천혜의 평지가 이어지고 기암괴석들이 모여 있어서였을까? 기가 센 땅이었을까?
겨우 이틀을 머물면서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자연, 그것만 생각한다면 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곳 같기도 하다. 산과 바다, 강과 숲, 평야와 돌산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던 곳.
버스는 안탈리아를 벗어나 열심히 달린다. 또 새로운 곳을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