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수 있을까?
5년 전 어느 여름날, 브런치 작가로 등록을 했다. 출간을 하기 전, 준비 작업이라는 출판사의 말. 홍보효과를 위해서 해야 하는 한 과정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앱을 깔고 글을 읽으며 좋은 플랫폼이구나 싶었다.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다 수용하기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규정을 통과하는 관문도 있었다. 통과가 되자 설레는 마음으로, 신입사원처럼 글 쓰기를 이어갔다. 친구들과 여행기, 고향 강릉을 사랑하는 이유,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았던 중환자실 모습, 콜로라도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들을 이어갔다. 숙제 같이 이어갔던 내 사는 모습. 너무 많은 것을 거르지 않고 드러 내고 있었을까. 가끔 스팸 같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국을 가는데, 그곳에서 연락을 하자는 둥, 글이 좋다는 둥, 카톡 아이디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댓글의 내용이 똑같았다. Gemini, Chat GPT 등을 이용한 AI 댓글이었다. 삭제하고 차단을 했지만 기분은 영 찜찜했다.
누군가에게 나의 사생활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듯한 느낌. 일상을 공유하며 사는 모습을 두런두런 이야기처럼, 글을 좋아하는 분들과 이어가고 싶었던 것은 욕심이었을까?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알게 되었던 분들과의 소통도 점점 줄어갔다. 더하여 성당에서 커다란 자리 하나를 맡게 되자 마음은 급했고 내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성당에 써야 했다. 핑계가 좋았으니 글쓰기는 점점 내 일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래, 다시 쓸 때가 있겠지…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마음 졸이며 애쓰냐? 억지로 안 되는 것인데.. 편안하게 해야지…’ 라며. 시간이 지난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 쓸거리가 없는지 두리번 거린다. 컴 앞에 앉아 대충의 아우트라인을 잡아 놓고도 차일피일 미룬다. 3달이 지났다. 아 ~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싶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글쓰기. 아주 가끔 내 브런치를 열어본다. 독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댓글도 거의 없다. 일상의 기록을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다고 하나, 관심이 줄어든 내 사이트는 초라하기만 하다.
퇴직한 할머니의 일상이 뭐 그리 궁금하겠는가? 번득이는 필치로 누구의 심금을 울리는 것도 아니고. 이쯤에서 그만두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브런치를 통해 만나던 귀중한 인연들은 오롯이 기억에 남아 있다. 추억이 되어가는 글친구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며 이쯤에서 나의 글태기를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오정희 단편집을 다시 찾아든다. 그녀의 가지런한 필체가, 번득이는 수식어가 가슴에 꽂힌다. 오늘 ‘저녁엔 어떤 게임’을 하고, 내일 아침의 ‘중국인 거리’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동경’을 반들거리게 닦아 제 얼굴을 비추는 소녀의 모습이 되어 밑줄 처진 책장을 넘긴다. 오래된 종이의 냄새가 반갑고 그윽한 것은 봄이 오는 소리가 되어 가슴에 내린다. 창을 열면 다가오는 바람은 신선하고 겨울을 지낸 나무들은 연초록의 싹을 조금씩 틔운다. 봄이다! 고목나무에도 싹은 튼다. 따스한 봄기운을 맞으며 이쯤에서 글태기를 벗어나 작은 싹, 다시 틔울 수 있었으면…
책장을 넘기며 ‘구부러진 길 저쪽’의 나를 만난다.